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글 보기

[인디뮤직] 도시의 가을밤을 데우는 히치하이커들, 더 문샤이너스 공연 리뷰

2012.09.28


가을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던 하우스 오브 더 퍼플에서 9월 25일에 더 문샤이너스의 공연이 있었습니다. 여름이 지나가는 걸 아쉬워하듯, 더 문샤이너스의 공연은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는데요. 그 화끈한 현장을 칼럼니스트 김 영진님의 글로 만나봅니다.



아직은 여름의 온기를 실은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보름을 며칠 앞둔 달빛 아래 적당히 복작거리는 강남 거리를 지나 신사동 도산공원 옆에 위치한 하우스 오브 더 퍼플(House of the Purple)을 찾았다. 주변의 거리 풍경과는 달리, 외벽의 콘크리트 소재와 메탈 및 블랙 재질의 인테리어가 모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이었다. 내부는 차분하고 안정된 기운이 여유롭게 흐르고 있었다. 하우스 오브 더 퍼플은 현대카드가 퍼플카드 회원만을 위해 만든 멤버십 클럽라운지이자 레스토랑으로서, 이날 깜짝 공연이 있을 라운지바의 아늑한 소파체어와 테이블이 인상적이었다.

평일 저녁, 일과의 피로를 풀어주면서도 다음날을 위해 적절한 긴장감이 필요한 직장인들에게 걸맞은 분위기였다. 정문을 사이에 두고 다이닝 룸 건너편에 마련된 이 바에서는, 가볍게 와인이나 술 한 잔을 하며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특히 이곳에선 현대카드가 마련한 기획으로 한 달에 한 번 뮤지션들의 공연을 열고 있는데, 바로 오늘의 무대를 책임질 팀은 더 문샤이너스(The Moonshiners)였다.
 


로큰롤 밴드 문샤이너스는 꽤 활기차고 경쾌한 음악을 하는 팀이다. 하지만 문득, 어지러운 도심 한복판 강남 거리에 예기치 않은 자태로 자리한 이 공간에서 그들의 공연이 왠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문샤이너스의 도회적 이미지가 이 도시의 차가운 밤과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약간의 우울과 조금의 열기를 동시에 머금은 채 시작된 이날 공연은, 결국 내 추측대로 흘러갔다. 도시의 밤은 차가웠지만, 사람들은 차츰 ‘달을 밝히는 사람들(moon shiners)’의 무대에 녹아들어 갔다.

문샤이너스가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장르는 로큰롤(rock ’n’ roll)이다. 간략히 말해, 미국 남부 흑인들이 연주하던 블루스 음악에 비트가 강조된 리듬 앤 블루스(Rhythm & Blues)가 더해지고, 거기에 주로 백인노동자들이 부르던 컨트리가 가미되어 만들어진 음악을 로큰롤이라 부른다. 이 로큰롤은 현재 우리가 ‘밴드’라 부르는 형태를 최초로 탄생시킴과 동시에, 1950년대 중반 미국 사회가 격변을 겪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문화와 인종을 넘어 다 같이 춤추며 즐길 수 있도록 한 최초의 대중가요로서 자리매김했다. 문샤이너스는 소위 그 ‘태곳적’ 스타일을 주된 지류로 따르는 밴드다. 1950~1960년대에 대중적으로 유행한 초기 록음악 사운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어보면, 이들의 음악은 가장 기본적 형식이라 할 수 있는 8비트 로큰롤뿐 아니라 리더 차승우가 노브레인 시절에 들려준 펑크, 로큰롤과 친족 관계인 블루스나 로커빌리, 그리고 21세기 초반 상당한 열풍을 불러온 거라지록 리바이벌까지, 보기보다 더욱 다채로운 리듬과 음색을 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밴드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스타일리시함이 더해져 ‘문샤이너스 = 고집스럽고 세련된 21세기 한국 로큰롤 밴드’라는 이미지가 생겨난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점이 2006년 데뷔한 이래 문샤이너스가 줄곧 자기만의 스타일에 집중하면서도 동시에 대중적 사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전통적인’ 로큰롤 형식 위에서, 다양한 작편곡 및 연주상의 색과 결을 입혀온 이 밴드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건 이러한 점들 때문이다.
  

 

9시 30분, 대개의 홍대 클럽이라면 한창 공연이 진행되고 있을 시각. 문샤이너스가 바 입구 쪽에 마련된 아담한 크기의 무대로 입장했다.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 사의 스피커와 각종 앰프로 이루어진 사운드 시스템이 장소에 무게감을 더하고, 유리와 메탈 소재의 후면이 관객의 집중도를 높이는 그 무대에, 네 명의 멤버가 각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기타리스트의 얼굴이 낯설었다. 자세히 보니 그는 공식 멤버 백준명이 아닌, 블루스 기타리스트 박상도였다.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백준명이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박상도가 게스트 멤버로서 함께한 것이었다. 참고로 박상도는 써드 스톤(Third Stone)이라는 블루스 밴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로서, 다양한 세션 및 버스킹 공연으로 홍대나 인사동 일대에서 인지도를 쌓아온 연주자다. 예상치 못한 조합 덕분에 오늘 공연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문샤이너스의 리더이자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차승우는, 특유의 어눌하면서도 무심한 말투로 입을 뗐다. “로큰롤은 일종의 연애와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치대도 상대방이 시큰둥하면 뭔가 일이 잘 안 되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여러분한테 어떤 반응을 강요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놀아보자고 저희가 그렇게 직접 요구하는 건, 좀 구리잖아요. 그저 들리는 대로 즐겨주시고, 저희는 저희의 소임을 다 하겠습니다. 그럼 첫 곡 시작할게요.”

공연은 정규 1집 모험광백서(2009)의 수록곡 ‘오리보트’로 시작됐다. 이 곡은 문샤이너스의 공연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신명 나는 댄스 넘버다. 검정 계열로 편하게 차려입은 멤버들은 20여 명의 관객 앞에서 부담감 없이 편한 모습으로 연주를 선보였다. 아무래도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공간 자체는 다른 클럽들과 달리 보다 라운징(lounging)한 분위기 속에서 느긋하게 즐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젊음과 활력을 불어넣는 (30대의) 아이콘’ 차승우가 누구인가. 그는 관객의 호응을 능숙하게 유도해가며 열정적인 퍼포먼스를 연출해갔다. 어떤 공간에서도 자기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객석의 눈과 귀를 붙잡을 수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의 다소 얼빠진 듯한(그래서 매력적인) 표정과 몸짓은 문샤이너스라는 밴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두 번째 곡으로는 ‘열대야’가 연주되었다. 이 노래 역시 1집에 수록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던 노래로, 경쾌한 기타 스트로크와 캐치한 보컬 라인이 거부감 없이 진행되면서 객석은 조금씩 달아올랐다. 뒤편을 바라보니, 바에 턱을 괴고 바라보던 양복 차림의 남성들과 다소곳이 의자에 몸을 파묻고 지켜보던 여성들이 어느새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2집 푸른밤의 BEAT!(2011) 수록곡 ‘모텔 맨하탄(눈물의 테디 보이)’이 매우 격하게 연주되자 호응은 더 커졌다. 술을 한 잔씩 걸치고 무대에 올랐다는 멤버들은, 더 이상 멘트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2007년에 발표된 곡 ‘Lonely Lonely’를 연주할 때에는, 이펙트를 잔뜩 머금은 묵직한 기타 리프와 차승우의 날선 목소리가 공간을 채우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바와 테이블에서 저마다 자유롭게 앉거나 선 채로 무대에 집중하고 있었다. 게스트 연주자 박상도는 가끔씩 기타의 호흡이 맞지 않는 장면을 보이기도 했지만, 눈에 크게 띌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능숙한 완급 조절 능력을 선보이며 문샤이너스의 공연에 처음으로 함께한 것치고 상당히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차승우 스스로 ‘감미로운 곡’이라 소개한 ‘유년기’를 통해서는, 그가 문샤이너스로 활동하기 전 더 하이라이츠(The Hi Lights)에서 들려준 바 있는 낭만적 사운드를 들려줬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다음으로 이어진 연주곡 ‘Rosemary’s Baby’에서 예전의 차차(기타리스트 차승우의 별칭)를 떠올리게 하는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픽업 스위치와 트레몰로 암 등의 장치를 사용해가며 ‘싸나이답게’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오랜만에 ‘인디 1세대, 그때 그 시절의 기타 우상’이었던 차승우가 오버랩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로는 문샤이너스의 대중적인 넘버들이 차례대로 연주됐다. 베이시스트 최창우가 노래한 쓰리코드 펑크록 스타일의 ‘Here We Go’, (차승우의 말을 빌리자면) “본격 로큰롤 곡” ‘Bye Bye Bye(분노의 테디 보이)’, 작년에 발매된 2집 앨범의 타이틀곡 ‘푸른밤의 BEAT!’, 그리고 한없이 밝고 경쾌한 ‘목요일의 연인’까지, 밴드는 시종일관 업템포의 로큰롤로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다 차승우는 술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박상도와 함께 끈적끈적한 블루스 잼을 한동안 주거니 받거니 연주하더니, 1집 타이틀 ‘모험광백서’로 무대를 마쳤다.


애초에 홍보된 공연이 아니었기에, 솔직히 처음에는 10여 명의 ‘칵테일 손님들’ 앞에서 이 밴드가 평소처럼 잘해낼(?) 수 있을까 잠시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문샤이너스를 잘 알지 못하는 눈치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곡이 끝날 즈음, 앵콜을 외치는 관객의 수는 어느새 갑절로 불어나 있었다. 앵콜 요청에 차승우는 (술이 없어) 연료가 바닥났다며 농을 흘렸고, 곧 바에서는 관객들에게도 맥주를 제공했다. 앵콜곡으로는 이들의 또 다른 히트곡 ‘한밤의 히치하이커’가 연주되었고, 사람들은 이제 문샤이너스에 빠져버린 듯 후렴구의 스캣을 따라 부르며 노래를 함께 끝마쳤다. 그리고 그렇게 이 밤을 부유하던 하우스 오브 더 퍼플의 히치하이커들은 아직 남아 있는 이 밤의 휴식 시간을 술 한 잔과 마무리했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또 한 가을밤이 깊어갔다.



 

Writer. 김 영진

2005년부터 음악웹진 [weiv]에서 활동해왔다.
현재 프리랜서 출판편집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