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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뮤직] 치밀하게 만든 음악 속 깊숙한 감정선, Grizzly Bear

2012.10.08


포크록을 기반으로 사이키델릭하면서도 깊고 풍성한 음들의 조화를 들려주는 브룩클린 출신의 4인조 인디록 밴드 그리즐리 베어(Grizzly Bear) 새앨범 Shields가 9월 18일에 발매되었습니다. 음악 웹진 피치포크(pitchfork.com)에서 9.1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이 앨범 역시 Best New Music에 선정되어 탁월한 음악성을 다시한번 검증했죠. 마치 잔잔한 물결과도 같은 감정의 내밀하고도 섬세한 면들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파도가 휘몰아치며 흔들어놓는 것처럼 들을수록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음악들인데요. 음악평론가 김영혁님의 글로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음악을 만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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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ber
다니엘 로센(Daniel Rossen)
크리스토퍼 베어(Christopher Bear)
에드 드로스테(Ed Droste)
크리스 타일러(Chris Taylor)


Albums
Horn of Plenty, 2004
Yellow House, 2006
Veckatimest, 2009
Shields, 2012



숩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를 보기 위해 공연장에 갔다가 이들을 처음 만났다. 멤버들이 여러 악기를 다루면서 평범하지 않은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 당시 건반을 치면서 노래하는 멤버 등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이름은 에드 드로스테 Ed Droste이다.) 밴드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는데 공연 후에 인터넷을 뒤져봐도 많은 정보가 존재하지는 않고 있었다. 어쨌든 이름을 꼭 기억해둬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즐리 베어(Grizzly Bear). 애니멀 컬렉티브(Animal Collective)의 판다 베어(Panda Bear)의 이름과 흡사해서 외우기는 쉬웠다. 그 때가 2005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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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어느 날 웹진 피치포크(pitchfork.com)에 들어가보니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그들이 두 번째 앨범 Yellow House를 발표한 직후의 일이었다. 2004년에 발표된 첫 번째 앨범은 그리즐리 베어의 데뷔 앨범이라기보단, 에드의 솔로 앨범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4인조 형태의 밴드로는 실질적으로 이 두 번째 앨범이 데뷔 앨범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앨범에는 에드의 곡 외에도 가장 나중에 밴드에 참여한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이기도 한 다니엘 로센(Daniel Rossen)의 곡도 담기기 시작했다. 에드의 집 안에서 만들어진 데뷔작에 비해 큰 걸음으로 전진한 결과물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컴퓨터 스크린으로 보던 화면이 대형 화면으로 바뀌었을 때 느끼는 차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째 앨범이 대단히 비범한 녹음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뜻이라기보단, 첫 번째 앨범이 레코딩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음악가에 의해 탄생했기 때문에 생겨나는 차이였을 것이다.

차이는 기술적인 부분에만 있지 않았다. 여러 악기를 다루는 4명이 공동으로 참여하면서 사운드가 풍부해졌다. 다니엘의 밴조 연주가 클라리넷, 플룻과 같은 목관 악기를 담당하는 크리스 테일러의 연주와 만나면서 포크가 70년대의 아트록을 만난 느낌의 음악이 탄생했다. 즉각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보다는 시차를 두고 생겨나는 감흥이었는데, 그것을 되새기게 하는 것에는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곡을 듣는 것 같은 보컬 하모니도 있었고('Colorado'), 아이언 앤 와인(Iron & Wine) 이 머큐리 렙(Mercury Rev)을 만난 것 같은 순간과도 같은 촘촘하고도 몽환적인 사운드 층위도 있었다. ('On a Neck, On a Spit'). 2007년 한 페스티벌에서 이들과 다시 조우했을 때 밴드 멤버들은 분주히 앨범 속에 담긴 사운드를 재현하고 있었고, 한 장의 앨범을 만드는 동안 전혀 다른 세계로 전진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 나은 스튜디오와 장비가 더해진다면 더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즐리 베어는 그저 동물 이름을 쓴 수많은 밴드 중 하나 정도로 인식되는 상황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들의 이름은 에드의 옛 '남자친구'의 별명에서 따왔다. 공교롭게도 드러머의 성이 Bear이지만 그를 만나기 전에 밴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라디오헤드는 북미 투어에 이들을 오프닝 밴드로 '초대'했다.




 2009년에 발표된 세번째 앨범 Veckatimest는 기대 이상이었다. 더 듣기 쉬워지고, 사운드는 더 선명해지고 더 밝아졌다. 비치 하우스의 빅토리아가 목소리를 덧붙인 'Two Weeks'의 코러스. "Would you always?, Maybe Sometimes?...Make it easy, Take your time" 부분은 2000년대 들어 만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의 순간 중 하나였다. 앨범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 'While You Wait For The Others'를 들으면 음악이 주는 공기가 조금 달라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전 앨범에 뜨거운 사막지대에서 열린 페스티벌의 뜨거움과 거기에 맥주 몇 잔을 몸 안에 투여했을 때 생겨나는 오후 시간대의 몽환적인 느낌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시계가 오른쪽으로 좀 더 이동한 밤시간대의 공기가 있었다. 악기는 여전히 많이 사용하지만 사운드는 좀 더 간결해지고, 하모니는 더 선명해지는 그런 팝음악의 순간도 종종 있었다.

가장 선두에 위치한 'Southern Point'만 들어도 그랬다. 느낌은 비슷하지만 곡에 빠져들거나 곡의 일부분을 기억하게 되기까지 걸리는 속도가 달랐다. 일반적인 대중음악에 익숙한 이들에게 더 친밀해진 음악은 밴드 멤버들의 다양한 소리들을 조화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오케스트라처럼 더 잘 통제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더티 프로젝터스(Dirty Projectors), 베이루트(Beirut) 등 주변의 친분 있는 밴드들과의 협연, 그리고 밴드의 프로듀서인 크리스 테일러의 보다 다양한 프로듀서 활동은 그런 방면에서 분명 더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했을 것이다. 앨범은 빌보드 차트 8위에 진입했고, 제이-지와 비욘세 부부가 이들의 공연장을 찾아가 극찬을 할 정도로 대중적 인지도는 급격하게 향상되었다. 멤버들은 솔로 활동을 보다 많은 대중의 관심과 함께 할 수 있었고, 2010년에는 영화 "블루 발렌타인"(국내에는 2012년 개봉)의 음악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2012년 9월, 그들이 돌아왔다. 여전히 크리스 테일러가 프로듀싱을 맡고, 밴드 멤버 전원이 곡을 만드는데 참여한 앨범 Shields로. 이들은 두번째 앨범을 녹음한 'Yellow House'(앨범 제목은 그들이 녹음한 장소 이름이다.)으로 돌아가 앨범 제작을 했다. 그 곳은 에드의 할머니가 거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곳에서 그들은 새로운 곡, 그리고 그들이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법, 새로운 작업방식을 만들어 냈다. 피치포크와의 인터뷰에서 에드는 "드럼과 보컬이 좀 더 선명해지고 소리가 커졌다."라고 밝혔다. 사운드는 그 말 그대로 좀 더 직선적인 형태로 변화했는데, 자아성찰에 대한 내용을 좀 더 빠르고 공격적인 리듬으로 표현한 'Speak In Rounds' 같은 곡에서 그 변화를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그렇다고 밴드의 색깔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멜로디나 가사, 곡의 구성 면에선 두 번째 앨범과 세 번째 앨범 사이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새 앨범이 보여주는 변화는 힘의 차이, 긴장감의 차이다. 이전에 마치 노를 젓듯 천천히 항해하는 과정에서 획득된 견고함이 있었다면, 여기에서는 보다 빠르게 물살을 가르면서 강건한 만듦새를 보여준다. 이제 가속기가 붙은 것이다. 'Yet Again'처럼 전작의 'Two Weeks'를 이을만한 싱글도 있다.

노선에 있어선 그리즐리 베어를 좋아한다고 밝혔던 라디오헤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도 있다. 라디오헤드가 Kid A 이후 일반적 대중들이 기대하던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한 편에서 새로운 기대감을 만들고 유지시켜 왔다면, "Kid A 이후 라디오헤드의 팬"들이 갖고 있을 법한 종류의 기대감을 초반부터 충족시켜 온 그리즐리 베어는 Shieds를 통해 좀 더 광범위하면서도 치밀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 편의 대서사시와 같은 느낌을 주는 앨범의 마지막 곡 'Sun In Your Eyes'는 이들 음악의 정점과도 같다. "So bright, so long, I'm never coming back" 부분이 반복되는 동안 느낀 풍부한 감정과 흥분은 근래 그 어떤 밴드도 가져다 주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여기에는 70년대 록밴드들이 만들어 낸 사운드와 2012년과의 교감도 있고, 그리즐리 베어의 지난 앨범과의 연결 고리 같은 것도 있다. 치밀하게 만든 음악이지만 그것을 느낄 수 없게 하는 깊숙한 감정선이 곡 전체에 퍼져 있다는 점이 이들의 탁월한 점이다. 연출은 더욱 드라마틱해졌다. 




어떤 장르의 집 안에 들어가서 길을 찾는 대신, 스스로 섭렵해 온 음악들을 갖고 보다 자연스럽고 튼튼한 집을 짓는 방식에서 오는 독창성, 그래서 그 다음 작업에 대한 호기심을 증가시키는 존재감, 때때로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팝적인 멜로디도 만들 수 있는 능력.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그리즐리 베어는 특별한 존재다. 예컨대 멜로트론 연주에 금관악기를 덧붙이면서 드라마틱한 순간을 만들어 내는 이 밴드의 음악은 아무래도 전화기로 길을 거닐면서 듣는 것보단 턴테이블에 올려 놓고 듣거나, 공연장에서 몰입하면서 느끼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들은 음악적으로 이미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밴드 중 하나가 되어 있다.



Writer 김 영혁

 

회사원 자격으로 음반을 소개하는 일을 꽤 오랫동안 했다. 레코드를 좋아해서 레코드페어를 시작했고,

공연을 좋아해서 공연 기획을 시작했으며,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서 오래 다니던 회사를 관뒀으나

여전히 중심은 음악이다. 주로 음악에 관한 글을 쓰지만 유일한 저서는 부업인 까페 창업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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