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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워치] 블랙 워치처럼 관객을 끌어당기는 3개의 낯선 무대

2012.09.20

 

현대카드 Culture Project 08 Black Watch는 특별합니다. 세계적인 연출가 존 티파니의 연출과 배우들의 역동적인 연기는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또한 파격적인 무대구성으로 관객들을 낯선 곳으로 초대하죠. 낯선 곳에서 관객들은 새로운 연극을 마주하게 됩니다. 전 세계가 블랙 워치에 열광하는 것은 이 낯설고 새로운 연극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죠. 이처럼 놀라운 기발함으로, 혹은 그보다 더 실험적인 상상력과 입체감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작품들을 이혜령님의 글로 만나봅니다.

 


  

TV 드라마나 영화가 할 수 없는 것을, 바로 지금, 바로 눈 앞에서 무대만의 통찰을 통해 선보이는 뛰어난 작업들이 있다. 통상적으로 ‘실험적’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이 바로 그러한 구분 아래에 있는 것. ‘실험적’이라고 평가되는 작품들은 우리가 알던 익숙한 무대, 뻔한 장면 전환, 당연한 마무리와 커튼 콜이 가져오는 지루함을 완전히 전복한다. 낯선 음악과 움직임, 전환이 돋보이는 ‘실험적’인 연출은 이미 알고 있던 고전이나 소재에 대한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블랙 워치처럼 놀라운 기발함으로, 혹은 그보다 더 실험적인 상상력과 입체감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작품들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단순히 실험으로만 끝나지 않은, 말하자면 성공적인 실험의 무대들 말이다.

 

 

파격과 실험성, 기발함의 완벽한 조합,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Hamlet (햄릿)

 

 

 

이미지 출처

 

 

유럽에서도 가장 핫플레이스로 통하는 도시 베를린의 매력은 ‘낯섦’에서 온다. 분단의 흔적이 하나의 도시 안에 예술적으로 압축되어 있다는 포인트는 이제 너무 식상할 지경이고, 각지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아트마켓부터 밤새워 이어지는 파티와 클러빙까지 핫한 것들이 모두 거기에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선 감각에 깊은 예술적 성취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을 꼽자면,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을 들겠다. 1962년 창단 이후 독일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극단! 뛰어난 연출가이자 예술감독인 토마스 오스터마이어를 중심으로 날카롭게 반짝이는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셰익스피어의 고전 <햄릿>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손을 거쳐 샤우뷔네의 대표작으로 자리잡았다. 실은 벌써 한국에서도 2010년 공연되어 새롭다 할 수는 없겠지만, 작품에 가미된 연출가의 연극적인 상상력과 흥미로운 실험은 언제 떠올려도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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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흙더미가 앞 공간을 뒤덮은 가운데 시작된다. 그 위로 물이 뿌려지면, 빗 속에서 진행되는 선왕 햄릿의 장례식 장면이 연출된다. 빗줄기와 나란하게 금속 줄들이 무대 중앙에서 커튼과 같은 막을 이루고 있다. 배우들은 그 앞뒤를 오가며 서로 다른 입장에 따라 감정을 속이고, 음모를 드러낸다.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햄릿이 촬영한 인물들의 대화는 금속 커튼 막에 투사된다. 이미 미디어 아트가 연극 무대에 접목되며 영상기술의 무대화가 낯설만한 단계는 넘었다고들 하지만, 같은 미디어 아트도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식으로 도입되느냐는 관객에게 전혀 다른 감흥을 주기도 한다. 영화적 기법뿐 만이 아니다. 충격적인 배우의 움직임과 오브제를 통한 표현, 그리고 록음악이 접목된 무대 위에는 사뭇 특별한 햄릿과 오필리어가 서 있다. 고전의 깊이를 더 파헤치고 거기에 또 다시 실험하는 샤우뷔네의, 그리고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햄릿>. 그의 작업에는 파격과 실험성, 기발함이 완벽하게 적절한 수준으로 스며들어 있다. 흘러 넘치지 않아 과하지 않고, 동시에 결코 부족함이 없는 무대와 연출, 배우들은 낯섦에도 불구하고 진정 몰입하기에 충분하다.

 


“힘들면 지둘려. 그럼 바람이 불어 온다.” 오태석의 The Tempest (템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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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오태석의 스타일로 재구성된 셰익스피어스의 템페스트는 오묘한 매력이 풍성하고 또 깊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공부한 영문학과 학생에게도 익숙하지 않고, 전통 연희를 공부하고 즐기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렇다고 낯설거나 어색하지도 않은 오묘함이 있다. 말하듯 자연스러운 대화를 주고 받지 않고, 대신 노래하듯 우리 전통 운율에 맞춰진 대사는 외국인들의 마음을 더 잘 움직였다. 뜻이 무엇이건 간에 리듬에 맞춰 이야기를 따라가는 배우들의 움직임에서 상상력이 배가 되기 때문일까. 그렇게 오태석 방식으로 재 탄생된 템페스트는 2011년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극찬을 받은 바 있으며,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욕망과 배신, 복수와 용서가 이어지는 원작 <템페스트>는 그저 따뜻하거나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삼국유사 중 가락국기의 구전이 덧칠 되면서, 마치 우리의 구전 설화나 민담처럼 따뜻하고 즐거운 용서가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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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빛깔의 한국적인 의상, 싸리 빗자루가 세워진 심플한 무대, 북소리와 징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3•4조나 4•4조로 전해지는 대사들은 지극히 전통적이면서도 낯설다. 따지고 보면 한국적 전통이라고 하기엔 완전히 한국적인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전혀 새롭다. 아마도 이 작품이 진정 성공적인 실험이었음 알 수 있게 하는 지점이 아닐까? 실험적이라는 표현에는 완벽하지는 않다는 뉘앙스가 언뜻 비치기 마련. 하지만 이미 수 편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색을 깊고 풍성하게 형성한 거장의 실험은 그의 천재적인 상상력이 절정에 달한 무대가 되었다. 시조의 운율에 맞춰진 대사들의 위로가 그리도 따뜻하게 마음에 스며든다.

 


무대라는 캔버스를 위한 예술, 로버트 윌슨의 Einstein on the Beach (해변의 아인슈타인)

 

일단 너무 당황하지 말자. 하지만 무대 위에서 서로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제각각 자신의 파트에서만 열연하는 배우와 음악, 소품이나 무대 이미지들을 보면 분명 당황할 것이다. 전혀 공통분모가 없는 기차, 우주선, 텍스트, 젊은이들이 묘한 분위기 속에서 섞이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체 이 무대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와 같은 질문에 로버트 윌슨은 일단 ‘오페라’라고 정리했다. 하지만 이 또한 복합적인 예술 작품이라는 측면에서의 장르 구분일 뿐, 전통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오페라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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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음악가 필립 글래스, 현대 무용가 루신다 차일즈와의 공동 창작 작업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로버트 윌슨의 대표적으로 꼽힌다. 1975년 글래스와 함께 처음 작업을 시작할 당시 다양한 전위 예술의 흐름과 꽤 친숙했던 글래스는 유사한 예술적 배경을 가진 윌슨과 쉽게 유대감을 형성시켜나갔다. 윌슨은 작업을 시작할 때 연극 대본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지 연극이라는 분야를 선도적으로 이끈 연출가답게, 화가와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대본 분석보다 앞서, 몇 개의 무대 이미지를 스케치하는 식으로 진짜 그림을 그린다. 그리하여 텍스트가 아닌 시각적인 이미지에 기반한 연극이 만들어졌다. 세 사람은 아인슈타인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설정한 후 각자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해하고 또 조립한 이미지를 무대에 옮겼다.

 

 

미지 출처

 

 

그들의 콜라보레이션은 줄거리에 국한되지 않은 새로운 시공간적 구조를 완성해냈다. 무려 5시간 동안 줄거리도 없이 진행되는 연극에 관객들은 당황했고, 누군가는 자리를 뜨고, 누군가는 쉬었다가 다시 들어와 보기도 했다. 그러나 공연이 시작될 때 당황스런 무대를 마주하여 엉거주춤 굳어버렸던 시선은 그 무대가 끝난 후에도 한참을 멈춰있게 하는 감동으로 이어졌다. 평단의 찬사와 대중적 성공. 윌슨의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사람들은 기존에는 누구도 경험케 해주지 않았던 낯선 감정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했다. “아무것도 이해하려고 할 필요 없다. 이 작품은 직접 보고 거기에 빠져들어 헤매도록 만들어졌다"는 그의 말대로 말이다.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천재적인 무대, 블랙 워치

 

스코틀랜드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 블랙 워치는 그야말로 화제작이다. 끊이지 않는 찬사와 함께 이슈를 낳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혹은 리뷰를 남긴 언론사에 따라서 제각각 이다. 하지만 이라크 파병 문제를 다뤘다는 소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거나 군대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도하며 깨닫는 현실이 주는 가감 없는 충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 격찬의 이유를 단정짓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블랙 워치와 비슷한 소재나 전쟁이 주는 충격에 관해서는 수없이 많은 전쟁 영화나 소설, 연극에서도 이야기해왔다. 게다가 구체적인 내용이란 원작에서 더욱 심도 있게 다뤄졌다. 그렇다면 뭘까? 자, 똑같은 물도 다른 형태의 그릇에 담아내면 그 모양이 달라지기 마련. 즉 같은 소재와 이야기도 무대화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입체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블랙 워치는 무대 위에 구현된 실험적인 상상력이 선명히 돋보인다. 게다가 남자로만 구성된 12명의 배우가 만드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창의적인 구조물, 강렬한 음악이 낯선 방식으로 구성되어 천재적인 무대를 꾸렸다. 실험적인 작품을 통한 남다른 감동에 목마른 가을, 때 마침 찾아온 이 공연을 운명적이라고 말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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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존 티파니는 블랙 워치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보인다. “이것이 스코틀랜드가 더없이 자랑스러워할 가장 확실한 연극”이라고 못박는 그의 자신감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시대를 관통하며 소통을 이뤄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는 무대와 음악을 통해 실험적인 연출을 선보일 뿐 만 아니라, 깊고 뾰족하게 인간과 삶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말대로 이 작품에는 나레이션, 노래, 움직임, 코미디, 영화, 정치, 무엇보다도 관객들과의 소통하려는 시도가 모두 담겨 있다. 전혀 격식을 따지거나 딱딱하지 않게 동시대적인 사건과 이슈들에 깊게 관여하며 바로 지금, 현재를 향해 내달린다. 이런 깊이가 없었다면 역동적인 움직임이나 창의적인 무대, 음악도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블랙 워치에 대한 전 세계의 찬사에는 누구도 이견을 갖지 않는다.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이는 이번 공연을 통해, 더 늦기 전에 그 격찬의 흐름에 합류해보자.

 

 


 

Writer 이혜령(@iamflowering)

 

예술파티 프로듀서이자 뮤지컬 제작사 팀장이었고 현재는 서울대 공연예술학협동과정 학생 신분으로

씬플레이빌 공연잡지 객원기자와 하이서울페스티벌 해외팀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