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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가가]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6 레이디 가가 공연, 파격 그 이상의 예술

2012.04.30


파격과 혁신의 아이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꼽히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16번째 주인공 레이디 가가. 'THE BORN THIS WAY BALL'의 시작을 알린 'Highway Unicorn (Road to Love)'부터 마지막 앙코르 곡 'Marry the Night'까지. 약 2시간 가량 진행된 이번 공연은 예술성이 돋보이는 무대 연출과 퍼포먼스로 5만여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전해주었습니다. 역사적인 날로 기록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6 레이디 가가 내한공연, 그 생생한 현장을 음악 칼럼니스트 이민희님의 글로 되새겨봅니다.



이건 단독공연이 아니라 완전 그래미야, The Born This Way Ball Global Tour

 

 


4월 27일 밤,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는 우리가, 아니 전세계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이상한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었다. 대개 영미 밴드가 새 앨범을 발표하고 투어를 시작할 때면 연고지인 유럽이나 북미를 기점으로 해 추후에 그 밖의 세계로 떠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명실상부한 월드스타가, 이 시대 독보적인 수퍼스타가 이례적으로 아시아를 첫 번째 투어 지역으로 선언했고, 수많은 아시아 가운데에서 무려 여기를 첫 무대로 택했다. 노래는 물론 패션과 공연을 비롯한 모든 영역들에서 기존 팝 시장의 상식과 관행을 극단적으로 뒤엎는 일에 원래 익숙한 캐릭터이기에 가능했을 파격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그렇게 기획부터가 달랐던, 일정과 수순에 있어 남다른 실험을 가한 가가의 세 번째 투어 ‘The Born This Way Ball Tour’는 공연 두 시간 전까지도 제작진에게 셋 리스트를 알려주지 않은 채 완전 극비 상태로 시작됐다. 현장을 찾은 5만 명의 관중은 이게 얼마나 대단하고 귀한 순간인지 알기나 했을까. 우리는 이 놀라운 순간을 최초로 경험한, 억세게 운 좋은 목격자들이다.

마침내 뚜껑이 열린 공연은 하여간 달랐다. 일반적으로 무대는 가로로 길게 준비되기 마련이지만, 가가의 무대는 세로로 길어 보였다. 무대의 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기도 했다. 무대 정면에 4층 높이의 웅대한 성(城)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가가의 성은 투어의 핵심 내용이 되는, 가가가 태어나고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세상, 즉 ‘명성의 왕국(The Kingdom of Fame)’을 상징한다. 그 왕국의 성은 단순한 장식용 스티로폼이 아니었다.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물이었다. 이를테면 시시각각 문이 열리고 닫히는 한편 구조 전체가 바뀔 만큼 완전히 분리되는, 때때로 형형색색 요란한 조명이 쏟아지는, 각 층의 면면들은 언제든 스테이지로 전환될 수 있을 만큼 넓은, 그리고 구석구석 거울부터 장식장까지 섬세한 소품들이 전시된 풍요롭고 거대한 공간이었다. 이 같은 구상은 중세 시절에도 오늘날의 5성급 호텔이나 펜트 하우스처럼 럭셔리한 건축물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상상력은 그녀의 디자인 팀 ‘하우스 오브 가가’의 완벽함과 평범을 거부하는 가가의 편집증이 만나 거대한 무대로 현실화되었다.  

덧붙여 참고할 만한 정보가 있다. ‘The Born This Way Ball Tour’는 올해 아시아로 시작해 오세아니아와 유럽을 거친 후 2013년 북미로 간다. 앞서 말했듯 일반 공연의 원정 수순을 뒤엎는 이상한 경로다. 그리고 총 110회로 예정된 각각의 공연들 사이에는 짧게는 사흘에서 길게는 일주일 전후의 여백이 있다. 무대 즉 그 어마어마한 성을 제대로 이동시킨 후 완성하고 가동 테스트를 하려면 그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배로 들여온 컨테이너 박스만 40여 개, 의상부터 소품까지 그 밖의 장비는 전세 비행기 두 대 분량이라는데, 이런 물량과 수고가 ‘페임의 왕국’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가가의 특급 공연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가의 공연은 압도적인 스케일을 과시하면서 시작됐고, 차려놓은 밥상 위에 얹은 각종 퍼포먼스는 단독공연이 아니라 그래미를 방불케 하는 다채로운 연말 시상식에 가까웠다는 말로 가가의 공연을 일단 요약하면서, 그날의 성찬을 되새겨 보기로 한다.


마더 몬스터 vs 리틀 몬스터, 팬덤은 가수를 닮는다

공연 전부터 여기저기 카메라가 터졌다. 발 빠른 기자들은 공연 전의 수많은 풍경을 사진과 글로 담아 잽싸게 인터넷에 뿌려 놓았다. 잘 알려진 대로 가가의 공연은 사전부터 각종 단체들과 싸워야 했고, 따라서 당일 가가의 공연을 반대하는 이런저런 측의 시위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공연의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의 성토가 있는가 하면, 역으로 공연과 선택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시위단도 보였다. 이 참에 결집한 성 소수자 연합도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 그보다 흥미로운 무리들이 있었다. 가가의 수많은 워너비들이다. 가가가 한때 즐기던 손바닥 만한 리본이 달린 헤어밴드는 몹시 평이한 수준에 속했다. 백발 가발을 쓴 이들, 가가 코스프레로 여장한 남자들, 가가가 언젠가 선보였던 것처럼 맥주 캔을 헤어핀처럼 활용한 외국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더 몬스터’라 스스로를 칭하는 가가는 그들을 ‘리틀 몬스터’라 부른다. 그녀의 골수팬을 자처하는 ‘리틀 몬스터’들은 공연 당일 아침부터 대기하고 있었고, 부지런과 정성으로 스탠딩 석의 명당(이 구역은 ‘몬스터 핏’으로 통한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충직한 리틀 몬스터를 거느린 마더 몬스터는 ‘Highway Unicorn’으로 첫 투어의 문을 열었다. 공연의 레퍼토리를 잠깐 점검하자면, 이제 고작 두 장의 정규 앨범과 한 장의 기획 앨범을 발표했을 뿐인데도 가가는 엄청나게 많은 히트곡을 가진 베테랑 뮤지션으로 보인다. 활동기간은 짧았지만 나오는 노래마다 다 터졌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한 앨범 Born This Way (2011)의 거의 모든 수록곡을 들려주면서도, ‘Just Dance’ ‘Bad Romance’ ‘LoveGame’ ‘Telephone’ ‘You & I’ ‘Pocker Face’ ‘Alejandro’ ‘Paparazzi’ 등 차트를 순회했던 과거의 히트곡을 잊지 않았다. 사정상 풀 버전을 양보하고 짧게 스쳐간 노래들, 때때로 라이브가 아니라 조금은 아쉽게도 레코딩 버전(‘Paparazzi’)으로 흘러나온 모든 노래들을 합치면 총 20곡이 넘는 엄청난 분량이다. 그리고 똑같은 옷을 입고 소화하는 노래는 거의 없었다. 노래가 바뀔 때마다 숨가쁘게 옷을 갈아입고 나와 각 노래들의 특징을 분명히 했고, 노래와 의상에 걸 맞는 퍼포먼스를 띄웠다. 그토록 역동적으로 춤추는 데도 노래는 흔들리지 않았다. 가가는 역시 팔색조였고 명백한 다중인격이었다.

그 숱한 퍼포먼스를 일일이 복기하기는 벅찬 관계로 가가 공연의 특징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두 가지 경우를 다시 음미해보려 한다. 첫 번째로 공연의 세 번째 노래였던 ‘Born This Way’다. 출신과 피부색과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모든 인류는 공평하게 태어났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노래로, 가가는 경기장이 쩌렁쩌렁 울릴 만한 괴성을 지르면서 노래를 시작했는데 아마도 출산의 고통을 표현한 것 같다. 지난해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유사 자궁 구조물을 소개한 바 있는데, 이를 보다 직관적인 소리로 확장한 것이다. 좌우간 노래가 시작되자 여러 댄서들이 함께 무대를 채웠다. 가가의 여러 작품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가가의 댄스는 팝음악의 댄스와 완전히 다르다. 전문 백댄서를 대동하는 대중지향의 댄스가 아니라 무용계에서 활약하는 전문가들의 소환이다. 그들은 대체로 맨발을 고수하고, 운동으로 다져진 아름다운 근육과 함께 곡선의 실루엣을 드러내는 얇거나 없는(?) 의상을 즐긴다. 그리고 예술에 가까운 무대를 중화해 결국 팝으로 전환하는 존재는 언제나 무대 중앙에 서서 격렬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와중에도 위태로운 킬힐에서 절대 내려올 일 없는 가가다.

다음으로 이색적인 순간은 ‘Heavy Metal Lover’의 퍼포먼스로, 일명 ‘가토바이’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가가가 즐겨 타는 오토바이를 뜻한다. 이 작은 오토바이 안에서 가가는 수많은 일들을 해치운다. 공연이 결국 18금 판정을 받은 이유는 노출이 잦고 종종 속옷 바람으로 무대를 휘젓는 가가의 패션 때문이기도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가는 엄청 섹슈얼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게 함정), 어떤 종교의 교리가 부정하는 일을 가토바이 위에서 저지르기 때문이다. 일례로 가가는 가토바이 위에 누웠다. 이어 가가의 몸 위로 어느 여성 무용수가 올라탄 후 둘은 ‘하는’ 듯한 행위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가가는 ‘그 일’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가토바이로 달릴 수도 있고 가토바이를 침대 삼아서 할(?) 수도 있지만, 가토바이는 운전대에 키보드를 장착할 수 있어 언제든 연주가 가능한 멀티 기기다. 새 앨범에 실린 ‘Hair’는 원곡의 역동성을 키보드 위주의 발라드로 재해석해 가토바이 위에서 들려준 서정적인 노래였다. 노래가 끝난 후 가가는 덧붙였다. “’하는’ 거에 취해서 노래 가사를 조금 까먹었어요.”


볼 게 너무 많아 버거웠던 순간들


공연을 앞두고 이전 공연 영상을 찾아보는 동안 가가는 관중과 교감하는 일보다 극에 집중하는 캐릭터로 보였다. 첫 투어에서 가가의 페르소나는 앤디 워홀을 롤 모델로 삼은 ‘캔디 워홀’이었고, 두 번째 투어에서 가가는 나고 자란 뉴욕을 몸으로 또 소리로 표현하는 연기자에 가까웠다. 세 번째 투어는 ‘더 킹덤 오브 페임’이라는 설정이 말해주는 것처럼 왕국을 배경으로 한다. 명확한 주제를 따라 쇼를 책임지는 일에 더 큰 의무가 따를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러나 가가는 종종 웅변에 가까운 샤우팅으로 우리의 호응을 부추기고 18금 판정에 관한 배짱의 견해를 털어놓았으며(“한국 정부가 내 공연을 18금으로 만들어놨는데, 그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 ‘가가 울랄라’로 시작하는 ‘Bad Romance’의 도입부를 ‘가가 코리아’로 바꿔 관중의 커다란 함성을 이끌어냈다. 너무 큰 무대에 파묻혀 때때로 잘 보이지 않았던 작은 가가를 확인하는 가장 명쾌한 방법이기도 했다. 우리는 보러 가지만 근본적으로 더 잘 들으러 공연을 찾는다.

이렇게 해서 ‘톱 시크릿’으로 묶여 있던 세 번째 투어의 봉인이 마침내 해제됐다. 그 유명한 생고기 패션을 재현했던 것처럼 어느 정도는 친숙한 구석도 있기는 했다(‘Americano’의 퍼포먼스는 고기 옷을 입고 고기를 소품으로 쓰는 등 푸줏간 형식으로 구성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요란하고 성대할 것이라 이미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어떤 공연을 봐도 흥분하지 못할까봐 걱정스러울 만큼 엄청난 장관이기도 했다. 우려했던 대로 모든 것을 눈에 담지 못해 아쉬운 공연이기도 했다. 가가의 친숙하고 맹렬한 댄스곡에 맞춰 몸을 흔들 겨를 없이 너무 많은 유혹과 자극의 장치들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가 많은 것을 놓치고 말았을 테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면서 이런 행복한 아쉬움을 느끼는 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시작하자 마자 탈진할 듯 노래와 춤과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던 가가는 후반부에 이르러 나올까 말까를 망설이며 ‘밀당’의 진수를 보여줬다. 적당히 뜸들인 후 나타나 앵콜곡 ‘Marry The Night’를 공연의 마지막으로 들려준 후 살짝 넘어지는 바람에 ‘꽈당 가가’가 됐는데 큰 부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모두가 인정하는 바와 같이 가가는 예측불허의 미친 캐릭터이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직접 보면 그 이상을 돌려준다. 우리가 누렸던 만족을 세계가 곧 공유하려면 가가는 일단 옥체부터 보존해야 할 것이다. 가가의 투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 갈 길이 구만리인 장기 레이스다.



이민희(음악칼럼니스트)
각종 온라인/오프라인 매체에 대중음악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음악웹진 백비트(100beat.com)의 편집인으로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