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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resh] Culture Concert 44 - 금난새와 함께하는 음악회

2012.04.27


서두르지 말고 인생을 안단테로

바람 섞어치는 비 맞아가며 꽃샘추위를 견뎌냈더니 어느새 여의도 윤중로 길은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그 꽃길에 가만히 서서 뺨에 닿는 봄바람 한 줄기 맞아봅니다. 바람에서 안단테 멜로디 한 소절이 들리는 듯합니다. 벚꽃구경으로 많은 인파가 몰린 여의도에 음악인 금난새 씨가 등장했습니다. 안단테로 봄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 손에는 음악을, 다른 한 손에는 이야기 보따리를 들고 함께 봄소풍을 떠나자고 합니다. 음악과 이야기가 있는 봄소풍, 그 후일담 한번 들어볼까요?




우리나라 음악계의 거장 금난새 씨가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2관 1층 오디토리움 작은 무대 위에 섰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환호하는 사람들의 박수 소리로 무대에서는 이미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으레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로 화답을 하고 금난새 씨는 다음과 같이 첫 인사를 나눴습니다.




“저... 보통 지휘할 때는 인사를 하고 바로 뒤돌기 때문에 떨리지 않은데, 이렇게 앞을 보고 서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는 참 많이 떨립니다. 저에게 박수 한 번 더 쳐주세요.” 거장도 떨릴 때가 있나봅니다. 아무리 많은 공연을 해왔어도 그에게 무대는 여전히 그렇듯 떨리고 설레는 자리인가 봅니다.


이야기 보따리 하나.

“제가 독일 베를린에서 공부할 때 보고 느낀 것이 참 많습니다. 한번은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는 날이었는데 무대가 2600석이 꽉 찼더군요. 계산해보세요. 2600석에 4일이면 도대체 몇 입니까. 그런데 1년 전에 이미 70% 표가 예매 완료되고, 나머지 30%는 한 달 전에 관광객이나 학생들에게 판매 완료됩니다. 그때 저는 실력 있는 오케스트라도 좋지만 무엇보다 그런 청중이 참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오케스트라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청중을 만들리라 생각했습니다. 먼저 청소년을 대상으로 클래식 해설 음악회를 열었지요. 오늘날 외국 오케스트라단이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을 하면서 가장 놀라워하는 부분이 관객석에 어린 학생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유럽은 나이 많은 관객이 많아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공연장 내에 간호사가 상주해 있을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젊은이들이 많으니 미래가 밝지 않습니까.”




금난새 씨는 첫 곡으로 헨델 & 할버슨의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할버슨은 본래 작곡가인데 생계로 개인 레슨을 주로 하는 생활을 하다 어느 날인가 한 학생의 수업이 취소돼 그 틈에 헨델의 멜로디에 곡을 붙여 만든 변주곡이 바로 다음 들을 곡이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금난새 씨는 작곡가의 변주에 따라 흥분, 사랑, 슬픔 등 다양한 표정으로 변화하는 음악의 매력을 설파했습니다. 지금 듣는 이 음악은 “지난 번에 빌려간 돈 내놔!” 라고 하는 것처럼 다투는 느낌이 들지 않냐며 쉽고 유쾌하게 설명을 하자 청중들은 갈채를 보냈습니다.





이야기 보따리 둘.

“음악회장에서 늦게 들어갔을 때 보통 한국 사람들은 몸을 굽히고 등을 돌린 채 자신의 자리로 찾아 들어가는데 외국에서는 늦어도 관객들 쪽으로 몸을 돌리고 들어갑니다. 늦게 왔으면서도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되면 우리는 화장실 간다고 공연장 밖으로 나가지만 서양에서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관객끼리 서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바로 불을 끄지 말고 밝혀놓아서 청중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고 그날 음악의 여운을 충분히 서로 교감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렇듯 공연장에 좀 늦게 온 사람을 이해해주고, 서로 편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연 분위기가 빨리 장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번 강의 때 와서 보니까 이 회사에 세계에서 제일 좋은 피아노가 있더군요. 그래서 특별한 피아니스트를 모셨습니다.” 금난새 씨의 피아니스트 정은주 씨에게 즉흥적으로 소프트한 곡과 에너제틱한 곡을 차례로 연주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관객들에게 피아노 연주의 묘미를 느끼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어서 5중주로 ‘송어’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슈베르트의 5악장 중에서 많이 알려져 있는 4악장이 흘러나오자, 여기저기서 멜로디를 흥얼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모든 공연을 마치자 한 청중은 금난새 씨에게 아쉬운 듯 “오늘 지휘는 안하시나요?”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금난새 씨는 “이렇게 3중주, 5중주 같은 적은 편성일 때는 지휘하는 것이 불필요하고, 무엇보다 이 사람들이 싫어합니다(웃음). 우리 필요 없는데 왜 앞에서 흔들고 그러냐 생각하죠. 그렇죠?(웃음) 모든 경우에 지휘자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곡에서는 지휘자가 오히려 음악에 방해가 되곤 합니다.”라고 말해 관객석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 클래식은 쉽고 즐겁다!’ 라는 생각이 들 즈음, 그와 함께한 2시간의 봄소풍은 아쉬운 듯 이렇게 끝을 내야했습니다. 짧지만 강렬했기에 그와의 봄소풍은 단연 올 봄의 잊지 못할 추억거리 하나로 남을 겁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그날 봄소풍에서의 기억의 단편을 곱씹어 보며 클래식의 새로운 맛도, 그리고 음악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날의 메시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어느 책 제목처럼 ‘서두르지 말고 인생을 안단테로’. 조금 더 느리게 걷고, 조금 더 천천히 말하고, 조금 더 여유있게 사랑하고… 벚꽃구경 나온 많은 인파에 휩쓸려 가면서도 그날 저녁 퇴근길 참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