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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현대카드 PPT를 버리다
2014.08.11
최근 현대카드·라이프·캐피탈·커머셜(이하 현대카드)에서는 ‘ZERO PPT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회의나 보고서 작업할 때 주로 사용하던 PPT 사용을 금지시킨다는 것이다. 독특한 고유의 글씨체를 개발하고, 업계의 흐름뿐만 아니라 광고계의 판도를 바꾼, 예술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기업 중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현대카드에서 도대체 왜 이런 캠페인을 시작한 걸까?
2014년 전사적 과제 중 하나로 ‘Simplification(단순화)’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그 흐름과 궤를 같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하필 PPT에 주목했을까? 도대체 PPT가 어떤 부작용을 가져왔기에 그런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인지. 그건 아마도 PPT가 가져올 수 있는 인지적 오류, 그리고 그로 인해 핵심과 본질이 아닌 겉모습과 부차적인 것에 매달리게 되는 인간의 어이없는 착오에 대한 경고는 아닐까.
현대카드에서는 7월 한 달간 Brand본부와 Auto사업 2본부에 대해 PPT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8월부터는 라이프와 경영지원본부, 9월은 커머셜과 리스크본부 등에서 PPT가 차례로 사라지게 된다. 물론 PPT 금단 현상이 없지는 않겠으나, 그 자리에 이메일과 구두 보고, 워드와 엑셀을 활용한 보고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어 ‘PPT 없이도 보고할 수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깨달음과 ‘디자인보다 실질적인 내용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직원들이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Jeffrey Preston Bezos)는 직원들이 ‘프레젠테이션’ 하면 파워포인트를 떠올리는 것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지했다. 대신 6쪽 분량의 메모로 사안을 ‘기술’할 것을 요구했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Sheryl Kara Sandberg)도 마찬가지. 그녀는 직원들에게 “나와 미팅할 때는 PPT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이나 계속 PPT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결국 금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앞선 두 사례처럼 PPT가 비단 현대카드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때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따라잡기 열풍이 일어나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그의 동영상을 보고 벤치마킹했던 적이 있다. 그 역시 백그라운드를 활용했으나(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워포인트가 아니라 자사 제품인 Keynote를 사용) 스티브 잡스가 탁월했던 점은 ‘본질’과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그의 프레젠테이션 목적은 첫째,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 둘째, 최대한 흥미를 고도로 끌어올린 다음 셋째,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게 하고, 넷째, 그 이야기에 설득 당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백그라운드는 단순히 트리거(trigger)역할만 하면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가 암 투병 중 파워포인트를 활용해서 병세를 설명하는 의사를 심하게 꾸짖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PPT 작업을 하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듬기보다 표현하고 싶은 그림이나 도구 하나를 찾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던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단순한 동그라미 하나를 조금 색다르게 보이게 하고 싶어 반나절 이상 각종 자료를 뒤졌던 경험이 있다. 물론 PPT가 가진 장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SNS를 할 때 수십 줄의 글이 아닌 이모티콘이나 기호 등으로 더 큰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효과가 분명 있을 테니까. 다만 PPT가 전달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도 그대로 이해하냐는 것이다.
2003년 2월,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하던 중 폭발한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파워포인트에 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컬럼비아호가 지구에서 우주로 이륙할 당시 연료탱크에서 서류가방 크기의 단열재가 떨어져 나왔고 왼쪽 날개 방열판에 충돌해 결국 폭발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NASA의 ‘잔해 평가팀(Debris Assessment Team)’ 소속 과학자들은 다양한 실험과 조사를 통해 그 같은 손상이 컬럼비아호 안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평가했다. 결과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통해 미션 평가실(Mission Evaluation Room)에 보고됐고, 슬라이드에는 떨어져 나온 단열재로 인한 위해성 여부와 함께 ‘significant(중요)’라는 표현이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강조돼 있었다. 하지만 그 표현이 슬라이드 맨 아래쪽에 위치해 있거나 다른 내용들에 가려져 평가단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것. 결국 미리 조치를 취하고자 총력을 기울였던 노력은 방대한 양의 PPT 보고서 안에만 담긴 채 컬럼비아호 승무원 전원 사망이라는 결과를 낳게 됐다.
‘ZERO PPT 캠페인’은 ‘본질’에 집중하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보고를 포함한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인식 왜곡의 ZERO화’와 ‘눈높이 맞추기’에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고,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를 깨닫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개인과 기업 경쟁력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Writer. 김태은
Hay Group 전무(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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