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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프트베르크] ‘미래의 음악’을 눈 앞에서 확인하다, KRAFTWERK 공연 리뷰

2013.04.29

 

 

 


사람들이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을 ‘미래적’이라고 일컬을 때 그건 무슨 의미일까? 오늘날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을 처음 접할 청자에게 그들의 음악은 ‘혁신적’으로도, ‘첨단’을 달리는 것으로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전자음악에 도입했던 참신한 기법들은 이제 보편적인 방식이 되었고, 최신의 장비들을 사용하여 휘황한 소리를 뽑아내는 프로듀서들과 DJ들은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은 여전히 ‘미래의 음악’으로 들린다. 그것은 어쩌면 그들이 만들어낸 소리와 이미지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개념들이 ‘미래’라는 단어의 어떤 핵심을 꿰뚫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에는 ‘테크놀로지’가 이뤄내는 진보에 대한 매혹과 그것이 야기할지도 모를 파멸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는 그들의 음악적 전성기였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의 시대적 분위기를 은연중에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이제는 거의 소박하게 보이는 그 때 그 시절의 ‘첨단적’ 이미지들을 최신의 3D 기법을 동원해 소환하고 재배치하면서 사실상 ‘미디어 아트’에 다름아닌 방식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 다름아닌 ‘테크놀로지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이라고 한다면 너무 단순한 관점일까? 하지만 눈이 부실 정도의 빨간 바탕을 배경으로 마치 눈앞에서 튀어나올 듯 팔을 뻗는 거대한 마네킹이 등장하는 첫 곡 ‘The Robots’에서 느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어쩌겠는가? 한때 ‘실제’ 로봇이 등장했던 무대는 이제 3D 안경 너머에서 생생하고 압도적으로 표현되었고, 그룹은 선명한 이미지와 강렬한 메시지를 통해 당시 그들이 꿈꾸었던 미래의 풍경을 그려냈다. ‘The Robots’가 발표된 것이 1978년이니 3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때의 의도를 기술이 따라잡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건 ‘미래의 음악’이었다.

 

 

압도적인 3D 비주얼, 공감각적인 사운드로 빈틈없이 채워진 돔 스테이지 

   

 

 

 

에누리없이 두 시간 동안 펼쳐진 공연에서, 크라프트베르크는 한편으로는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키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제시하는 이미지들을 낯설게 보이도록 계속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것은 아득한 우주를 유영하는 다음 곡 ‘Spacelab’과 차갑고 기하학적인 흑백의 스카이라인을 천천히 조감하는 ‘Metropolis’로 이어지는 놀랍고 황홀한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통상적인 공연이 관객들을 홀리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광경이었고, 관객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그저 넋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도록 요구 받았다. 숫자들이 공격적으로 튀어나오는 ‘Numbers’, 세상을 움직이는/움직였던 온갖 기관들과 보통명사들을 열거하면서 그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컴퓨터의 존재를 탐구하고 있는 것 같은 ‘Computer World’와 ‘Home Computer’, ‘Dentaku’ 등의 곡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관객들은 ‘마음 편히’ 즐기는 대신 무대 위에 있는 아티스트에게, SF영화 [트론]에서 막 빠져 나온 것 같은 복장을 입고 서 있는 네 명의 남자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에 끊임없이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그래서야 정말로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사전에 어느 정도 레퍼토리를 숙지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종종 ‘지금 이것이 내가 들었던 그 음악인가’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파격적인 편곡이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소리와 에너지의 밀도가 엄청나게 높았기 때문이었다. ‘The Robots’가 이 정도로 춤추기 좋은 곡이었나 싶었고 ‘Dentaku’의 비트는 더없이 날렵했으며(랄프 휘터의 다리도 더 빨리 까닥거렸다), ‘The Man Machine’의 짱짱한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는 검정과 빨강, 하양으로 빚어낸 비주얼 만큼이나 압도적이었다. 무대 앞과 뒤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선명하고 입체적인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진지하고 멋진 이미지들이 무대 위를 날아다닌다 해도 결국 이것은 ‘음악’ 공연이고,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그날의 소리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Neon Lights’의 부드러운 서정이나 ‘The Model’의 카랑카랑한 냉소 역시 인상적인 사운드 속에서 적절하게 표현되었다.

 

 

한국 팬들에게 전하는 크라프트베르크의 메시지

 

 

 


회색 폴크스바겐이 초기 3D 게임 화면처럼 디자인된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밴드의 대표곡 ‘Autobahn’이 울려 퍼졌고, 이때부터 공연은 절정을 향해 차곡차곡 올라갔다. 아우토반을 일주하는 느긋한 여정이 끝나자마자 선수들의 가쁜 신음소리와 함께 크라프트베르크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상기시킨 대표곡 ‘Tour de France’가 화사한 삼색 화면에 맞춰 꿈틀거렸다. 단단하게 때려대는 비트 위에서 절묘하게 편집된 흑백 화면 위를 색색의 선과 추상적인 도형들이 날렵하게 움직였으며, 탄성이 터져나올 정도로 멋진 장면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러나 공연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아직 등장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알약들이 둥둥 떠다니던 ‘Vitamin’을 지나 ‘Radioactivity’의 익숙한 전주가 등장하자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체르노빌, 해리스버그, 셀라필드, 히로시마 등 핵 관련 사고가 일어난 지명들이 차례차례 등장했다. 최신 ‘업데이트’라 할 수 있는 후쿠시마도 포함되었다. 일본어 자막과 원자력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번갈아 나타나다가 후렴구가 다시 한 번 반복되는 순간, ‘이제 그만 방사능’이라는 한글 가사가 뜨고 랄프 휘터가 그 가사를 불렀을 때 관객들은 엄청나게 흥분하며 스마트폰을 본능적으로 치켜 올렸다. 공연 초반 ‘Spacelab’에서 한반도를 비췄을 때보다 훨씬 더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 Music, Non Stop!

 

 

 

 

밴드의 또 다른 대표곡인 ‘Trans Europe Express’의 느긋한 활력을 적절하게 표현해낸 ‘뮤직 필름’이 끝나면서 공연은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녹색 화면 위에 추상적인 도형이 울렁거리다가 인상적인 투시도가 펼쳐지는 일렉트로 넘버 ‘Planet Of Visions’가 분위기를 돋구더니 유체역학을 형상화한 것 같은 아이디어가 돋보인 ‘Aerodynamik’이 바톤을 넘겨받았다. 말 그대로 ‘다이나믹’한 구성과 화면이 인상적이었던 ‘Aerodynamik’을 지나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밴드의 팬들에게는 무척 익숙할 3단 콤보인 ‘Boing Boom Tschak’-‘Techno Pop’-‘Music Non Stop’ 메들리였다. 화려한 팝 아트 풍의 말풍선이 팡팡 터지는 ‘Boing Boom Tchak’에 이어 입체 설계도처럼 변형된 멤버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Techno Pop’이 연주될 때 스크린에는 악상기호들과 음표들이 둥둥 떠 다녔다. 마지막 곡 ‘Music Non Stop’의 통통 튀는 로보틱한 비트가 스피커에서 찰랑거리는 동안 맨 오른쪽부터 멤버들이 하나씩 무대를 떠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랄프 휘터가 짤막하고 정중한 인사와 함께 무대에서 내려갔고, 스크린에 뜬 커다란 얼굴이 ‘지켜보고 있다’는 표정으로 객석을 응시하면서 공연이 끝났다. 아쉬움 속에 자리를 뜨는 사람들 틈에 섞여 공연장을 빠져나갈 때 한 커플의 대화가 들렸다. “어땠어?” “또 보고 싶어.”

 

말없이 빠져나간 사람들 모두,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Set List>

 





Writer. 최민우


 대중음악웹진 WEIV (http://weiv.co.kr) 편집장.

2002년부터 음악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재 여러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