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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스] 킬러스 사운드의 모태, 조이 디비전과 맨체스터 시티

2013.09.11 

 

The Killers

 

 

친숙한 80's 뉴 웨이브/포스트 펑크를 계승시켜낸 열정적이고 웅장한 록 사운드를 뿜어내는 21세기 최고의 록 밴드 킬러스가 드디어 내한한다. 이들은 미국 라스 베이거스 출신이지만 The Strokes(스트록스)나 White Stripes(화이트 스트라입스)와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먼저 인기몰이를 하면서 세계적으로 뻗어나갔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국 밴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낸 이들은 어떤 상징과도 같은 런던 로얄 알버트 홀에서의 퍼포먼스마저 완수해내기까지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킬러스의 음악은 그들이 영향 받았던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명 밴드들과 꽤나 여러가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었다. 영국 음악에서 영향 받은 미국 밴드가 다시금 영국에서 성공하고 있는 이런 뫼비우스의 띠 같은 상황의 뿌리를 추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Joy Division

 

 

Joy Division

 

 

킬러스는 조이 디비전의 어둠, 그리고 숭고한 댄스 비트를 흡수해냈다. 킬러스의 곡 ‘All These Things That I've Done’의 뮤직비디오 경우 U2와 디페쉬 모드, 그리고 조이 디비전 등의 흑백사진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Anton Corbijn(안톤 코빈)이 감독했다. 안톤 코빈은 2007년 무렵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조이 디비전의 보컬 이안 커티스의 생애를 추적한 작품 을 감독하는데 영화 마지막에는 킬러스가 부른 조이 디비전의 ‘Shadowplay’가 흐르기도 했다. 이렇듯 확실히 안톤 코빈은 킬러스를 '제 2의 조이 디비전'으로 지목한 모양이었다.

 

 

Anton Corbijn <Control>

 

 

1976년 맨체스터에서 결성한 이래 4년이라는 짧고 굵은 활동으로 그 수명을 다한 포스트 펑크의 상징 조이 디비전은 킬러스의 음악을 언급할 때 항상 따라다니던 이름이었다. 보컬 이안 커티스의 내성적인 가사와 마치 간질환자를 보는 듯한 라이브 퍼포먼스는 당시 씬에 충격을 선사했다. 활동 기간도 짧았고 활동 당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었지만 1980년대 말 이후의 얼터너티브, 그리고 2천 년대의 포스트 펑크, 개러지 리바이벌 씬에 이들은 가장 강한 영향을 끼쳤다.

 

첫 미국 투어 출발 전날인 1980년 5월 18일, 보컬 이안 커티스가 갑자기 자살하면서 조이 디비전은 비극적으로 해산한다. 그 뒤 남겨진 멤버들은 New Order(뉴 오더)를 결성하게 되며, 조이 디비전 보다는 좀 더 댄스뮤직에 집중해내는 그들의 음악 또한 후대에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미 '킬러스'라는 밴드명 자체도 뉴 오더의 뮤직비디오 ‘Crystal’에 나오는 가상 밴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니 킬러스에게 있어 조이 디비전, 그리고 뉴 오더는 그 어떤 밴드들 보다도 각별한 존재일 것이다. 킬러스는 공연 도중 직접 조이 디비전/뉴 오더의 Bernard Sumner(버나드 섬너)를 무대 위에 올려 ‘Crystal’을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감동적인 재회다.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조이 디비전의 로고, 그리고 “Unknown Pleasures”의 커버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이안 커티스가 자살하기 한달 전에 공개된 조이 디비전의 싱글 ‘Love Will Tear Us Apart’ 역시 한 시대의 앤썸으로써 여전히 애청 되어지고 있는 중이다. 위대한 자포자기는 이런 방식으로 계승되어졌다.

 

 

The Smiths

 

 

The Smiths

 

 

스미스 역시 조이 디비전과 마찬가지로 맨체스터 출신 밴드였다. 스미스의 도회적이고 세련된 로맨스에 영향 받은 가사를 킬러스는 가슴 벅찬 80년대 풍 신스팝에 맞물려내면서 어떤 황홀경을 만들어갔다. 킬러스의 보컬 브랜든 플라워스는 스미스의 ‘Louder Than Bombs’를 사춘기 시절 듣고 굉장히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아마도 모리씨가 작성한 우울하면서도 뒤틀린 가사가 그의 감수성을 자극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듯 전세계 모든 우울한 소년들은 결국 스미스를 찾았다.

 

스미스 역시 활동기간은 채 5년 정도에 그쳤고 히트곡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 오늘날 80년대 영국의 가장 중요한 록밴드 중 하나로 인지되고 있다. 스미스의 섬세한 관점, 그리고 혁신적인 음악은 90년대 브릿팝과 얼터너티브 록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모리씨는 오스카 와일드와 잭 캐루악 등의 소설가들을 가사에서 줄곧 인용하면서 지적인 팬들을 수용해냈고, 자니 마는 독특한 기타 이펙팅과 연주, 그리고 훌륭한 송라이팅을 통해 음악적인 부분을 충족시켜냈다. '스미스'라는 이름에 대해 모리씨는 "스미스란 가장 흔한 이름이며 지금은 세상의 보통 사람들이 얼굴을 보여줄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었다. 모리씨의 수많은 어록 또한 음악과는 별개로 세간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결국 밴드는 가사를 쓰는 모리씨와 노래를 만드는 자니 마와의 분열로 인해 와해됐으며 현재는 두 명 모두 각자 솔로로 활동해나가는 중이다. 스미스 해산 이후 네 명은 스미스에 대한 권리 문제로 법정에서 처음 다시 재회하게 되며 재결성 프로젝트 역시 번번히 무산됐다. '스미스'라는 이름은 여전히 하나의 신기루처럼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킬러스는 맨체스터에서의 공연에서 스미스의 위대한 송가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을 커버하기도 했다. 이 노래는 영화 <500일의 섬머>에서도 직접 언급되는 곡으로 비관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가사는 확실히 킬러스가 고스란히 수혈 받은 지점이기도 했다. 킬러스는 모리씨의 솔로곡 ‘Why Don't You Find Out for Yourself’ 또한 재해석해내 자신들의 싱글 비사이드에 수록해냈던 전적 또한 있다. 킬러스의 스미스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는데 무엇보다 브랜든 플라워스의 목 부진으로 맨체스터에서의 공연일정이 취소되었을 때 이들은 사과문에서 스미스의 곡 ‘I Started Something I Couldn't Finish’와 모리씨의 곡 ‘We'll Let You Know’, 그리고 ‘Suedehead’의 일부 가사를 인용하기까지 한다. 사실 스미스의 팬이 아니라면 일반적인 사과문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그간 이들이 스미스에 대한 영향을 언급하고 다녔다는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는 분명 스미스의 노래 제목으로 만든 글귀였다. 사과문 전문은 이렇다.

 

"Manchester, we started something we couldn't finish and we're so, so sorry. Working on rescheduling tonight and tomorrow's shows. Will let you know new dates ASAP"

 

 

 

 

조이 디비전과 스미스 이외에도 킬러스는 영국에서의 공연 당시 오아시스의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 2012년도 V 페스티발에서는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밴드 중 하나에게 헌정하려 한다는 멘트와 함께 오아시스의 클래식 ‘Don't Look Back In Anger’를 풍부한 목소리를 통해 완수해낸다. 사실 킬러스는 영국 투어 시 지역을 의식하는 커버곡을 연주하곤 했는데 2012년도 리버풀 공연 당시에는 비틀즈의 ‘In My Life’와 역시 리버풀 출신 거장 Echo & The Bunnymen(에코 앤 더 버니맨)의 ‘Bring on the Dancing Horses’를 열창하면서 지역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도 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의 공연 때는 U2의 ‘With or Without You’와 ‘Ultraviolet’, 그리고 ‘If God Will Send His Angels’ 등을 연주하기도 한다.

 

서두에 했던 질문, 그러니까 영국인들이 킬러스의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에 킬러스가 영국 밴드의 곡들을 커버해 부르는 것인지, 혹은 킬러스가 영국 뮤지션들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영국인들이 이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일단은 좋은 음악이 존재하고, 그 좋은 음악에 영향 받아 재창조된 또 다른 좋은 음악이 발생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가끔씩 이렇게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간다.

 

 


 

Writer. 한상철

 

불싸조라는 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이런저런 글을 쓰고 있다. 취미는 피구와 우표수집이다.

 



[전문가 칼럼] 2000년대 영국이 사랑한 미국 밴드들, 그 중심엔 킬러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