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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메디 프랑세즈] 사랑 없이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몰리에르가 사랑했던 여인들

2011.09.30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4 코메디 프랑세즈의 공연 작품 <상상병 환자>의 작가인 몰리에르는 17세기 프랑스 상류사회에 파고든 가짜 신앙, 귀족들의 퇴폐 상 등을 풍자하는 <타르튀프>, <돈 후안>과 같은 작품을 창작했습니다. 그는 가벼운 풍속극을 넘어서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탁월한 심리를 묘사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인물 창조로 당시 비극보다 한 단계 낮게 취급되었던 희극을 격상시켰습니다. 사랑에 관한 명언과 대사를 수도 없이 쏟아낸 몰리에르의 창작열에 도화선 역할을 한 영감의 뮤즈, 연상의 연극배우였던 마들렌 베자르와 몰리에르의 부인 아르망드 베자르의 로맨스를 소개합니다.


연인 마들렌 베자르와 연극을 만나다


마들렌 베자즈는 부유한 실내장식업자의 장남으로 최고의 교육을 받았던 몰리에르를 연극에 발을 들여놓게 한 몰리에르의 연인입니다. 몰리에르는 학업을 마칠 무렵 마들렌 베자르를 알게 되었고, 연극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일뤼스트로 테아트(l'Illustre Théâtre, 유명 극단)를 결성하여 마들렌 베자르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몰리에르가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연극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자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당시 연극배우라는 직업이 환영 받지 못한 직업이었기 때문에 몰리에르는 장 밥티스트 포클랭이라는 본명을 감추고 예명 ‘몰리에르’를 사용했습니다. 연상의 여인 마들렌 베자르는 매혹적인 모습으로 이미 사교계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마들렌 베자르는 초기에는 주로 비극의 여주인공을 연기했으며, 몰리에르 극에서 희극적인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일뤼스트로 테아트는 관객을 확보하지 못하고 해산하게 됩니다. 이후 몰리에르와 마들렌 베자르는 동료와 함께 남부 프랑스 순회공연을 떠나게 되죠. 몰리에르는 이때 샤페르와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와의 교류를 갖고, 가산디의 유물론 철학을 접하며, 새로운 문학이론을 연구하게 됩니다.

파리를 떠난 몰리에르와 마들렌 베자르는 에페르농 공작의 후원을 받고 있던 뒤프렌 극단과 합류하게 됩니다. 몰리에르의 초기 연극 활동은 지방에서 이루어졌던 것이죠. 몰리에르가 이탈리아 희극을 배워 극작을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지방에 잔존하고 있던 중세 파르스의 서민적인 웃음, 당시 유행하던 이탈리아 희극의 경묘한 움직임을 연구하며 몰리에르는 당시 높이 평가되던 비극이 아닌 ‘희극’의 참된 묘미를 알게 됩니다. 몰리에르는 마들렌 베자르를 만나 연극에 투신하고, 극단의 실패로 지방 순회 공연을 하며 희극 작가로서의 도약을 하게 된 것이죠.


1658년 파리로 돌아온 몰리에르와 마들렌 베자르는 루이 14세 앞에서 <사랑에 들린 의사>를 상연하면서 데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파리에서의 인기와 영광은 확고해졌지만, 몰리에르는 극도로 쇠약해지게 됩니다. 작가뿐만 아니라 배우, 연출가를 병행한 몰리에르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게 된 것입니다. 몰리에르는 연인 마들렌 베자르와 결국 이별하게 됩니다. 이별한 연인이 되었지만, 몰리에르와 마들렌 베자르는 서로의 벗으로 우정을 유지하며 연극에 몸을 담는 동료 배우이자 예술인으로서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4 코메디 프랑세즈 <상상병 환자>는 몰리에르가 륄리의 음모에 희생되어 왕의 총애를 잃고, 아들과 평생의 연인인 마들렌 베자르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졌던 몰리에르가 쓴 마지막 작품입니다.


아르망드 베자르와 불행했던 결혼생활, 그래도 사랑했다


1662년 몰리에르는 같은 극단의 여배우이자 20세나 어린 아르망드 베자르와 결혼했습니다. 바람기 많은 아르망드 베자르와 질투심 많은 몰리에르의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평화로운 결혼 생활을 원했던 두 배우에게는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죠. 
 
사랑하는 여인에게 차인다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에 치명적인 타격이다.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도 잊지 못한다면 잊는 시늉이라도 하라.
- 몰리에르 

오늘 날 이별을 한 수많은 연인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몰리에르의 사랑에 관한 명언은 마들렌 베자르와 이별, 아르망드 베자르와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떠올리게 합니다. 결혼 생활이 불행할수록 몰리에르는 더욱 더 연극에 매진했습니다. <아내들의 학교>를 성공리에 공연한 이후 그의 희극을 비난하는 여러 극작가들과의 논쟁에 휩쓸리는 몰리에르. 이어 발표한 <타르튀프>와 <돈 후안>이 종교인에게 거센 비난을 받았고 이 무렵, 갓 태어난 아들이 죽고, 아르망드 베자르와의 갈등도 깊어집니다. 몰리에르와 아르망드 베자르는 1665년 딸이 태어난 뒤 헤어져 1671년 화해할 때까지 극단에서만 만나게 되죠. 아르망드 베자르는 1664년 아들을 낳았을 때 잠깐 연기를 중단했을 뿐 그 해 봄부터 주요 배역을 맡아 연기했습니다. 실제 그녀 자신을 묘사했다고 할 수 있는 〈염세가〉의 ‘셀리멘’ 역으로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가상의 병자〉에 나오는 ‘앙젤리크’ 역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위선자〉가 초연되었을 때 ‘엘미르’ 역을, 〈부르주아 신사〉에서 ‘루실’ 역을 맡기도 했죠.


화해를 하긴 했지만 지난 아르망드 베자르와의 갈등과 작품의 파문 등의 일로 몰리에르의 병은 악화되고 결국 <상상병 환자>의 무대에서 쓰러져 생을 마감합니다. 몰리에르는 생의 마지막 순간 아르망드 베자르를 찾습니다. 아르망드 베자르와의 불행했던 생활을 보냈지만, 몰리에르는 아르망드 베자르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몰리에르가 죽은 뒤 미망인 아르망드 베자르는 배우들을 이끌고 파리의 테아트르 게네고 극장으로 옮깁니다. 왕의 포고령으로 극단의 나머지 사람들은 파산한 마레 극단 출신 배우들과 합휴하게 되죠. 트루프 뒤 루아로 알려진 이 새로운 연합 극단은 처음에는 부진했지만, 1679년 당대의 주요 비극 여배우였던 마리 샹메즐레의 출연을 확보하고 파리에서 부르고뉴 극장의 극단을 흡수하게 되는 이 극단은 현재 코메디 프랑세즈의 전신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사랑없이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삶에 깊숙이 배어든 여인들과 함께 했던 연극 인생 전부를 ‘사랑’했던 남자 몰리에르. 그는 당대 최고의 희극 작가 이전에 지치지 않는 사랑으로, 사랑 안에서 살았던 열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몰리에르에게 영감을 준 뮤즈이자 사랑했던 두 여인, 마들렌 베자르와 아르망드 베자르와의 사랑은 행복과 아픔이 공존하는 사랑의 속성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운 로맨스였습니다.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과 마지막 순간 사랑했던 여인을 찾던 몰리에르의 유작 <상상병 환자>를 오는 10월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4 코메디 프랑세즈로 만나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