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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뮤직] 꿈처럼 나른하고도 열렬했던, 3호선 버터플라이 공연 리뷰

2013.02.14


88년생인 내가 99년도에 첫 앨범을 발표한 밴드에 대해서 끄적인다는 게, 사실 맞는 말인 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내가 그들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우리의 세대도 분명히 '3호선 버터플라이'의 영향을 받고 자란 세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뭐, 청소년 기에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보며 그 드라마에 나온 3호선 버터플라이의 곡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어쩌고 저쩌고, 그런 영향력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대학교 시절 꽤 친하게 지냈던 여자 애가 어느 날 내게 사진을 한 장 보여주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무거운 뱅 앞머리를 한 여자였는데 그 모습을 보며 그 애는 "섹시하지?"라고 물었다. 나는 이렇다 저렇다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 사진 속 얼굴은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 후 그 애가 대학 재학 시절 내내 사진 속 그 여자처럼 무거운 뱅 앞머리와 부스스한 펌을 고수하는 것을 보며, 그리고 그 사진 속 여자가 3호선 버터플라이의 남상아 씨였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아마 그때 비로소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았던 것 같다. 이 정도면 설명이 되려나. 그랬다. 우리는, 아니 나는 그들의 음악을 듣고 그들의 모습을 흠모하며 자랐다. 아마도 우리 세대에게 3호선 버터플라이는 막연한 동경과 신비로움으로 점철된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작년 가을에 뜻밖의 신보를 발매했다. 심지어 나는 그 소식이 사실인가 싶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음반매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낯익은 네 명의 모습이 음반 재킷에 새겨진 것을 보고서야 실감이 났다. 무려 8년 만에 '3호선 버터플라이'가 정규음반을 낸 것이었다. 사실, 그렇다. 그들이 1999년에 첫 앨범을 발매한 이후 벌써 2013년이 되었다. 한 밴드가 자신들의 색을 잃거나 와해되지 않고 그 시간을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특히 척박한 인디 씬에서는 더더욱 그럴 테고 말이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말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한동안 3호선 버터플라이는 무료해보였다.


한국 인디뮤직의 대표적인 얼굴 중 하나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그들을 더 나아가지도, 더 물러서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정규 음반 Dreamtalk에서는 그 무료함을 뒤엎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쩌면 그 무렵 그들이 참여했던 '서울소닉투어'가 기폭제가 되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작년 초, 서울소닉투어를 기념하며 발매한 Ice Cube를 통해 그들이 '북미'라는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방식으로 했던 공연들에 무척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도 있었고 말이다. 어쨌건 그들의 신보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에너지는 팬과 평단 모두에게 긍정적인 평을 이끌어냈으며, 얼마 전 '한국대중음악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까지 이루었다.

 


 

그 성원에 보답하기 위함이었을까. 지난 1월, 그들은 Dreamtalk 발매 기념 투어인 <Dreamtalk Tour>를 시작했다. 1월 12일 홍대 스트레인지프롯에서 진행한 워밍업 파티를 시작으로 전주, 광주, 부산, 대구를 순회하고 그 피날레로 서울, 그러니까 2월 1일, 홍대 V-hall에서 투어의 마침표를 찍는 일정이었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한층 매서워진 그들의 에너지에 궁금증을 갖고 있었으므로 2월 1일, 퇴근 후 빗길을 뚫고 V-hall로 향했다.

입장 시간 전부터 이미 길게 늘어선 줄이 3호선 버터플라이의 공연을 기다렸던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가늠하게끔 했다 그 틈에 끼어 대기를 하다 입장을 하고 공연장으로 들어가자 기대에 찬 눈빛으로 블라인드가 내려진 무대를 바라보는 그들의 팬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7시 반, 블라인드가 올라가며 9와 숫자들이 나타났다. '착한 거짓말들'과 '눈물 바람'을 부르며 공연을 연 9와 숫자들은 공연의 주인공인 3호선 버터플라이 못지 않은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이에 9와 숫자들의 리더이자 보컬을 맡고 있는 송재경 씨는 3호선 버터플라이를 처음 대면했던 순간을 반추했다. 그는 1994년, 그가 고3이었던 당시 홍대 클럽에서 공연하고 있던 3호선 버터플라이를 보게 되었다고 했다. 군대에 입대해서는 드라마에 나온 3호선 버터플라이를 브라운관에서 보게 되었고, 밴드를 시작하면서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3호선 버터플라이는 대선배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생각해보면 별거 없었는데, 처음에는 되게 커 보이더라고요. 3호선 버터플라이가."라는 위트 있는 멘트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크게 느껴집니다."라는 말로 환호를 받기도 했다. 이후로 '유예'와 같은 9와 숫자들의 대표 곡 뿐 아니라 '깍쟁이', '북극성'과 같은 미발표 곡까지 연주하여, 게스트로서는 이례적으로 1시간 남짓 공연을 펼쳤다.


 


9와 숫자들의 무대가 끝난 뒤 내려갔던 블라인드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블라인드가 올라가며 Dreamtalk 앨범의 첫 번째로 수록되어있는 곡이기도 한 '스모크핫커피리필'이 울려 퍼졌고 그들을 기다렸던 팬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Oh! Silence'와 '걷기만 하네'를 연주했고, 곡이 끝난 뒤 3호선 버터플라이의 기타리스트 성기완 씨는 "13년 간 해왔던 공연 중 관객이 제일 많이 온 날이네요."라고 설레는 마음을 표현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후 현대카드 뮤직을 통해 'Sexy'라는 타이틀로 뮤직비디오가 선 공개 된 바 있었던 '니가 더 섹시해 괜찮아'를 연주했는데, 남상아라는 보컬이 가지고 있는 관능적인 보이스를 잘 느낄 수 있는 곡이었다. "남상아 섹시하죠. 연주하다가 자꾸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게 되네요"라는 성기완 씨의 말까지 더해지기도 했으니, 그 무대가 얼마나 섹시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이 곡을 만들 때만 해도 남상아가 스물 아홉이었는데 말이죠."라는 소개로 연주된 '29', 이번 정규앨범의 모티브가 되어주었다던 '꿈속으로', 비 오는 날에 무척 어울린다던 '쿠쿠루쿠쿠 비둘기' 등의 곡들을 연이어 연주했다. 그런가 하면 '광합성'을 부를 때에는 보컬 남상아 씨의 기타 줄이 끊어지기도 했는데, 이에 9와 숫자들의 기타를 빌려 연주하는 헤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너와 나', '오리엔탈 걸', '방파제' 등의 곡들을 연이어 연주하며 공연의 분위기는 최고조로 무르익었고, '다시 가보니 흔적도 없었네'와 '삐뚤빼뚤 원래 그래'로 공연의 막을 내렸다. 그러나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끝말 잇기'와 '말해줘 봐', '식민지'를 앵콜 곡으로 연주하며 공연이 마무리 될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시계를 보니 밤 열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공연장으로 올 때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어느덧 그쳐있었고, 늘 그렇듯 금요일 밤 홍대입구 부근은 붐볐다. 음반과 공연의 타이틀이었던 'Dreamtalk'처럼, 꿈처럼 나른하고도 열렬했던 무대를 등지고 나온 현실의 금요일 밤은 사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공연장을 나온 사람들의 눈빛에서, 그들이 현실에서 다하지 못한 꿈의 대화들을 얼마나 깊게 나누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다음 공연도, 한국대중음악상의 수상 결과도, 그들의 행보도 기대하게끔 만들었던 밤이었다.  


 


 

Writer. 지은
 

매거진 <엘리펀트 슈>의 에디터로 글을 쓰고 있다.

비밀리에 여러가지 일을 벌이고 있으나 대체로 공공연한 비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