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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프트베르크] 그래픽으로도 노래하는 KRAFTWERK

2013.04.19

 

그저 싱글들을 모아 앨범을 내던 시대를 지나 일관된 지향을 갖고 음악세계를 창조하려는 앨범아티스트(Album Artist)가 출현하면서 앨범 커버아트(Album Cover-art)도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형태가 없는 소리 덩어리를 눈과 손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통하여 음악인의 요구와 듣는 이의 기대에 부응하고, 커버아트 자체로도 색다른 미적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음악만큼이나 앨범 커버아트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발언권을 행사한 예도 적지 않다. 도어스(The Doors)의 Strange Days(1967)는 조엘 브로드스키(Joel Brodsky)의 커버 사진과 함께 기억되며,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바나나는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Velvet Underground & Nico(1967)에 대한 망각의 가능성마저 지워버렸다.

 


음악, 미술, 영상, 공연이 하나가 됨을 일찍 깨우쳤던 크라프트베르크

 

크라프트베르크는 바나나 대신 컴퓨터와 라디오 그리고 마네킹을 선택했다. 대중성 있는 실험 혹은 실험적인 대중음악을 구현하며 전자음악의 세계에 굵은 획은 그어놓은 크라프트베르크가 앨범 커버아트를 대수롭지 않게 만들었을 리 없다. 1970년대에 자신들의 스튜디오 클링클랑에서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멀티미디어아트를 떠올린 크라프트베르크는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즉 음악과 미술과 영상과 공연이 하나가 되는 장면을 일찌감치 생각해냈다. 앨범 커버아트 역시 중요한 표현수단들 중 하나였다. 실제로 이들의 앨범 커버아트는 공연 콘셉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크라프트베르크의 음반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무대 위의 영상에 더 강하게, 그리고 반갑게 반응할 수 있다.

 

 

 

Techno Pop Booklet

 

 

중공업 도시에서 조립되어 전자음악을 생산한 크라프트베르크가, 굳이 The Man-Machine(1978)과 Computer World(1981)를 펼쳐 보지 않더라도, 현대 기술문명과 산업사회를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시각적으로도 그려내려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네 명의 멤버들을 대량복제가 가능한 마네킹이라든가 획일화된 유니폼을 입혀놓고 강조해놓은 아트워크에서 누군가는 전체주의 국가의 제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좀 더 나아가면 이러한 비주얼은 엉뚱하게도 독일의 인더스트리얼 헤비메탈 밴드인 람슈타인(Rammstein)에게 활용되었을 때엔 공격적인 느낌을 주면서 전혀 다른 효과를 일으킨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출세작인 Autobahn(1974)이 노래한 아우토반, 즉 유럽 최초의 고속도로를 건설한 자 역시 공교롭게도 아돌프 히틀러이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구성주의 예술가인 엘 리시츠키에게 영향을 받다


물론 유럽 68혁명의 세례를 받은 크라프트베르크에게 그러한 신호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전자음악의 특징이자 앨범 아트워크를 채우곤 하는 ‘복제’는 현대산업문명과 떼어놓을 수 없다. 사실 그들의 앨범 아트워크에 등장하는 단순한 도형과 붉은 색 그리고 타이포그래피는 혁명시대의 포스터와도 무관하지 않다. The Man Machine에 노골적으로 영향을 드러낸 사람이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러시아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구성주의 예술가인 엘 리시츠키(El Lissitzky, 1890~1941)이다. 독일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러시아로 돌아가 기하학적 추상화를 추구한 엘 리시츠키는 ‘예술≒노동’의 공식을 증명하기 위하여 기계적이고 대량복제가 가능한 이미지를 활용했다. 혁명옹호자였던 그는 예술을 차원 높은 무엇이 아니라 노동과 생산 활동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를 평하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 확장’이란 말의 진짜 의미는 이것이다. 엘 리시츠키가 기술을 동원하여 그래픽 디자인을 자신의 이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활용했다면, 크라프트베르크는 더욱 발전한 기술을 동원하여 그래픽 디자인을 전자음악과 현대문명을 표현하는 데에 활용했다. 엘 리시츠키도 주목한 사진은 20세기 후반에 앨범 커버아트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크라프트베르크는 사진에서 더 나아가 3D 컴퓨터 그래픽을 십분 활용했다. 그리고 레베카 알렌(Rebecca Allen) 등의 디자이너들에게서 Techno Pop과 Electric Cafe(1986)에 그어진 3차원의 선들을 선물로 받아냈다.

  

 

 

KRAFTWERK album artwork


음악 장르들마다 다른 앨범 커버아트 스타일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크라프트베르크의 기하학적이고 타이포그래피를 배치하는 앨범 커버아트는 전자음악의 전범이 되었다. 그들의 음악처럼 어렵지 않고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Autobahn은 푸른 색 배경에 흰 색으로 그려진 고속도로를 매우 단순한 도형으로 표현했고, Trans-Europe Express에선 검은 색 배경에 흰 색으로 고속열차를 새겨놓았다. 단조롭지만 강한 색상과 단순하지만 속도감 있는 심볼들로 이루어져 있다. 몇 가지 색만을 사용하는 선전물 같은 효과는 검은 색과 붉은 색이 대조를 이루는 The Man Machine처럼 크라프트베르크가 애용하는 수법이었다.


 


음악과 기술 그리고 미술이 상봉하는 장을 만들어냈던 크라프트베르크

 

 

20세기 후반부터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음악 장르와 복합적인 스타일이 공존하며 교차하고 있다. 분화와 역사의 축적, 산업의 발달은 커버아트 전문작가, 심지어 특정 장르의 커버아트만을 작업하는 장르 전문작가를 출현시켰다(애석하게도 장르음악의 토대가 약하고 외국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음반시장이 축소된 한국에선 제대로 꽃을 피우기도 전에 한파를 맞은 셈이다). 그래서 크라프트베르크의 디자인을 말할 때엔 죽은 사람만이 아니라 산 사람, 그러니까 현재 활동하는 아티스트를 호명하는 편이 더 의미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수백 년 전에 죽었는데도 앨범 커버아트로 애용되는 작품을 남겨놓은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와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도 있긴 하지만.


KRAFTWERK



조금 망설이는 척 하다가 대표로 한 사람을 언급해보려 한다. Autobahn부터 The Man Machine과 Minimum Maximum(2005) 등에 이르기까지 앨범 커버아트의 레이아웃과 디자인을 맡은 요한 잠브리스키(Johann Zambryski)가 선택받은 주인공이다. 1970년대부터 크라프트베르크와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이니그마(Enigma)의 앨범 커버아트 작업들로도 유명한 그는 Computer World에서 네 남자의 얼굴을 컴퓨터 모니터 안에 옹기종기 집어넣고, Tour de France Soundtracks(2003)에선 그들에게 사이클을 태워주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Tour de France Soundtracks는 실제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의 의뢰를 받은 앨범이었는데, 크라프트베르크의 랄프 휘터는 사이클 마니아로도 알려져 있고, 이 앨범 커버아트는 우표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앨범 커버아트는 음악과 만나며 때로 욕망을 대변했고, 간혹 착시를 일으켰으며, 종종 증발했다. 그러나 크라프트베르크의 아트워크들은, 굳이 높게 평가하려고 애쓸 필요까진 없지만, 팬들에게 기억되고 밴드 자신에 의하여 무대로 계속 불려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커버아트가 감싸고 있는 음악 자체가 근사했다. 그래서 크라프트베르크의 ‘Robot Pop’에 다프트 펑크가 ‘Robot Rock’으로 화답한 것처럼 후대에도 3차원의 연결선이 끊어지지 않았다. 엘 리시츠키처럼 예술과 기술의 접목을 꿈꾼 크라프트베르크는 음악과 기술 그리고 미술이 상봉하는 장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 모두의 합은, 라이브 공연이다.

 

 


 

Writer. 나도원

 

잠을 좋아하지만 잠잘 시간이 부족한 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및 장르분과장.

평론 활동 외에도 페스티벌 기획과 예술인 운동을 해왔고, 음악과 관계 맺은 미술과 영화에 대한 글도 함께 쓴다.

<결국, 음악>, <시공간을 출렁이는 목소리, 노래>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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