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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뮤직] 음악성과 스타일리쉬함까지, 음악계의 핫하고 힙한 그녀들

2013.02.15


집에서 키우는 개 조차도 수컷이 여주인을 더 따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살짜리 여자 아기도 고모보다는 삼촌에게 더 애교를 부린다는 이론을 철석같이 믿어왔다. 거리낌 없이 여자 뮤지션, 특히 여성 보컬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음악 플레이어 안은 남자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여자 목소리가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드림 팝 밴드 비치 하우스(Beach House)의 공연을 본 이후라고 기억한다. 


보컬 빅토리아 르그랑(Victoria Legrand)을 처음 본 건 영국의 어느 페스티벌에서였다. “요즘 남자애들 다 저 여자랑 데이트하고 싶어 난리래.” 친구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해 비치 하우스의 무대를 찾아갔지만, 가뜩이나 어두운 공연장에서 헝클어진 긴 머리에 가려진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결코 작지 않은 그 공간을 순식간에 잠식해버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외모에 대한 호기심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그 농도 깊은 목소리에 홀려버린 건 나뿐이 아닌 듯했다. 우연히 곁에서 공연을 보고 있던 디어헌터(Deerhunter)의 프론트맨 브래드포드 콕스(Bradford Cox) 역시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Victoria Legrand

 

한국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얼마 전 내한한 비치 하우스의 공연에서는 곡 사이마다 남자들의 탄성인지 한숨인지 알 수 없는 곡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낮게 가라앉은 독특한 빅토리아의 목소리는 비치 하우스의 몽환적인 음악과 완벽하게 어우러졌고, 반짝이는 재킷을 입고 키보드 앞에서 묘한 손짓과 함께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뱃사람을 홀린다는 신화 속 사이렌(Siren)을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본능이라 믿어왔던 차별의 문을 빼꼼히 열고 보니 괜찮은 여자 뮤지션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빅토리아 르그랑의 매력이 순간 희미해질 정도로 고혹적인 외모의 뮤지션부터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가진 뮤지션까지 놀라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그들의 음악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움트는 동경의 마음에 질투심은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었다. 사실 남자들이 독식해오다시피 한 음악계였고, 특히나 인디 밴드 중에서 꾸준히 앨범을 내며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여자 뮤지션은 귀한 만큼 특출난 재능과 엄청나게 많은 노력이 뒷받침돼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조우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정도인 여자 뮤지션들을 이 자리를 빌어 까다롭게 선정했다. 음악 못지않게 외모와 스타일도 신경 쓰는 본능을 여기서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아직 짧은 음악 활동으로 음악성과 매력을 확신하기 이른 뮤지션들은 제외했으니 믿고 들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으리라 믿는다.



주이  디샤넬 (Zooey Deschanel), 쉬앤힘 (She & Him)
 

She & Him

 

영화 <500일의 썸머>로 알려진 배우 주이 디샤넬(Zooey Deschanel)은 인디 밴드 쉬앤힘의 멤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던 그녀는 개성 있는 영화배우로 성장하면서도 꾸준히 혼자 음악을 만들어왔다. 다만 그 음악을 세상에 내보이기 수줍어했을 뿐. 그러다 우연히 싱어송라이터 엠 워드(M-Ward)를 만나 그 음악적 재능을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는데, 둘이 만든 밴드 쉬앤힘의 음악에는 그녀의 밝고 사랑스러운 노스탤지아적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있다. 


음악을 듣다 보면 영화에서 스미스(The Smiths)의 음악을 흥얼거리고, 노래방에서 낸시 시나트라(Nancy Sinatra)의 60년대 히트곡  ‘슈가타운(Sugar Town)’을 부르던 썸머와 실제 주이 디샤넬이 겹쳐 보이기까지 한다. 마냥 소녀 같은 외모와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축음기에서 들려오는 듯 독특한데, 영화배우로서의 유명세를 차치하더라도 충분히 사람을 끌어당기는 음악적 매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SXSW, 코첼라 같은 유명 페스티벌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 꽤 까다로운 팬 층을 가지고 있는 인디 뮤직 페스티벌 ATP 라인업에도 이름을 올렸던 쉬앤힘은 올 봄 새 앨범을 발매할 예정임을 밝혔다.

십 년 넘게 친구사이라는 조셉 고든 레빗과 주이 디샤넬의 크리스마스 특별 연주에서 그녀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카렌 오 (Karen O), 예예예스 (Yeah Yeah Yeahs)

 

Karen O


21세기와 함께 시작된 뉴욕 인디 음악씬의 부흥을 이끈 밴드 중 예예예스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밴드를 독보적인 위치에 올려놓은 것은 보컬 카렌 오의 날카롭고 광기 어린 목소리인데, 무당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복장으로 온몸에 우유를 쏟아 붓는 등 극단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 혼혈 보컬이 인디씬을 뒤흔든 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몇 년간 눈에 띄었던 플로렌스 앤 더 머신(Florence + the Machine) 같은 독특한 스타일의 뮤지션이라던가 페인즈 오브 빙 퓨어 앳 하트(The Pains of Being Pure at Heart)처럼 소위 힙스터들 사이에서 주목받던 동양 여성을 앞세운 인디 밴드보다 카렌 오가 한참 앞서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런데 비율 좋은 몸에 짧은 흑발을 휘날리며 노래하는 그녀의 강렬함에 매혹된 건 음악 마니아들만이 아니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로 유명한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는 영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사운드트랙에서 그녀와 함께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을 전율이 일 정도로 강렬하게 다시 만들어냈고, 영화감독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는 아예 그녀에게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맡겼다. 이렇게 괴상하지만 동시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마력을 표현할 수 있는 뮤지션은 카렌 오밖에 없었을 것. 올 봄 3집 앨범 발매를 앞두고 예예예스는 파격적인 앨범 커버로 얼마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을 뿐만 아니라 활동 재개 소식이 무섭게 이미 코첼라를 비롯한 대형 페스티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여름 ATP 페스티벌의 큐레이터로 그리즐리 베어(Grizzly Bear)와 함께 선정되어 공연과 함께 라인업을 구성할 예정이기도 하다. 아, 그런데 그녀에게 흐르는 강렬한 동양의 피가 한국인의 그것이라 내가 말했던가?



나타샤 칸 (Natasha Khan), 뱃 포 래쉬스 (Bat For Lashes) 


Natasha Khan

 

톰 요크(Thom Yorke)는 자신의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로 더 유명하지만, 온갖 새로운 음악들을 부지런히 듣고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는 훌륭한 추천인이기도 하다.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ós)를 극찬했던 그가 몇 년 전 한 신인 뮤지션을 강력하게 추천했더랬다. 뱃 포 래쉬스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나타샤 칸은 그렇게 세상의 주목을 받았고, 라디오헤드의 유럽 투어를 함께 하며 몸이 들썩이는 비트 속에서도 침잠하는 듯한 그녀의 독특한 음악을 세상에 알렸다. 머큐리상을 비롯 유수의 음악 시상식에 후보로 오르며 음악성을 인정받은 그녀는 무대 위에서 카렌 오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의상과 페이스 페인팅으로 눈길을 끌었는데, 최근 발매된 세 번째 앨범에서는 훨씬 정제된 음악과 함께 한층 가라앉은 스타일로의 변화가 눈에 띈다.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가 촬영한 앨범 커버처럼 거추장스러운 포장을 모두 벗겨 낸 듯한 첫 번째 싱글 ‘로라(Laura)’에서는 특유의 음울함을 담담히 드러내 뇌리에서 잊히지 않을 정도로 슬픈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번 앨범을 내기 전 나타샤 칸은 벡(Beck)과 함께 영화 <트와일라잇 사가: 이클립스> 사운드트랙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이름이다. 그 리스트에는 톰 요크, 킬러스(The Killers), 뮤즈(Muse) 같은 유명 록밴드부터 블랙 키스(The Black Keys), 패션 핏(Passion Pit) 같은 실력파 인디 밴드들이 가득한데, 얼핏 보면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만으로도 음악계에서는 실력을 인정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간주하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인 만큼 나타샤 칸의 입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비치 하우스의 빅토리아 르그랑 역시 그리즐리 베어와 함께 작업한 ‘Slow Life’로 사운드트랙에 이름을 올렸다. 



애니 클락 (Annie Clark), 세인트 빈센트 (St. Vincent)

 

St. Vincent


먼저 외모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그래야만 한다. 같은 여자가 봐도 정신이 나갈 정도로 예쁜 그녀가 음악적 재능까지 있다니 하늘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고전영화 속 고혹적인 여배우의 얼굴을 한 그녀는 폴리포닉 스프리(The Polyphonic Spree)와 수프얀 스티븐스 (Sufjan Stevens) 밴드를 거쳐 세인트 빈센트라는 이름으로 혼자 활동하기에 이른다. 12살 때부터 배웠다는 놀라운 기타연주를 앨범 전면에 정교하게 배치한 3집 앨범 Strange Mercy는 평단의 극찬을 받았고, 이제는 전설이 된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멤버 데이빗 번(David Byrne)과 콜라보레이션 앨범까지 만들게 된다. 


2012년, 애니 클락과 데이빗 번이 함께 작업한 앨범 Love This Giant는 음악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어마어마한 거장과의 작업이다 보니 그의 영향이 아무래도 더 클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브라스 밴드를 중심으로 작업하자는 제안도 그녀의 것이고, 앨범 곳곳에서 느껴지는 애니 클락의 흔적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목소리조차 완벽하게 조화로운 이 매력적인 두 남녀의 프로젝트는 힙스터들이나 좋아할 만한 실험적인 음악을 할거라는 예상을 깨고 훵키(funky)하고 풍부한 관악기의 사용으로 지적인 동시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흑백으로 만들어진 싱글 ‘Who’의 뮤직비디오에는 쿵작쿵작 어깨가 들썩이는 흥겨움이 가득하다. 놀랍지도 않게 세인트 빈센트 역시 영화 <트와일라잇 사가: 뉴 문>에 본 이베르(Bon Iver)와 함께 작업한 ‘Roslyn’으로 이름을 올렸다.


예술적 센스가 넘치는 세인트 빈센트와 데이빗 번의 ‘Who’ 뮤직비디오에는
온몸을 들썩이게 하는 훵키함이 가득하다.


 

서방의 음악 하는 멋진 언니들을 한껏 찬양하고 나니 문득 한국엔 누가 있나 궁금해졌다. 사실 카렌 오에게 한국인의 피가 반쯤 흐를지언정 그녀를 한국 뮤지션이라 부르기에는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부러울 정도로 멋진 여자 뮤지션은 자우림의 김윤아 이후 딱히 떠오르지 않아 시무룩하던 참, 눈에 들어온 인터넷 영상이 있었다. 외국인들로 구성된 창작집단 루즈 유니온(Loose Union)과 작업한 인디 밴드 적적해서 그런지(Juck Juck Grunzie)의 뮤직 비디오(http://www.looseunion.com/videos/view/Lorem-Ipsum-Dolor-6)였다. 


보컬 이아름의 흐느적거리는 몸짓과 노이즈 사운드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묘한 목소리는 몇 년 전 비치 하우스의 공연을 처음 보던 그날을 떠오르게 했다. 이 새롭고 강렬한 음악이 국내 밴드란 말인가! 바로 올봄 앨범 발매 일정표에 적힌 쉬앤힘, 예예예스의 이름 밑에 적적해서 그런지의 첫 번째 정규앨범도 작게 메모했다. 곧 그녀의 목소리도 내 음악 플레이어를 점령하길 살짝 기대하며.



 

Writer. 맹 선호
 

인디 음악 매거진 <엘리펀트슈> 디렉터. 이제는 절판된 전설 속 페스티벌 원정기 <페스티벌 제너레이션> 저자. 

새로운 밴드를 알게 되면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물어볼 정도로 뮤지션의 외모에 관심이 많다. 

최근 세인트 빈센트가 너무 예뻐서 당황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