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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콘세르트허바우 & 정명훈] 가족이라는 이름의 기적, 음악과 함께하는 정명훈의 가족 이야기

2011.12.01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5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 정명훈에서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이끌 마에스트로이자, 존경받는 음악가인 정명훈은 ‘음악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고여야 한다’는 지론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음악에 엄격한 그도, 가족과 함께 있을 때면 음악가라는 자신의 정체성도, 지휘자로서의 사명감도 잠시 잊는다고 할 정도로 가족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바 있죠. 그가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함께한 ‘정 트리오’는 아티스트 각자의 아성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음악가로 우뚝 섰습니다.


세계적인 음악가족, 정명훈, 정명화, 정경화의 ‘정 트리오’

 이미지 출처: http://joongang.joinsmsn.com

‘정 트리오’는 정명훈의 깊이 있는 피아노 음색, 정명화의 화려한 첼로, 정경화의 섬세한 바이올린의 환상적인 앙상블로 사랑 받고 있습니다. 각 분야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삼 남매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선율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가족’이라는 끈끈한 교감으로 이어진 서로의 소중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죠. 

우리 7남매는 이상할 정도로 서로 사이가 좋은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각자 아이들의개성을 잘 파악하시고 서로 잘하는 것을 존중해주면서 누구 하나 주눅이 드는 일 없도록 섬세히 배려해주신 덕분인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가 진정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고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능력이 탁월하셨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타고난 연주가는 아니었어도 듣는 것, 보는 것, 느낌 면에선 최고의 전문가였다.

-‘정 트리오’ 첼리스트 정명화


정명화가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만 11세부터였다고 합니다. 정경화, 정명훈과 달리 바이올린, 피아노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그녀에게 어머니가 선물했던 첼로가 계기였다고 하죠. 너무 좋아서 연습에 몰두한지 2년 만에 정명화는 한국 최고의 콩쿠르에서 특상을 받게 됩니다. 1969년 주빈메타가 지휘하는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미국 무대에 데뷔한 그녀는 2년 후 정명훈이 반주자로 참여한 제네바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면서 유럽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죠.

경화의 바이올린은 열정적이고 시원했으며 내 첼로는 뜨끈뜨끈했다. 화음을 만드는 게 재미있어 어릴 때부터 온종일 피아노와 놀았던 명훈이 연주는 오케스트라 같다.

-‘정 트리오’ 첼리스트 정명화


루돌프 캠페, 안탈 도라티, 줄리니 등 명지휘자들과 협연하며 세계적 첼리스트로서의 위치를 다진 그녀는 ‘정 트리오’에 대해 서로가 완벽하게 밀어주고 끌어주며 연주했다고 스스로 평가하며 추억을 회상했죠.

6세 때 바이올린으로 바꿨는데 그렇게 즐겁고 편한 거예요. 바이올린을 켜면서 방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상상에 잠기던 기억이 나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전체 조회 시간에 앞에 나가서 노래 몇 곡을 연주했는데, 그게 배운지 꼭 일주일만이었어요.

 - ‘정 트리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해 놀라운 재능을 보인 정경화는 1961년 미국 줄리어드 음악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이반 갈라미안 밑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1970년 프레빈 지휘의 런던 교향악단을 반주로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연주한 정경화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단숨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반열에 올랐죠. 정경화의 바이올린 연주는 풍부한 서정이 생생하게 전해지며, 우리의 마음을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현재의 정명훈을 만든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

7남매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져준 정명훈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극진한 노력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정명훈은 7남매가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의 공로라고 말했는데요. 피아노와 지휘를 놓고 진로를 선택하지 못해 고민에 빠졌을 때 정명훈에게 용기를 주고 지원해 주었던 것도 어머니였습니다. 뒤늦게 진로를 바꾸는 것에 대해 주변의 우려에도 어머니는 정명훈의 선택을 온전히 믿었던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의미는 아이를 사회적으로 성공시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 자녀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기에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의 사회적 성공을 부러워하지만 나는 그 아이들이 자기 몫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더 기쁘고 자랑스럽다. 내가 아이들 교육에 성공했다면 바로 이 점일 것이다.
- 정명훈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

‘말이 앞서지 않지만 한번 뱉은 말은 틀림없던 아이’라고 했던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말처럼 정명훈은 끊임없이 노력하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정 트리오’의 정명훈, 정경화, 정명화와 함께 만들어내는 가슴을 적시는 깊은 감동은 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내와 아이가 내 삶을 변화시켰다

젊은 시절 날카롭고 비판적인 성격이었다고 밝힌 정명훈. 그는 밝고 긍정적인 부인을 만나 삶의여유를 즐길 줄 아는 지혜를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결혼 후 부인을 닮아가며 자신의 단점을 고칠 수 있었다고 하죠. 정명훈의 세 아들 중 첫째 정진은 건축설계사로, 둘째인 정선은 재즈 기타 연주와 작곡,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명훈의 영향으로 전 세계 모든 음악을 고루 접했던 정선의 혜안과 감각은 정명훈의 감각과 닮아있죠.

아버지이자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행보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휘를 접한 셋째 정민은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스 주자의 깊은 소리에 반해 악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이후 2005년 서울대 음대에 바이올린 전공으로 입학해 지휘자의 길을 걷고 있죠. 지난해에 정명훈과 정민은 ‘2010 국제 공정무역회의 나눔 콘서트’에서 피아노 협연을 해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정명훈은 아들이 음악인의 길을 걷도록 옆에서 아이들을 잘 키워준 아내에게 언제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죠.

나이가 들수록 아내에 대한 사랑이 점점 깊어집니다. 아내와 만나 결혼을 하고 세 아들을 낳은 것은 제 인생에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죠. 가족은 제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소중한 존재이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마에스트로 정명훈

정명훈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세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세상에 나와 배우고 성장하는 시기이고, 두 번째는 졸업 후 일을 하며 결혼도 하고 점차 프로의 세계로 진입하는 단계이며, 세 번째는 남을 위해 봉사하고 베푸는 단계라고 말이죠. 세번째 단계가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면, 자신은 이제 이 세 번째 단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는 정명훈. 그의 곁을 지키는 아내와 아이들은 자신에게 기적이라는 정명훈에게는 어머니가 있었고, 형제와 가족이 있었기에 비로소 그의 음악 인생이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형제와 함께했던 삶이 자신의 음악의 모태이며, 아내와 아이들이 삶을 변화시켰다는 정명훈. 세계적 마에스트로 반열에 오른 그가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만드는 웅장한 클래식 선율이 2012년 2월 21일, 22일, 예술의 전당에서 펼쳐집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5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 정명훈에서 잊지 못할 클래식의 감동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