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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스칼 전] 음악을 사랑하는 마리스칼의 소중한 인연,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

2014.02.20 

 

베보 발데스(Bebo Valdes) (출처: DAUM 영화)

 

 

2013년 3월 스웨덴에서 쿠바 출신의 피아니스트가 사망했다. 스톡홀름에서 40여 년을 살았던 그의 나이는 94세.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조용한 죽음이었지만 이 소식은 전 세계 음악계에 인상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이름은 베보 발데스(Bebo Valdes). 그는 유명한 쿠바의 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Chucho Valdes)의 아버지이자 쿠바 트로피카나 클럽(Tropicana Club)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 또한 최고의 작곡가, 편곡자 그리고 바탕가(Batanga) 리듬의 창시자다.



베보 발데스, 페르난도 트루에바 그리고 마리스칼의 만남

 

베보 발데스는 1940~1950년대 쿠바음악 전성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였고, 현대의 전설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던 인물이었다. 당시 쿠바에서 가장 유명했던 트로피카나 클럽은 쿠바음악과 재즈가 만나 '아프로-쿠반(Afro Cuban)'이라 불리는 독특한 리듬이 탄생한 곳인데, 그곳에서 베보 발데스는 오케스트라 사보르 디 쿠바(Sabor de Cuba)를 지휘하며 작ㆍ편곡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1960년 스웨덴 공연 중 어느 여성과 사랑에 빠지며 홀연히 음악계에서 사라져버렸다. 그가 다시 음악계에 복귀한 것은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1994년. <Bebo Rides Again>이란 앨범을 발표한 그는 세상의 관심을 받으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2000년에는 그가 활동하던 쿠바 재즈 음악계의 전성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칼레 54(Calle 54)>가 만들어졌는데, 이 영화의 감독이 스페인 출신의 페르난도 트루에바(Fernando Trueba)였다.

 

이 때의 인연으로 페르난도 트루에바는 2010년 <치코와 리타>를 연출하게 되었고, <칼레 54>의 포스터 작업에 참여했던 하비에르 마리스칼(Javier Mariscal)도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마리스칼이 디자인 한 <칼레 54(Calle 54)>의 포스터 (출처: Estudio Mariscal)

 

 

<치코와 리타>는 이전까지 애니메이션이라곤 만들어본 적도 없던 감독 페르난도 트루에바와, 역시 한 번도 영화 제작에 참여해본 적이 없던 디자이너 하비에르 마리스칼이 만나 예상치 못한 시너지를 발휘한 작품이다. <치코와 리타>는 1940~1950년대 트로피카나 클럽을 대표하는 스타 가수였던 리타 몬테너(Rita Montaner)를 모델로 하는 '리타'와 베보 발데스가 모델인 '치코'의 관능적인 러브스토리가 핵심이다. 주인공 치코의 피아노 연주 장면을 베보 발데스의 실제 연주와 겹쳐 그리는 식으로 제작된 방식은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실제로 살아 숨 쉬며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은 생동감을 선사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관찰력과 애정을 통해 거장 피아니스트의 섬세한 손놀림이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예술로 재탄생 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베보 발데스가 참여한 사운드트랙은 화룡점정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완성도를 부여하는데, 영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이 음악은 여러 가지로 베보 발데스를 좀 더 대중적인 이름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요컨대 <칼레 54>가 공개된 2000년부터 <치코와 리타>가 발표된 2010년은 베보 발데스에게 제2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치코와 베보 발데스 (출처: DAUM 영화, 왼쪽, 오른쪽)

 

 

드라마틱한 베보 발데스의 삶

 

<칼레 54>가 개봉된 후 그는 40여 년 만에 대중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 2002년에 발표한 <El Arte del Sabor>과 2006년에 발표한 <Bebo de Cuba> 앨범으로 각각 그래미 베스트 트래디셔널 앨범과 베스트 라틴 재즈 앨범을 수상했고, 이는 베보 발데스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알리는데 기여했다. 이 두 장의 앨범에서 그는 완벽에 가까운 연주를 선보이며 그가 창시한 바탕가 리듬을 과시했는데, 바탕가는 쿠바 출신의 음악가 페레스 프라도(Pérez Prado)가 1943년 무렵 만들어낸 맘보를 좀 더 복잡하게 발전시킨 리듬이다. 1950년대에 냇 킹 콜(Nat 'King' Cole) 등과 녹음하며 쿠바와 미국 전역에서 인기를 끌던 그의 저력이 40여 년이 지난 1990년대에 부활했던 것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재기라고 할 수 있다.

 

 

Bebo de Cuba (출처: coveralia

 

 

그러면 그 동안 베보 발데스는 스웨덴에서 무엇을 했을까. 어째서 이 사내는 공연을 하러 간 것뿐인 스웨덴에 정착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일까. 그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1959년 쿠바혁명이 발생했을 때 발데스는 부인과 다섯 자녀를 남겨두고 멕시코로 피신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혁명은 예술가에게 처자식을 두고 고국을 등지게 할 만큼 가혹했다. 다른 것보다 당시 쿠바 혁명군이 재즈를 부르주아의 예술양식으로 규정했기 때문인데, 이 부분은 <치코와 리타>에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치코가 혁명 이후에 평생을 구두닦이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멕시코로 떠난 베보 발데스는 미국을 거쳐 스웨덴의 스톡홀롬에 정착했고 그 후로 한 여성과 결혼해 새 가정을 꾸리며 은둔하다시피 했다. 물론 자의적이었던 일은 아닐 것이다. 낯선 땅에서 낯선 연인과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혁명으로 뒤집어진 조국에 머무는 것만큼 엄청난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그가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하고 솔로 앨범을 발표하며 큰 주목을 받은 과정이야말로 인간극장 같은 극적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의 마지막 라이브 앨범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 (출처: Flickr),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출처: DAUM 뮤직)

 

 

베보 발데스는 2007년에 <Live At The Village Vanguard>란 라이브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2005년 11월에 그가 스페인의 베이시스트 하비에르 콜리나(Javier Colina)와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에서 13일간 선보였던 공연 실황을 모은 앨범이다. 빌리지 뱅가드는 빌 에반스(Bill Evans)의 <Waltz for Debby>의 산실이자 뉴욕 라이브 재즈 바의 대명사로, 여기서 녹음한 라이브 앨범은 2000년대 들어 신들린 듯 다양한 컨셉트의 작업을 성사시키던 그가 유일하게 녹음한 공연 실황이자 생전의 그가 남긴 마지막 정규 앨범이기도 하다. 건조할 만큼 투박한 피아노 연주로 고전을 연주하는 그의 스타일이 거의 전부 담겨 있다고 봐도 좋은데, 스튜디오 앨범과는 다른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그 현장에 모인 사람들의 어떤 감각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기분이다. 이를테면 오랜 시간 주변을 배회하다가 극적으로 음악 안으로 뛰어 들어온 피아노 장인에 대한 존중과 그가 살아온 오랜 삶에 대한 존경이다. 과거를 위해 자신의 유산을 남기는 사람들에겐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명백하게, 베보 발데스도 그중 하나다.

 

 


 

Writer. 차우진

 

대중음악 웹진 [weiv]  에디터. [청춘의 사운드] 저자

  여러 매체에 음악을 비롯해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