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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 사람의 눈과 마음으로 그려낸, 스튜디오 지브리의 레이아웃

2013.07.29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 혹은 그림을 공부하는 미술학도들이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展을 찾는다면, ‘레이아웃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원론적인 부분이나 애니메이션의 개념들은 잠깐 접어둘 것을 권한다. 종이 한 장의 테두리로는 가둬둘 수 없는 상상력의 넓이와 깊이를 만나보게 될 테니 말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 C1606 이라고 적힌, 8장 남짓의 레이아웃 시트지가 투박한 테이프로 연결되어 있다. 세로로 길게 확장된 레이아웃 시트지에는 긴 뿌리를 가진 라퓨타 성이 라인으로만 그려져 있다. 자연스레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교차시켜 작은 카메라 뷰파인더를 만들어 라퓨타 성의 하단 뿌리부터 성의 꼭대기까지 영감의 카메라를 틸트 업 시켜 본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림을 유심히 본다. 용지에 묻은 손자국, 힘주어 눌러 그린 연필자국, 처음 그었던 라인이 맘에 안 들었던 것인지 지우개로 지운 흔적이 보인다. 구름은 1프레임에 몇 mm를 움직여야 하는지 꼼꼼히 설명한 필체에서는 세심함마저 느껴진다.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대량생산하기 위한 설계도 이미지가 순간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눈앞에 걸려 있는 이 설계도는 사람의 눈과 마음과 손으로 그려낸 진짜 그림이 아니던가. 애니메이션에서 '레이아웃'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통상, 디자인, 회화, 조각에서부터 기획, 재테크에 이르기까지 '레이아웃'은 대략적인 윤곽을 잡는 것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지만 애니메이션의 '레이아웃', 특히 스튜디오 지브리의 '레이아웃'은 대략이란 의미와는 정반대로 대단히 정확해야 하고 정교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하는 상상의 설계도 같은 것이다.

 

 

사실적이어서 더욱 아름다운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레이아웃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展을 통해 다시금 재조명되는 인물이 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하나의 공식처럼 암기하고 있었을 때, 출입구의 이 문구를 본다면 분명 시험지에 잘못 적어낸 답을 본 것처럼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비밀 설계도" <추억은 방울방울>의 레이아웃을 본다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사실주의에 입각한 애니메이션 표현에 중점을 두고 그로부터 현실을 반영하고 감동을 전달한다. 실제 작화가 들어가기 전의 레이아웃에서 조차 자동차 계기판의 바늘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캐릭터의 웃는 얼굴 위에 근육의 움직임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주로 상상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과 달리 리얼리즘에 베이스를 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작품에는 이런 디테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정교하게 잘 그렸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사실적으로, 그래서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에서 오는 감동은 몇 백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 놀라우리만치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 수십 수백 장이 되어 전시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은 촬영 버튼으로 쉽게 전사된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비 내리는 새벽, 하얀 스탠드 조명 밑에서 피곤한 눈을 비비며 한선 한선 그어나간 인간미 넘치는 그림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마다 경이로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展의 묘미

 

전시된 작품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시작으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순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각 애니메이션마다 특정 레이아웃과 실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화면을 비교할 수 있도록 모니터를 준비해 두었는데 스튜디오 지브리의 레이아웃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이 전시의 메인 타이틀인 '레이아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모든 애니메이션 제작에 레이아웃 시스템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혼자서 혹은 아주 소수의 인력으로 작품을 만드는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레이아웃 단계가 더욱 필요 없어진다. 왜냐하면 작가의 머리 속에 이미 설계도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레이아웃은 공동작업 및 분할작업이 필요한 경우 그림과 연출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이드 역할을 하는 설계도라고 먼저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들려오던 메인 테마 곡에 이끌리다 보면 잘 보관된 <모노노케 히메>의 레이아웃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액자 프레임 속에 정성스레 나열된 레이아웃은 제각각 그림체가 조금씩 다르다. 작업자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은 수 많은 레이아웃 숲에서 미야자키의 작업을 찾아내는 것도 이 전시의 또 다른 관람포인트이지 않을까?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가장 신뢰한다는 애니메이터 오츠카 신지 미술감독의 레이아웃이 유독 눈에 띈다. 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연상시키는 무사들의 긴장과 패기를 효율적이면서 인상적인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한된 자본과 시간 때문에 고안된 레이아웃 시스템 속에서 그려내기 어려운 장면을 아주 빠른 속도로 잘 표현하는 오츠카 신지 씨에 대한 두 감독의 애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타원형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니 입 꼬리가 자연스레 살짝 올라간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초반부에 나왔던 그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머리 속에서는 이미 애니메이션에서처럼 보라색 미풍과 메마른 낙엽이 몇 조각 날리고 있었다. 실제 가오나시가 내 옆까지 바싹 다가온다. 둘은 아무 말없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레이아웃을 쳐다보고 있다. 누군가가 가오나시의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는 것은 지각되지만 그 긴장감은 글을 적는 지금도 생생하다. 전시장 곳곳에 애니메이션의 오브젝트와 공간과 인물들이 실제 존재할 수 있으니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본 관람객이라면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목소리가 인터뷰영상을 통해 들린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하나로 귀결되는 것 같다. 결론은 그림의 문제이다. 다양한 형태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고 있고, 장편 애니메이션은 수익에 대한 부담을 항상 떠안고 있으며, 그 해결책 중의 하나로 디지털 애니메이션 제작방식을 고수하는 스튜디오가 늘어나고 있지만, 한 장 한 장 그려진 좋은 레이아웃의 연속이 바로 '좋은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하얀 무지 종이에 그려지는, '그림을 그린다. 창작한다'의 예술 결과물이므로 더욱 그렇지 않을까?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찾는 감동과 즐거움

 

사실,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나 많은 최종 결과물을 경험하고 소비하고 있다. 영화에서부터 책, 음악, 음식, 제품 등 잘 만들어진 결과물의 포장만 벗겨내면 손쉽게 그것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여기서 몇 단계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최종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즐겨보자는 말이다. 모든 결과물은 분명히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들의 열정과 고민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다면 결과물에 대한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展은 이런 프로세스의 묘미를 정확히 소개시켜 주는, 코멘터리 보다 조금 더 완성도가 높아진 독립된 의미로서 다가온다. 이 전시를 관람해야 하는 몇 백 가지 이유 중 첫 번째는 과정을 바라보는 상상의 시각에서 당신의 삶 자체에 적지 않은 풍성함을 연결시켜 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런 점에서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1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展'이 주는 매력은 그들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흘리는 눈물만큼이나 잔잔하고 숙성된 영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울려 퍼지던 '미래소년 코난'의 노래는 아직도 내 인생의 응원가로 남아있다. 레이아웃을 그렸던 제작자에게도, 엄마 손을 붙잡고 전시장에 들어선 7살의 꼬마아이에게도 남아있게 되기를 바란다.

 

 


 

Writer. 김영준

 

세계에 대한 관심을 비주얼 언어를 활용해 표현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작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애니메이션 & 디자인 스튜디오 Earth Design Works 대표작가

단편애니메이션 벚꽃나무 코끼리 숲 / 여우모자 / The Memory of Fountain

 

 


 

 

"위 글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