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글 보기

[킬러스] 2000년대 영국이 사랑한 미국 밴드들, 그 중심엔 킬러스가 있다

2013.09.10

 

킬러스는 이른바 ‘영국이 사랑한 미국밴드’로 통한다. 말 그대로 출신은 미국이고 거기서 활동을 시작하려 했지만 영국에서 먼저 발견된 후 영국의 스타로 승승장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밴드를 찾기 어렵다. 팝 시장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전 같지 않고, 영국에서 먼저 사랑 받은 특수한 미국 밴드란 이제 찾기 어려울 만큼 시장은 대통합을 이뤘다. 다만 킬러스와 킹스 오브 리온의 음악을 사랑했던 이들이라면 지난 몇 년간 관찰했을 법한, 이례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미국 밴드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 대부분 미국 인디에서 출발하고, 피치포크 미디어나 각종 파워 블로거들의 입소문을 통해 여러 페스티벌과 차트에 진출한 사례들이다.

 

 

 

Kings Of Leon

 


Kings Of Leon(킹스 오브 리온)은 미국 내시빌 출신으로, 팔로윌(Followill) 가의 형제들과 사촌으로 구성된 4인조 가족 밴드다. 2003년 첫 EP를 두 장 발표했는데, 발표와 동시에 영국과 미국의 매체로부터 고른 주목을 받았다. 가능성의 싹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은 같았지만 이후부터는 큰 차이를 보기 시작했다. 같은 해 데뷔 앨범 “Youth and Young Manhood”이 나오면서부터다. EP가 얻었던 상찬 이상이 쏟아졌다. “지난 10년 사이에 발표된 가장 우수한 데뷔 앨범(NME).” “롤링 스톤스가 갈망해왔을 짜릿한 반항과 저항(가디언).” 이 모든 호평들은 모두 영국 언론에서 나왔고 영국의 관심은 세계적인 세일즈로 연결됐다. 세계 기준으로 1집의 통산 판매량은 약 75만 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고작 10만 장. 이력을 통틀어 가장 실험적인 앨범으로 평가되는 3집 “Because of the Times”을 비롯해 이후 발표한 모든 앨범이 언제나 UK 차트 1위에 안착했다.

 

 

The Strokes

 


킬러스와 킹스 오브 리온 이전에 영국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던 또 하나의 밴드가 있다. 포스트 펑크를 표방한 The Strokes(스트록스)다. 데뷔하기도 전에 그들의 데모는 영국의 각종 미디어에 전달됐다. 데뷔를 이룬 순간 영국과 미국의 일관된 반응이 따랐고(“록이 돌아왔다”) 2집 이후로는 양국의 쓰라린 외면도 고루 겪었는데(“뉴욕에서 가장 심하게 고장난 밴드”), 시작과 끝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은 비극이지만 그래도 의미는 남았다. 데뷔 시절의 그들은 뉴욕의 인디 음악 시장이 얼마나 생기있게 유지되는지를 보여줬던 밴드이고, 빌보드가 아닌 인디 기원의 음악이 영국을 제대로 관통할 수 있다는 것을 2000년대에 처음 일깨운 밴드다. 스트록스에 대한 영국의 ‘촉’은 킬러스와 킹스 오브 리온이라는 블루 오션을 개척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Vampire Weekend

 


Vampire Weekend(뱀파이어 위크엔드)는 이례적인 사운드로 승부했던 경우다. 완연한 밴드의 구성으로 월드뮤직(아프로-큐반)을 귀엽게 해석해 세계로 진출한 밴드로, 데뷔 앨범은 빌보드 17위, UK 차트 15위를 기록했다. 사이키델릭 성향의 일렉트로니카를 선보이는 MGMT는 앨범 데뷔 당시 미국의 경우 신인에 주목하는 빌보드 차트에서만 찾을 수 있는 이름이었지만, 영국 차트에서는 12위를 차지하면서 다크호스로 부상한 뮤지션이다. 이후 등장한 Foster The People(포스터 더 피플)과 Fun(펀)은 MGMT와 마찬가지로 악기가 아닌 장비 위주의 폭넓은 사운드와 함께 다채로운 가성을 들려주지만, 지향과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 포스터 더 피플의 경우 영국에서 더 큰 관심을 가질 법한 화려한 편곡으로 승부했지만, 총기 사건이라는 민감한 미국적 소재 덕분에(‘Pump Up Kicks’) 미국에서 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펀은 MGMT와 Mika를 섞어놓은 것처럼 풍부한 사운드 전개를 보여준다. 그들의 대표곡 ‘We Are Young’은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차트 1위를 차지했지만 미국의 환호가 더 컸다. 뮤지컬 형식의 드라마 <글리>가 펀을 발견했고, 덕분에 미국인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보편의 뮤지션으로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킬러스를 먼저 알아본 영국

 

미국 라스 베이거스 출신의 4인조 킬러스의 시작은 여느 미국 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들 하는 것처럼 온라인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고 지역의 크고 작은 무대를 전전하면서 미래를 찾고자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과는 달랐다. 모두가 아니라고 말할 때 남다른 확신을 갖고 있던 한 영국인에 의해 그들의 미래가 결정되었다.


 

 

공연 위주로 활동하던 2000년대 초반, 킬러스는 지역의 아마추어 밴드들이 이용하는 웹사이트에 자신의 음악을 업로드하던 중에 뮤지션 스카우터였던 브래든 메릭(Braden Merrick)이라는 인물에게 픽업됐다. 킬러스의 잠재력을 알아본 메릭은 밴드를 캘리포니아와 샌 프란시스코 등 다른 대도시로 데려갔다. 노래를 재녹음하는 것으로 그들의 데모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완성된 데모는 여러 메이저 레코드 회사에게 전달됐지만 워너 브라더스를 빼놓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데모를 확인한 워너 브라더스는 킬러스의 쇼케이스를 준비했지만 결과적으로 레코드사의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 명이 그들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워너 영국 지사 담당자 니얼 노버리(Niall Norbury)였다. 흥미롭게 여긴 킬러스의 음원을 노버리는 영국 어느 인디 레이블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들려줬고, 이를 통해 2003년 7월 킬러스는 영국 레이블과 계약을 이룬다.


The Killers

 


킬러스 노래 구석구석에 깃든 풍성한 키보드는 1980년대 뉴 웨이브를 환기했고, 보컬 브랜든 플라워스의 표현 방식은 포스트 펑크로 묶이는 밴드들의 유형과 가까웠다. 공격적이면서도 세련된 그들의 사운드를 미국이 외면하는 동안 영국이 잽싸게 받아들인 것이다. 계약 이후 공식 발표된 킬러스의 ‘Mr. Brightside’는 영국 BBC 라디오1을 통해서 처음 소개됐으며 첫 싱글 또한 영국에서 나왔다. 이렇게 갑자기 영국에서 주목을 받자 미국의 레코드 행사가 그들을 다시 부랴부랴 미국으로 초대해 재평가의 기회를 마련했고, 그 결과 미국 레이블과 추가 계약을 이뤘다. 덕분에 그들의 데뷔 앨범 “Hot Fuss”(2004)는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 발매될 수 있었다.

 

 

 

킬러스는 3집 “Day & Age”의 대표곡 ‘Human’이 히트하면서 이후에도 안정된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그래도 가장 거대한 성공은 데뷔 앨범에 깃들어 있다. 이 성공을 영국과 미국의 통계 차이로 살펴보는 일은 꽤 흥미롭다. 일단 차트 기록을 살펴보면 영국에선 1위, 미국에선 7위였다. 단순히 차트의 고지를 선점했다는 데만 의미가 한정되지 않는다. “Hot Fuss”는 영국에서 무려 173주간, 즉 3년 이상 차트에 머무른 스테디 셀러였다. 판매량의 차이 또한 재미있다. 킬러스의 “Hot Fuss”는 세계적으로 7백만 장 이상이 나간 메가 히트작인데, 거기서 3백만은 미국에서 나왔고 2백만은 영국에서 나왔다. 물론 수치로 보면 영국이 1백만 장이나 뒤지지만, 미국인구가 3억이라는 걸 상기하면 158명 당 한 장을 갖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영국 인구는 6천만으로, 같은 계산법을 적용하면 31명 당 한 장씩 킬러스의 데뷔 앨범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덧붙여 킬러스의 “Hot Fuss”는 21세기 기준으로 영국에서 27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다.


The Killers



이후에도 영국은 킬러스를 환영했다. 현재까지 발표된 네 장의 앨범 모두가 UK 차트 1위 기록을 유지했다. 싱글을 살펴보면 ‘Mr. Brightside’처럼 영국과 미국의 차트가 고른 평가를 내렸던 곡들도 있지만(양국 모두 10위) 딱 거기까지다. 미국에선 ‘Mr. Brightside’를 제외하고 킬러스의 싱글이 10위권에 든 적이 없다. ‘Somebody Told Me’는 영국 3위였던 반면 미국 51위를 기록한 노래다. 후반기 대표곡 ‘Human’의 온도 차이도 극명하다. 영국에선 3위, 미국에선 32위로 마감됐다. 킬러스가 발표하는 모든 작품에 대한 영국 시장의 일관된 호응은 그들의 눈부신 데뷔작 “Hot Fuss”에 대한 공고한 믿음과 확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영국은 데뷔 앨범에 그토록 열광했고, 어떤 성향의 음악을 발표하든 일단 접수할 가치가 있는 뮤지션이라는 인식이 오랜 시간 유지됐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신뢰가 없었다면 전세계는 킬러스라는 밴드를 영영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Writer. 이민희(음악칼럼니스트)

각종 온라인/오프라인 매체에 대중음악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음악웹진 백비트(100beat.com)와 네이버 뮤직의 편집인으로 활동중이다.

 



[전문가 칼럼] 킬러스 사운드의 모태, 조이 디비전과 맨체스터 시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