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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벚꽃 같고, 놀이터 같은 작은 집 ‘파빌리온’, 한국에 본격 선보이다

2014.08.22


땅에서 불쑥 솟아오른 이건 도대체 뭘까? 서울 경복궁 옆 소격동 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에 ‘괴물체’가 등장했다. 거대한 막대사탕 같기도 하고 양파나 마늘처럼 위는 동그랗고 아래는 가느다란 것들이 사람 키보다 높게 숲을 이뤘다. 만져보면 의외로 가볍고 푹신하게 흔들거리기까지 하는 이것들의 정체는 풍선. 뜨거운 여름 햇빛을 가려줘 잔디가 깔린 아래쪽엔 그늘이 드리우고, 동그란 풍선 위쪽으로 난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파란 하늘이 사뭇 새롭게 다가온다. 위에서 보면 비로소 이 풍선 숲이 과연 무엇인지 확실해진다. 바닥을 가리며 뭉쳐있는 하얀 풍선들이 모인 풍경이 ‘구름’을 절로 연상시킨다. 풍선 주변에선 분무기가 연기를 뿜어내 하늘 위로 둥실 떠오른 느낌이다.



 



8일 완공되어 대중들과 만난 이 특별한 작품의 이름은 ‘신선놀음’. 세 젊은 건축가 박천강(36), 권경민(35), 최장원(33)씨가 모인 프로젝트그룹 ‘문지방’이 설계한 파빌리온 건축이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하는 그 신선놀음이다. 풍선과 분무기, 그리고 간단한 나무 계단만으로 이뤄진 이 작품과 만나면 마치 신선이 된 것처럼 안개가 끼고 구름이 발아래 흘러가는 선계에 오르는 기분이 난다. 현대카드가 2013년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그리고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함께 의욕적으로 선보이는 새로운 전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AP, Young Architects Program)의 첫 결과물이다. 다른 미술관과 달리 넓은 마당이 가운데 있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펼칠 수 있는 서울관에 꼭 맞아 보이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통로를 제시하는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현대카드의 15번째 컬처프로젝트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은 MoMA가 1998년 시작한 프로그램을 한국에 도입한 것이다. 재능 있는 젊은 건축가를 발탁해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건축을 실제 지어보는 기회를 주고, 관객들에겐 평소 접하기 어려운 특별한 건축 공간인 ‘파빌리온’을 경험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은 뉴욕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유망주 건축가들의 아이디어 경연장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이탈리아와 칠레, 터키에서도 열리게 됐다. 그리고 올해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도 시작됐다. 한국의 촉망 받는 젊은 건축가들이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를 선보일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생긴 것이다.


올해 처음 열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5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에는 기대만큼 쟁쟁한 후보들이 몰렸다. 건축 전문가들이 직접 작가들을 추천해 일찌감치 건축계에서 ‘선수’로 꼽히는 신예 건축가와 소장파 건축가 26개 팀이 참여했고, 그 중 5팀이 최종 후보로 올라 ‘문지방’팀이 당선됐다. 문지방은 한국 전통 건축에만 있는 특별한 건축 요소다. 공간과 공간을 구분하면서도 높지 않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희미한 경계’가 된다. 이 문지방처럼 설치 미술과 건축의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팀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이들의 작품 ‘신선놀음’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이란 땅의 맥락에서 뽑아낸 아이디어다. 전통과 현대가 극명하게 교차하고 오랜 역사가 깊이 배어있는 문화의 거리 소격동에 어울리는 한국적 개념이자, 시민들에게 쉼터가 되어 여유와 재미를 함께 전해줄 수 있는 공간 디자인 콘셉트가 ‘신선놀음’이다.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파빌리온 건축 – 신선놀음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 ‘파빌리온’ 건축을 일반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첫 프로그램이란 점도 눈길을 끈다. ‘파빌리온’은 건축에만 있는 특별한 작품 장르로, 누구나 지나가다 잠시 쉬면서 바깥 경치도 구경하며 놀다 갈 수 있는 작은 건물이다. 일종의 ‘서양식 정자’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정원이나 공원처럼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놓는 미니 건물, 또는 전시용으로 독특하게 꾸며지어 전시나 이벤트를 벌일 수 있는 임시 건물이다.





서양 전통 건축의 하나였던 파빌리온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건축가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정식 건물은 법규와 규정을 지켜야 하고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과감한 디자인과 파격적인 재미를 추구하기가 어렵지만, 파빌리온은 규모가 작고 1회성 건물이기 때문에 작가인 건축가들이 자유롭게 개념적이고 실험적인 발상을 시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서펜타인갤러리가 매년 세계적 건축가를 선정해 짓는 파빌리온은 건축계를 넘어 세계 문화계의 특급 이벤트로 자리 잡아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이후 주로 공원 시설물이나 미술 전시의 일부로 파빌리온 건축이 간간이 선보여왔다. 하지만 누구나 찾아가 쉽게 만날 수 있는 파빌리온 전시는 지금껏 거의 없었다.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은 이처럼 건축가들에겐 ‘건축 실험장’이 되고 대중들에겐 특별한 건축 공간을 체험하는 재미를 주는 파빌리온이란 장르를 일반 시민들이 서울 도심에서 편하고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간단한 구조 속에 담긴 다양한 재미


문지방팀의 ‘신선놀음’은 파빌리온 특유의 매력을 잘 살려낸 작품이다. 간결하고 명쾌한 아이디어로 풍선과 나무 계단이라는 친숙하고 간단한 재료를 활용해 일상에서 체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초현대식 건물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그리고 근현대 문화재급 건물인 옛 국군병원 건물, 그리고 조선시대의 웅장한 공공건축물인 종친부 건물이 모여 있는 특별한 장소에 슬쩍 끼어들어가 앞쪽 경복궁과 양옆 건축물들 그리고 풍선 너머 하늘과 풍선숲 아래쪽 땅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연출해냈다. 





특히 ‘신선놀음’이 들어선 앞마당에서 1층 높이 정도 더 높은 뒤편 종친부 쪽 마당으로 넘어가는 나무 계단을 집어넣어 ‘통로’ 역할을 더한 점이 돋보인다. 풍선 아래쪽 안개가 깔리는 잔디 바닥이 인간세상인 속계라면, 구름 위를 거니는 느낌을 주는 나무 계단 위쪽은 신선들이 사는 천계라는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나뉘고 또 연결된다. 눈높이 차이를 이용해 느낌이 사뭇 다른 두 개의 공간을 만들고 통로이자 전망대라는 두 가지 기능을 유기적으로 만들어낸 점에서 구조와 아이디어는 간단해 보여도 다양한 재미가 작품 안에 담겨 있다. 


파빌리온은 정자이자 전망대이며 이벤트 공간이기도 한 ‘문화의 집’이다. 그 안에는 건축가의 실험 정신, 평소 하지 못했던 판타지가 깔려 있다.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나는 모두의 놀이터이고, 그 자체로 볼거리가 되는 도시 속 설치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파빌리온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잠시나마 우리 곁에 머물러 즐겁게 해주다가 곧 사라지고 마는 건축이다. 영구 설치물로 남는 파빌리온도 있지만 대부분은 잠깐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곧 지고 마는 벚꽃처럼 정해진 기간에만 존재하는 시한부 건축이란 것이 파빌리온의 숙명이다. 그렇기에 파빌리온은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신선놀음’은 오는 10월 5일까지 소격동에 머무른 뒤 사라질 예정이다. 올 여름 불쑥 찾아온 친구 같고 놀이터 같은 이 묘한 작품을 만나 잠시나마 신선놀음을 해보시길 권한다.




 

Writer. 구본준
건축칼럼니스트,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