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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스칼 전] 스페인 예술계의 거장들을 배출한 문화의 도시 바르셀로나

2014.02.19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이전까지의 올림픽을 전부 촌스럽다고 느끼게 할 만큼 디자인의 혁신을 보여 주었다. 마스코트도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 같았다. 이전까지의 올림픽 마스코트에는 기하학적 도형을 바탕으로 정갈하게 다듬어진 것이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자유로운 기질은 수학적 엄격함을 매우 답답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전 세계인들도 그 동안의 정형화된 마스코트 스타일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이 특이한 마스코트를 보자 많은 사람이 찬사를 보냈고, 이전의 어떤 마스코트보다도 친근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물론 디자이너 마리스칼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COBI (출처: Estudio Mariscal)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마리스칼의 독특한 디자인뿐만 아니라, 그런 디자인을 과감히 올림픽에 채택했던 도시 ‘바르셀로나’이다. 낙서 같은 그림을 작품으로 만드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세계적인 행사의 얼굴로 선택하는 일은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이전의 어떤 올림픽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과감한 선택을 했다. 과연 바르셀로나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이는 개최지 바르셀로나의 문화에 대해 이해한다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를 세운 가우디

 


 

 

바르셀로나가 어떤 곳인가. 디자이너 마리스칼을 배출한 곳일 뿐 아니라 그 유명한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í)의 고장이기도 하다. 19세기 말에 활약한 이 건축가는 바르셀로나 곳곳에 지금까지도 독특한 건축물들을 많이 세워 놓았다. 특히 바르셀로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으면서 바르셀로나의 랜드마크, 나아가 스페인의 랜드마크 역할까지 하고 있는 성 가족 성당(Sagrada Familia)은 아직까지 지어지고 있는 건축물로 더욱 유명하다. 그러나 아직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그 어떤 건축물보다도 강렬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난해한 건축물에 대해 자유로운 작업 환경을 제공했던 도시가 바로 바르셀로나다. 이미 오래 전부터 바르셀로나는 난해한 예술을 선택하고 수용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이렇듯 자유로운 도시의 분위기는 가우디뿐 아니라 수많은 예술가가 다양한 실험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했다.

 

 

여러 장르를 융합하는 파워, 미로

 

 

호안 미로(Joan Miro), Hirondelle Amour, 1933~1934, 캔버스에 유채, 199.3x247.6cm,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출처: Flickr)

 

 

현대 미술의 거장 미로(Joan Miro)도 바로 이 바르셀로나라는 독특한 예술적 생태계가 나은 스타였다. 미로는 한 장르에 머물지 않고 여러 장르를 두루 섭렵했던 독특한 화가였다. 그는 어떤 장르에서 작업하든 사람들의 정서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힘에 있어서 매우 탁월했던 화가였다. 이러한 힘은 여러 장르를 오가며 각 장르의 특징을 융합할 수 있었던 그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로가 보여준 예술적 특성은 아마도 아라비아 문화와 서유럽 문화를 융합했던 바르셀로나의 문화적 역량이 그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현재 미로의 그림들은 바르셀로나 해변가에 두드러지게 솟아 있는 몬주익 언덕의 미로 미술관에서 숨 쉬고 있다.

 

 

20세기 예술의 절대적 영향력, 피카소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Interior with a Girl Drawing, 1935, 캔버스에 유채, 130x195cm,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출처: Flickr)

 

 

스페인 예술을 이야기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피카소(Pablo Picasso)다. 피카소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20세기 미술, 나아가 20세기 예술 전체를 통틀어 절대적이다. 또한 이 이름은 바르셀로나의 예술사에서도 절대 생략할 수 없다. 피카소가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10대 때부터 바르셀로나에 살면서 화가로서의 자질을 다듬었기 때문이다. 피카소를 예술가로 키운 곳이 바로 바르셀로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체파에 속하는 그의 작품 특유의 분절된 시각은, 문화에 대한 벽이 없이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고 북돋았던 바르셀로나의 독특한 성격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장르를 하나로 녹여내는 바르셀로나의 문화

 

 

마리스칼의 타이포그래피로 표현된 바르셀로나, BAR CEL ONA (출처: Estudio Mariscal)

 

 

피카소 이후로도 바르셀로나는 다양한 작가들을 배출했으며, 마리스칼과 같은 디자이너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떤 특정한 범주에 국한되지 않은 예술적 자유로 충만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마리스칼의 경우 올림픽의 마스코트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 작업, 가구나 인테리어 등의 분야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중요한 점은 마리스칼을 비롯한 바르셀로나의 여러 작가가 이처럼 장르나 기법, 세계관에 있어서 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라비아부터 서유럽까지 다양한 문화들을 하나로 녹여내었던 바르셀로나의 문화적 특징 때문이다. 이러한 바르셀로나의 문화적 특징을 대표하는 천재 아트 플레이어 마리스칼의 예술 세계를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에서 경험할 수 있다.

 

 


Writer. 최경원

 

현 디자인 연구소 대표
네이버 캐스트, 패션인사이트, 월간 디자인 등
다양한 디자인 관련 매체에 기고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