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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스칼 전]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가 본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

2014.02.27

 

겨울 속에 봄 씨앗이 뿌려진 듯한 어느 날 오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들어선 순간, ‘그’를 만났다. 평범한 네 컷 만화가로 시작해 다양한 작업으로 세계인에게 사랑 받는 디자이너가 된 스페인의 하비에르 마리스칼. 그 동안 그의 그림 몇 점만을 보고 평범한 디자이너 중 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짧은 생각이었다. 이번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을 통해 그의 독창적인 작품세계와 인생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마리스칼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라는 과제를 충실히, 그리고 유쾌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마리스칼은 30대까지 난독증을 앓았다. 하지만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그는 난독증 속에서 그림을 언어로 사용하여 소통하는 법을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지중해 연안 지역의 낙천적인 분위기와 자연이 보여주는 강렬한 빛과 색감, 그리고 문화예술을 즐기고 존중하는 환경은 난독증을 앓던 그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융합적인 디자인의 거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융합형 디자이너의 대표주자 마리스칼  

 

하비에르 마리스칼은 바르셀로나에 있는 엘리사바 디자인학교(Elisava Superior Design School)를 다니면서부터 많은 예술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 <BAR CEL ONA> 포스터 디자인부터 1980년대 가구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바르셀로나 디자인의 상징이 되었다. 1989년 ‘마리스칼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다양한 로고,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고, 2010년에는 <치코와 리타>라는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태블릿에 직접 그림을 그리며 멈추지 않는 융합형 디자이너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전방위적인 작업으로 스페인에서 사랑받던 마리스칼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인 <코비>를 탄생시키면서부터다. 행사용 캐릭터는 그 행사가 종료되면 잊혀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코비>는 아직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얼마나 생명력 넘치고 가치 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아트 플레이어의 놀이터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은 국내에 단편적인 몇몇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던 마리스칼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해준 기회였다. 많은 디자인 전시 중에서도 단연 손꼽을만한 전시다. 입구에서부터 강렬한 색감과 캐릭터 <아트 플레이어>의 다리 사이를 통과해 들어가는 구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시장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작가의 ‘진짜’ 흔적이다. 보통 대다수의 전시는 실크스크린 등 디지털 프린팅을 통해 공간을 디스플레이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한국을 직접 찾은 마리스칼이 디스플레이를 지휘하고 곳곳에 그의 손으로 직접 드로잉을 했다. 수많은 드로잉을 통해 자유로운 선과 경계를 넘나드는 사고 체계를 보여준 그가 전시 공간을 직접 오가며 남긴 흔적들, 그 속에서 느껴지는 60대의 나이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그의 열정은 우리에게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온다.

 

 

 

 

전시장을 구석구석 돌다 보면 한 사람이 어떻게 이러한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색을 잃지 않고 작품 활동을 선보일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특히 작은 아이가 고개를 숙여 겨우 들어갈 수 있게 만든 작은 집 <빌라 훌리아>와 전시장 구석에 위치한 아이들만의 전용 통로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작품들이 인상적이다. 출구 쪽에 자리한 체험공간 '해피엔드'에서는 디자인에 관심 있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관람객까지 마리스칼에 푹 빠져 '아트 플레이어' 캐릭터에 색칠하고 붙이기를 즐길 수 있다.

 


즐겁게, 사고의 경계를 지워라!

 

 

 

마리스칼의 작품 중에는 <해피월드>라는 제목의 지구본이 있다. 그 지구본에는 경계를 상징하는 나라 이름이 없다. 바다와 육지, 강과 산들만 표현되어 있다. 나라나 영역을 표시한 흔적이 없는 <해피월드>. 각 나라의 선과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기존의 지구본과 달리, 마리스칼의 <해피월드>는 경계를 만들지 않고 장르를 넘나드는 그만의 철학이 함축적으로 녹아있는 작품이다. 작품을 찬찬히 둘러보면 여러 개의 <해피월드> 지구본들 중에는 누군가가 ‘한국’이라고 한글로 낙서해 놓은 듯한 지구본 하나가 유독 눈에 띈다. 마리스칼이 한국에 머물며 전시 설치를 둘러보던 중 이번 전시의 재미를 위해서 ‘한국’이라는 글자를 직접 그려 넣었다고 한다. 사고의 깊이와 더불어 유머도 놓치지 않는 그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마리스칼이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것에는 스페인 문화의 개방적인 성격도 큰 몫을 했다. 아라비아 문화와 서유럽 문화가 혼재하는 스페인 문화는 경계를 지우고 다양함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경직된 사고 속에서는 자유로운 예술적 시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없을 것이다. 가능성 있는 디자이너도 중요하지만, 디자이너의 가능성과 자유로움을 수용할 수 있는 그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폭넓음이 더욱 중요하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즐거운 놀이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3 마리스칼 전에서 영역의 구분이 없는 디자이너의 대표주자 하비에르 마리스칼을 꼭 만나보길 추천한다.

 

 

 

 


 

Writer. 김한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로 감성적인 생활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