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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브리티시록의 계보 1탄, 1960 ~ 1980년대

2012.08.16

 

2012 런던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에는 아주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문학과 음악의 나라, 영국만의 자존심을 우뚝 세운 브리티시록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입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개막식 음악을 폭발적인 록 음악으로 선보인데 이어 개막식과 폐막식을 화려하게 장식한 거대한 콘서트는 영국이 보유한 풍부한 문화적 자산으로 전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처럼 런던 올림픽을 전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변모시킨 일등 공신은 바로 브리티시록이었습니다. 1950년대 말, 세계를 강타한 로큰롤 열풍과 브리시티 인베이전의 정점, 비틀즈의 등장부터 1980년대 인디 록의 선전까지, 음악 평론가 차우진님의 글로 브리티시록의 계보를 따라가봅니다.

 


  

오는 9월 24일(월)에 내한하는 영국 밴드 KEANE은 기타 대신 피아노로 록을 연주한다. 킨의 음악은 미국의 벤 폴즈 파이브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21세기의 영국 록의 현재를 상징하기도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개/폐막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듯, 브리티시록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음악 형태로 다양한 형식의 음악을 받아들이며 로큰롤의 토대부터 신조류까지 제시해왔다. 킨의 내한공연에 맞춰 ‘아주 아주 간단하게’ 살펴보는 시대별 영국 록의 계보도. 여기서 다뤄지지 않은 음악들은 직접 찾아서 채워보자.

 

 

1960년대 | 로큰롤의 탄생과 브리티시 인베이전

 

특징: 록은 1950년대 말 미국의 알앤비와 컨트리가 결합해 발생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태어난 록은 특히 영국에서 다른 음악들과 맞붙으며 발전을 거듭했다. 1955년 이후에 영국에 상륙한 로큰롤은 젊은이들을 통해 급속하게 확산되었고 이런 배경은 60년대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아예 ‘브리티시록’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기는 근거가 된 특유의 형식과 역사를 형성한 60년대 영국의 로큰롤은 비트뮤직, 비트 록, 로큰롤러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60년대 영국 록의 정점은 비틀스가 활동한 63년부터 69년 사이이며 64년 비틀스가 미국의 <애드 설리번 쇼>에 출연한 이후 수년 간 지속된 ‘영국 록의 미국 침공(브리티시 인베이전)’은 그 상징적인 순간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음반 커버에 ‘영국 출신’이란 홍보문구만 붙어도 매진될 정도였다고 한다.

 

대표 아티스트 & 앨범 | 비틀스, 더 후, 롤링스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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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The Beatles): 말이 필요 없는 전설적인 밴드. 63년부터 69년 사이에 단순하지만 매력적인 ‘리버풀사운드’를 창조하고 록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평을 받는다. 데뷔 후 1년 동안 'Please Please Me', 'I Want to Hold Your Hand', 'Love Me Do' 등의 히트로 영국 최고의 밴드가 되었으며 64년 이후에는 미국에서도 ‘비틀매니아(Beatlemania)’를 탄생시킬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A Hard Day's Night (1964), Beatles for Sale (1964), Help (1965), Rubber Soul (1965), Revolver (1966), Sergean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 The Beatles (1968), Yellow Submarine (1969) 등의 앨범이 있다.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62년 런던에서 결성되었으며 비틀스와 달리 반항적인 이미지로 경쟁구도를 형성하며 활동했다. 가장 오래된 밴드로 70내의 나이에도 여전히 반항아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밴드. The Rolling Stones (1964), I Can't Get No Satisfaction (1965), Sticky Fingers (1971) 등의 명작이 있다.

 

 

1970년대 | 그램과 펑크 록

 

특징: 70년대의 영국 록은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고 발전했다. 그 중에서도 글램(혹은 글리터 록)과 펑크 록의 등장은 팝 역사상 가장 독특한 형태이자 이후의 음악사를 완전히 바꿔놓을 정도로 강력했다. 글램은 번쩍이는 의상과 중성적인 이미지의 캐릭터, 그리고 강렬한 하드 록 사운드가 결합된 형태로 등장했으며 SF와 퀴어 컬쳐, 신화와 신학 등에서 모티브를 따온 서사적인 가사가 특징이다. 


한편 펑크 록은 강렬하면서도 단순한 코드(쓰리 코드 주의: 3개의 코드만 가지고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태도)와 빠른 리듬을 특징으로 하며 런던 뿐 아니라 뉴욕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경제 불황과 세대 갈등을 배경으로 탄생한 펑크 록은 섹스 피스톨스와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중심으로 음악 뿐 아니라 패션과 문화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폴리스, 엘비스 코스텔로, 프리텐더스에 이르는 뉴웨이브, 펑크 밴드들은 ‘제 2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고 불리며 미국 차트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대표 아티스트 & 앨범 | 데이빗 보위, 섹스 피스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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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보위: 1967년에 데뷔한 싱어송라이터로 초기에는 사색적이고 미학적인 음악을 구사했다. 1972년 가상의 슈퍼스타 ‘지기 스타더스트’를 등장시킨 컨셉트 앨범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을 발표하며 글램의 선두주자로 여겨진다.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이 가상의 인물은 데이빗 보위의 정체성을 위협하듯 여겨지기도 했는데, 데이빗 보위는 1년 만에 글램 록 스타로서의 ‘지기 스타더스트’를 영원히 매장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섹스 피스톨즈: 77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행사를 겨냥해서 여왕의 사진 눈과 입 주변에 제목 God Save The Queen을 인쇄한 데뷔 싱글을 발표한 섹스 피스톨즈는 직설적인 사운드와 도발적인 태도로 당시 청년 하위문화를 주류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같은 해 데뷔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를 발표한 이들은 제목의 욕설 때문에 레코드 회사와 레코드 판매점의 법정 소송으로도 비화되었다(제작사인 버진 레코드가 승소했다). 섹스 피스톨즈는 단 한 장의 앨범으로 음악사를 바꿔놓은 극소수의 밴드였다.

 

 

1980년대 | ‘매드체스터 사운드’와 인디 록

 

특징: 80년대는 댄스음악과 인디 록이 동시에 등장한 시기였다. 빠른 비트의 하이-에너지(Hi-NRG) 사운드가 등장해 젊은이들을 댄스 홀로 이끌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쟁글거리는 기타 톤에 우울하고 현실적인 노랫말을 담은 인디 록이 인기를 끌었다. 아즈텍 카메라나 스미쓰 같은 밴드들이 인디 록을 한 세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로 만들었고 펑크의 DIY 정신으로부터 발전한 인디 레이블과 커뮤니티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특히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로큰롤과 하우스 비트를 결합한 ‘매드체스터 사운드’가 등장하며 인디 록의 또 다른 전기를 마련했다. 이 외에도 콕토 트윈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같은 슈게이징이나 드림팝 밴드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 80년대의 인디 록은 90년대의 통칭 ‘브릿 팝’이 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대표 아티스트 & 앨범 | 스미쓰, 스톤 로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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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쓰: 84년 1집 The Smiths로 데뷔한 밴드로 보컬의 모리세이와 기타의 자니 마는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존 레논과 비교될 정도로 독특한 사운드를 정립했다. 특히 빼곡하게 채워진 기타 사운드의 ‘찰랑거리는’ 소리는 자니 마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고 모리세이의 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내용의 가사는 10대들의 불안과 불만을 대변한다는 평을 받았다. 83년 'Hand In Glove'를 첫 싱글로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밴드는 87년까지 The Smiths (1984), Meat Is Murder (1985), The Queen Is Dead (1986), Stangeways, Here We Come (1987) 등 4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고 해체했다.

 

스톤 로지스: ‘매드체스터 사운드’를 대표하는 밴드로 60년대 사이키델릭과 기타 팝, 댄스 리듬을 섞은 데뷔 앨범 The Stone Roses로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소속사와의 갈등과 소송으로 수년을 허비하다가 결국 밴드는 해체되고 보컬의 이언 브라운과 기타의 존 스콰이어가 따로 활동하다가 2011년에야 재결성하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아시스, 그리고 비디아이의 리암 갤러거가 특히 존경하는 밴드이기도 하다.

 

 



Writer. 차우진

 

대중음악 웹진 [weiv] 에디터. [청춘의 사운드] 저자.
여러 매체에 음악을 비롯해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