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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프트베르크] 언제나 미래를 향하는 밴드, KRAFTWERK

2013.03.28 

 

KRAFTWERK

 

 

1970년 독일의 중공업 도시 뒤셀도르프에서 결성된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는 그 당시 뿐 아니라 21세기에 화제가 되는 몇 안 되는 밴드 중 하나일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혁신적인 밴드이자 여러 분야에서 선구자적 면모를 보인 이 ‘미래적인 음악집단’은 21세기의 주류 음악으로 자리 잡은 전자음악의 창시자라 해도 좋을 지위를 얻고 있는 것이다. 1970년, 랄프 후터(Ralf Hutter)와 플로리안 슈나이더(Florian Schneider)를 중심으로 결성된 크라프트베르크는 볼프강 훌러(Wolfgang Flur)와 칼 바르토스(Karl Bartos)를 추가로 영입한 뒤 1970년 데뷔 음반 Kraftwerk을 발표했다. 독일어로 발전소라는 뜻인 이 밴드의 데뷔 앨범은 전기기타 대신 신시사이저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첨단 발명품이었던 이 건반 악기에 익숙하지 못한 대중들로부터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그 시대가 수용하기에 이들의 음악과 방법론이 너무 혁신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후 발표한 앨범들은 대중적인 감수성과 음악적 지향의 거리를 좁히며 점차 저변을 넓히는데 도움을 줬는데, 1972년의 Kraftwerk 2와 1973년의 Ralf And Florian, 그리고 1974년의 Autobahn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4집인 Autobahn은 무제한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속도감을 음악적으로 표현해(여기에는 자동차의 엔진, 경적 등을 비롯해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굉음 같은 노이즈가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로봇 사운드'의 등장, 시대를 앞서갔던 KRAFTWERK

 

크라프트베르크의 초기 음악은 지금 들으면 오히려 익숙한 인상을 줄 정도로, 그 당시에는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간 음악이었다. 특히 1972년의 Kraftwerk 2는 드러머 없이 녹음되었는데, 순수하게 기술적인 부분에 주목해 만들어낸 ‘로봇의 사운드’는 전례 없는 것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이들이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음악적 방향을 수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다듬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위해 용모를 깔끔하게 정돈했고, 마치 실험실의 과학자와 같은 이미지를 구현한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1970년대 당시 유럽의 주된 음악 소비자들이 대부분 모드와 펑크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로 삼은 걸 생각하면 크라프트베르크의 이미지는 당시 청년들의 하위문화였던 사이버 펑크와 비슷하면서도 모드적인 말쑥함이 결합된, 신선하고 창의적인 것이었다. 1974년 앨범 Autobahn에서는 무그 신시사이저를 도입해 그들만의 독특한 소리의 풍경을 만들어냈고, 관습적인 팝 멜로디에 대한 대안적인 방법론을 실현시켰다. 이즈음부터 주류 음악 시장이 크라프트베르크라는 밴드에 반응하기 시작했는데, 독일과 유럽을 넘어 빌보드 차트에 오르며 미국을 발판으로 세계적인 성공가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Kraftwerk in Düsseldorf

 

 

한국에서는 1975년, 무선 통신을 테마로 한 앨범 Radio-Activity에 수록된 'Radio Activity'와 'Antenna'가 방송에 소개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비트, 감정이 없는 것처럼 노래하는 보컬, 도시적인 효과음이 완전히 새로운 풍경을 묘사했는데, 거기엔 현대성과 도시적 감수성, 과학의 발전과 미래적인 것이 뒤섞여 있었다. 기차의 각종 소음을 활용해 소리만으로 어떤 풍경을 그려내는데 성공한 1977년의 Trans-Europe Express 역시 마찬가지다. 돌아보면 70년대는 자신들의 음악을 대중에 ‘접속’하는 시간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1980년대 퍼스널 컴퓨터가 보급되고 이전 시대에 꿈꾸던 ‘미래’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 크라프트베르크는 오히려 1990년대 이후에나 보편화될 만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철학적이면서 공감각적인 예술적 경험으로 승화시키다


1981년 Computer World는 테크노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을 받는데, 기술이 지배하는 일상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한 이 앨범에 수록된 ‘Computer Love’는 UK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이미 신시사이저와 전자드럼이 팝을 지배하기 시작한 시대였고, 크라프트베르크는 이전만큼 혁신적으로 여겨지지 못했다. 잘 생기고 예쁜 청춘남녀들이 뿅뿅거리는 댄스음악으로 팝 산업의 주도권을 잡았을 때 그 기반을 만든 크라프트베르크는 오히려 구식의 밴드로 치부되기도 했다. 1990년대 내내 이들은 별다른 활동 없이 긴 휴지기에 들어갔고, 이미 성공한 대부분의 밴드들처럼 이들이 재기하리라 생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1999년, 이들은 싱글 Expo 2000을 발표하며 건재함을 과시하더니 2003년 Tour de France Soundtracks를 발표하며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인 모습을 선보였다.

 

 

‘The Man-Machine’ Live at MoMA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적 층위는 단순하지 않다. 클래식 음악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던 멤버들은 공장과 빌딩으로 뒤덮인 뒤셀도르프의 풍경으로부터 기존과 다른 질감의 영감을 얻을 수 있었고, 그로부터 당시 새롭게 등장한 원자력, 무선기술, 컴퓨터 같은 과학기술들을 음악 그 자체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기존의 고전음악에 반해 등장한 무조의 현대음악과 테크놀로지가 개입해 표현력을 증축한 전자음악이 뒤섞여 있다.

 

또한 이들은 무대조차 남달랐는데, 공연의 관객들에게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영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거나(공연 영상이 본격적으로 쓰인 건 80년대 이후다) 의상과 조명을 팝 아트처럼 구현하며 하나의 거대한 ‘비주얼 쇼크’ 혹은 동시적이고 공감각적인 예술적 경험으로 승격시킨 것도 중요하다.

 

이런 경향은 현재에도 계속되는데, 최근에는 3D 기술을 무대에 투영하며 ‘음악 공연’의 정의를 더 복잡하고 사색적으로 만들고 있다. ‘새로운 음악’ 혹은 ‘음악적 혁신’이란 그 말에 꼭 맞는 밴드, 롤링스톤스나 U2, 라디오헤드와 함께 20세기부터 21세기에 걸쳐 현재까지 음악적 혁신을 이끌고 있는 밴드로 꼽을 만하다. 무엇보다 크라프트베르크의 공연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보다 현재에 대한 사색과 질문을 현장의 관객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고무적인 기회가 분명하다.

 

 


 

Writer. 차우진

대중음악 웹진 [weiv] 에디터. [청춘의 사운드] 저자.

여러 매체에 음악을 비롯해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