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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도 도밍고] 오페라를 대중 속으로, 세계 3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2010.04.15

 

현존하는 테너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음악성을 인정받은 최고의 테너를 꼽으라면 단연 플라시도 도밍고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09년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Ⅳ의 주인공은 플라시도 도밍고였습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Ⅳ - 플라시도 도밍고’의 주인공이었던 플라시도 도밍고의 인기 비결과 더불어 그의 히스토리를 알아보겠습니다.

 

 

 

 

민속 가수에서 오페라 가수로

 

플라시도 도밍고는 1941년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습니다. 천재 뒤에는 꼭 그 유전자를 물려주신 부모님들이 있듯, 그 역시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은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비록 클래식 가수는 아니었지만 누구 못지 않게 음악을 사랑하고 자유롭게 노래하는 에스파냐의 민속 오페라 가수였습니다. 그 덕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쉽게 음악적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음악을 처음 시작한 것은 부모와 함께 멕시코로 이주한 8살 때부터였습니다. 이 당시 그는 음악의 기초를 닦았던 시기로 음악을 처음 시작하는 여느 사람들처럼 플라시도 도밍고도 피아노와 지휘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성인이 되기 전에는 그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에스파냐의 전통극으로 노래와 춤, 연주 등이 어우러진 연극인 사르수엘라 극단의 가수로 활동했습니다. 명테너 파바로티에 비해 연기력이 뛰어나고 호소력이 짙다는 평가를 받는 플라시도 도밍고는 이 시절에 그의 연기력을 갈고 닦을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최고가 되다

 

본격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살이 되던 해인 1961년의 일입니다. 그는 사르수엘라라는 극단을 나와 멕시코시티의 오페라 무대에서 정식으로 바리톤으로 데뷔하였고, 데뷔한 이후로 한 동안은 테너와 바리톤을 병행했습니다.

오페라 무대에 선지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스라엘 국립 오페라단에 발탁되어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 입단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플라시도 도밍고는 우연히 60년대를 대표하는 테너 가수였던 프랑코 코렐리의 대역으로 무대에 섰고, 그날 밤 그가 보여준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 덕분에 단숨에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느 오페라 가수들과 달리 대중음악을 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1981년 존 덴버와 함께 노래를 한 것이 바로 그 증거였습니다. 같은 오페라 가수들에게 질타도 많이 받았지만 그의 인기와 노력, 그리고 실력 앞에선 모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존 덴버와 함께 부른 노래는 바로 'Perhaps Love'로 광고 음악과 각종 차트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 가수로써의 입지가 확고해 졌을 뿐 아니라 대중들이 오페라와 친숙해 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전히 사랑받는 아티스트, 플라시도 도밍고

 

올해 초 일본 도쿄 공연에서 갑작스러운 복통을 호소한 바 있는 플라시도 도밍고는 2010년 3월 결장암으로 수술 받은 사실이 전해졌습니다. 지금은 회복단계에 있으며 외신들은 4월 중순 예정되어 있는 이탈리아 공연에서 도밍고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플라시도 도밍고는 한국을 사랑하는 가수로 1991년을 시작으로 1992, 1995, 2001년 꾸준히 우리나라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Ⅳ - 플라시도 도밍고를 통해 다시 한 번 한국을 찾은 플라시도 도밍고는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과 사랑을 아름다운 공연으로 보여 주어 더욱 뜻 깊은 공연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