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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스칼 전] 어린이의 마음으로 그려봐,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

2013.12.26

 

스페인의 국민디자이너이자, 가구, 인테리어, 캐릭터, 스케치를 넘나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마리스칼. 2011년에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스페인관에서 그의 가구 작품들을 처음으로 선보이기 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니 소수 전문가들에게만 마리스칼은 ‘코비의 아빠’ 정도로 인식이 되어 있었다. 마리스칼이 한국의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 한 것은 지난해 그가 페르난도 트루에바와 함께 감독한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가 개봉되면서부터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은 코비의 아빠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 그의 더 넓은 작품세계를 일깨울, 2011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과 <치코와 리타>로 그의 이름을 접한 이들이라면 호기심을 만족시켜줄 만한 전시가 될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있는 부모라면 그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도 아이의 손을 잡고 구경했을 때 가장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그림의 장벽이 앞을 가로 막는다. 코비를 비롯해 <치코와 리타>의 밑그림 등 무수히 많은 스케치를 작은 직사각형 종이에 프린트한 뒤 수 백 개의 프린트물을 촘촘히 이어 하나의 커다란 가림막이 되게 했다. 순간 어디로 지나가야 할지 당황하게 된다. 통로도 문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길을 가로막은 이 스케치 장벽을 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마리스칼은 역시 그림으로 말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통로를 막고 언어가 아니라 “그림으로 나를 느껴봐”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그가 난독증이 있다는 내용을 접할 수 있는데, 오히려 이 때문에 어릴 때부터 스케치에 몰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가 느낀 모든 것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남들과 소통하려는 사람이다. 그의 의사소통은 주로 그림으로 이루어졌는데, 마리스칼의 스케치 작품을 보면 우리가 말을 하듯, 혹은 글을 쓰듯 얼마나 쉽게 그림을 그리는지 느낄 수 있다. 물론 마리스칼의 그림이 편안하고 쉬워 보인다고 누구나 그렇게 그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편안하게 그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림 그리는 걸 고통스러워하는 화가도 있다. 창작이라는 것은 늘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하기 마련인데, 마리스칼은 우리가 매일 대화하듯, 밥을 먹듯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무수한 스케치를 통해 그는 대가가 되었다.

 

전시장의 스케치 중에는 <치코와 리타>를 위해 그렸던 아주 복잡한 도시 풍경들이 있다. 고층건물들이 빼곡한 뉴욕을 표현한 스케치를 보면 어떻게 저렇게 쉽고 단순하게 도시의 특징을 잡아낼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그는 무수한 스케치의 반복으로 형태에 대한 그만의 통찰력이 생긴 것이다.

 

 

 

 

 

 

전시장의 두 번째 코너인 콜라주 편에 들어서면 마리스칼의 평면적인 그래픽이 입체화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유분방한 색의 향연에 압도된다. 콜라주 방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바 스툴은 정말 장난스럽다. 3개의 다리는 삐뚤삐뚤하고 각 다리마다 다른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이는 스툴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 마리스칼은 기능적인 물건을 디자인한다고 해서 조형작업을 할 때 느끼는 자신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이해가 감각으로 스며들고 나니, 역으로 스툴의 전통과 기능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마리스칼은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그의 이 독특한 스툴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도 흥미롭다.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에토레 소트사스는 마리스칼을 찾아가 자신의 가구 전시회에 참여해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한다. 스페인에 사는 마리스칼이 이탈리아의 가구 디자이너들과 교류했을 리는 없고 그냥 자신이 하던 대로 가구를 만든 것이 당시 이탈리아의 큰 흐름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알레산드라 의자는 좌우대칭을 파괴한 파격적인 의자이다. 특히 화려한 색의 사용이 돋보인다. 전시장의 마지막 섹션 주제가 컬러인 것도 그에게 색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게 한다. 그는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과 그것이 반사시키는 반짝거리는 색상을 보고 자랐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그림과 가구로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장르를 떠나, 자연스러운 표현은 마리스칼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가 그린 사람의 얼굴과 몸을 보면 파블로 피카소가 있고, 장난스러운 캐릭터를 보면 후앙 미로가 있다. 그는 스페인이라는 지역에서 자라면서 그 지역에서 배운 문화적 유산과 몸으로 경험한 것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공모전에 응모하는 사람이 머리를 쥐어짜면서 이번에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을지, 주제어를 무엇으로 할지 억지스럽게 지어내는 것과는 달리 마리스칼은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있는 것을 꺼낼 뿐이다.

 

 

 

 

 

훌리 카페야라는 건축가이자 디자인 평론가의 입을 빌리자면, “마리스칼의 작품은 본능적이고 과감하지만 계획적이며, 동시에 독창적이다.”라고 평한다. 그 정도로 그의 펜 터치와 색감 사용은 거침이 없다. 마리스칼은 마스코트나 기업의 로고를 의뢰 받을 때에도 최대한 자신의 표현방식을 밀고 나간다. 이 외에도 마리스칼이 디자인의 지역성을 거부하는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소개한다. 그는 “스페인 디자인은 이렇고, 독일 디자인은 저렇다”는 식의 규정을 거짓말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그림과 디자인은 전 세계 사람들이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공통의 언어라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Happy World’ 방에 전시된 3D 지구본 조각품은 그의 이런 신념과 아이디어가 표현된 작품이다. 나라간의 경계 없이 빨강과 노랑, 혹은 초록, 파랑과 같은 원색으로 제작된 지구본은 “너는 어느 나라에서 왔니?”라는 질문에 특정 지역이 아니라 “지구에서 왔어”라고 답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이 작품을 한번 눈여겨보길 바란다. 한반도 부분에 마리스칼이 직접 쓴 ‘한국’이라는 글자에서 그의 정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리스칼의 전시는 그림 그리는 행위가 무척 즐거울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때문에 누구나 나도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우리에게 누구나 말을 하듯 그림을 그렸던 옛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전시장 마지막 방 ‘해피 엔드’는 관객들이 직접 마리스칼의 캐릭터를 칠하고 만들어 붙일 수 있게 한, 관객들의 창작 욕구를 해소해주는 즐거운 엔딩이라 할 수 있다.

 

 

 

 

마리스칼은 디자이너라기보다 예술가에 가깝다. 그는 늘 그림과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자신의 철학을 지킨다. 자신과 직원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그림을 그리는 것도, 디자인을 하는 것도 그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도 관람객들이 그가 전하고자 하는 ‘행복’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Writer.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