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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화이트] 장 폴 고티에, 시대가 낳은 ‘괴짜 디자이너’의 패션 세계

2014.10.13


“우리의 몸은 우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몸은 소통이다. 

우리의 옷, 머리와 몸의 장식은 우리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 장 폴 고티에-



현대카드의 16번째 컬처프로젝트 <스노우화이트 (Snow White)>는 ‘발레’라는 장르를 종합적 예술로서 관찰하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이다.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의 선율에 맞춰 프랑스 프렐조카쥬 발레단이 구현하는 전혀 새로운 백설공주 이야기에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관능적인 무대 의상이 작품의 농도를 더한다. 상식을 비껴간 전위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괴짜 디자이너답게 고전발레와는 다른 신선한 움직임과 사실적인 연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파격적인 무대 의상을 선보인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위트 넘치는 패션세계를 좀 더 깊게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패션 디자이너의 유형학


작품을 연대별로 정리하는 관점만으로는 오랜 시간 누적된 디자이너의 나이테를 읽어내기가 어렵다.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남긴 그들의 흔적, 시그너처의 빛깔과 실루엣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칼 라거펠트나 캘빈 클라인처럼 사회의 유명인사로 기억되는 디자이너가 있는가 하면 이세이 미야케나 발렌시아가처럼 시대의 장인으로 각인되기도 하고 피에르 가르댕처럼 미래의 한 시점을 패션에 옮겨놓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감을 부여하는 디자이너도 있다. 그런가 하면 후세인 샬라얀이나 마르틴 마르지엘라처럼 개념 중심의 옷을 주장하는 컨셉츄얼리스트도 있다.


그렇다면 장 폴 고티에는 어떤 유형의 디자이너일까. 필자는 한 세대의 여성상, 혹은 여성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규정한 디자이너 군으로 넣는다. 여기엔 1910년대 벨 에포크 시대의 여성상을 뒤집고 코르셋을 벗겨버린 샤넬이나 1950년대 전후 피폐한 시대에 여성들에게 환상과 우아함의 꿈을 심은 크리스천 디오르 등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포함된다. 장 폴 고티에는 과연 어떤 여성상을 드러냈을까?



출처: Featureflash/Shutterstock.com



스커트를 입은 남자들


장 폴 고티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시대의 이상적 아름다움에 접근한다. 그는 거리에서 픽업한 일반인을 모델로 쓰기도 했고 비만여성과 여러 나라의 인종들을 모델로 썼다. 문제는 자신이 추구하는 미학을 강하게 밀어붙여 외설적이고 저속한 차원까지 끌어내린 것이다. 고티에는 ‘나는 차이점이란 단어에 내 마음을 열었다. 다양한 미가 존재하고 다양한 유형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패션을 통해 보일 뿐이다’ 그는 누드와 S&M(sado-masochism, 사도 마조키즘: 가학 피학성 변태성욕), 젠더 코드를 혼합해서 사회에서 미처 탐색하지 못했던 인간의 자리를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게끔 노력한다.


그는 남자들에게 스커트와 코르셋을 입히거나, 남자들의 허세를 비꼬기 위해 게이문화의 상징들을 빌려, 여성의 연약함과 대조시키기도 한다. 여성상과 남성상이란 것도 결국은 세월의 누적 속에 ‘정상적’인 것으로 규정되는 것들의 합이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속에서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진 것들이다. 디자이너는 전통이 만들어낸 기호들을 뒤집고, 자신의 철학을 펼치기 위한 토대로 삼는다. 전통과 사회적 변화 사이에는 항상 시차가 존재한다. 고티에가 오늘날까지 패션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것은, 그 시차를 거슬러가는 장난끼와 도발,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행적인 믿음에 과감하게 돌을 던지는데 있다.



 

출처: Femmes With Beards



재킷과 팬츠, 여성패션의 새로운 문법


1976년 이후로 고티에의 작업은 스타일상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재킷과 팬츠를 기본 아이템으로 하여 남자와 여자의 옷장을 연결한다.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의 남성성과 몸에 딱 맞는 코트, 가죽 재킷, 오버올즈, 트랜치 코트, 다운 재킷은 코르셋과 스타킹, 가터벨트와 같은 여성적 요소를 결합시켜 독특한 제 3의 옷을 만들었다. 그는 현대미술에서 이질적인 소재들을 결합시켜, 기존 관객들의 시각에 충격을 주는 믹스 앤 매치(Mix & Match) 전략을 패션에 적용한다. 혼합과 병치는 그가 주로 사용한 디자인의 원칙이다. 여성용 슈미즈와 재킷을 함께 입히고, 팬츠와 스커트를 결합시켰다. 데님에 모피를 달아 우아한 드레스를 만들기도 했다. 


혼합과 병치는 그가 디자인에 사용하는 모티브에게까지 연결된다. 점성술, 황소의 머리, 타투, 방패, 캘트 족의 상징들, 다윗의 별과 십자가, 파티마(Hand of Fatima)의 손과 같은 종교적 상징이 다양한 형태로 직물과 옷, 액세서리, 특히 보석에 나타난다. 스트라이프와 폴카 도트는 고티에의 단골메뉴다. 이외에도 그는 옷을 열고 닫는 데 사용하는 잠금 장치에 관심이 많았다. 독특한 지퍼나 후크, 거북껍질로 만든 단추, 닻 모양을 새긴 단추 등 다양한 디테일로도 자신의 개성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출처: meunierd/Shutterstock.com



마돈나의 코르셋 브라


고티에는 철학과 정치를 패션에 도입한 디자이너다. 특히 사회적으로 정의된 여성과 남성의 자리, 그에 따른 정체성의 개념을 디자인에 접목했다. 그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코드를 무너뜨리고 각자의 성을 의도적으로 혼합시킨다. 대표적인 것이 마돈나의 원추형 브라(cone bra)다. 이 의상은 마돈나의 1990년 ‘Blonde Ambition’ 월드 투어를 위해 고티에가 디자인한 것으로, 원추 모양으로 가슴을 강조한 코르셋 형태의 겉옷을 마돈나와 백댄서들이 함께 입었다.


여성 엔터테이너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문제를 비판하며 등장한 원추형 브라는 이후 그의 컬렉션에 자주 등장한다. 2008년에는 신부의 코르셋 위에 원통형 브라를 입혔다. 전통적으로 신부의 코르셋은 복종의 상징이지만, 기존의 의미를 뒤틀어, 여성의 독립을 의미하는 패션으로 변화시켰다. 1998년 봄에는 하얀색 수트에 파니에를 입은 모델을 등장시켰다. 파니에(Pannier)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여성들의 스커트 폭을 넓게 만들기 위해 사용한 지지대다. 이 파니에 드레스를 통해 출산연령에 있는 여성들의 자연스런 신체에 대한 시각을 환기시켰다. 



출처: 위키피디아


표현하라, 인간의 미덕


장 폴 고티에는 세계문화와 다양한 국가의 옷 입기 방식에 매혹을 느꼈다. 그는 중국과 몽골, 스페인, 멕시코, 이외에도 다양한 나라의 색감과 패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컬렉션을 통해 선보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가톨릭의 상징인 십자가와 유태인들의 하시딕(Hasidic) 드레스를 풍자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프랑스 특유의 고유의 문양들, 가령 해안지대에서 발달한 블루 앤 화이트 스트라이프 셔츠나 1900년대 초반 벨 에포크 시대의 화려한 드레스도 자주 컬렉션에 사용했다.


“아름다움은 한 가지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아름다움이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Express Yourself!”라고 말한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침범할 수 없는 각자의 미(美)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6 스노우화이트(Snow White) 속에서도 이 작품만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길 바란다. 고전 발레의 전형적인 특성과 현대 무용의 난해함을 오가는 무언의 발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고유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가장 매혹적으로 드러내는 장 폴 고티에의 무대 의상으로 관람의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다.





Writer.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