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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화이트] 현대카드, 이번엔 발레다. 한발 먼저 살펴본 컬처프로젝트 16 Snow White

2014.10.21


현대카드의 16번째 컬처프로젝트로 세계적인 프렐조카쥬 발레단의 'Snow White(스노우 화이트)'가 선정되었다. 발레 프렐조카쥬는 고전 발레와 현대무용을 접목한 안무와 파격적인 무대 연출로 유명한 프랑스 발레단이다. 영상물로만 접하다가 처음으로 눈 앞에서 직접 관람하게 된 2012년 국제현대무용제(MODAFE) 폐막작 <발레 프렐조카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발레 프렐조카쥬의 다른 작품들도 꼭 관람하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다가오는 11월, 국내 초연을 앞둔 <스노우 화이트>를 미리 만나보았다.


발레 프렐조카쥬의 또 다른 대표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제어할 수 없으며 불안정하고 어리석은 사랑"을 다소 폭력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한 반면, <스노우 화이트>에 대해서는 사랑에 눈 떠가는 여성의 모습을 매우 감각적이면서도 파격적으로 표현했다. 우아하고 섹시한 무대가 보는 이를 두근두근하게 만든다는 것은 프렐조카쥬가 보여주는 <스노우 화이트>의 큰 특징. 이 작품은 이미 지난 2009년 '프랑스 언론연합'이 뛰어난 문화·예술 작품에 수여하는 '글로브 크리스탈(Globe de Cristal)'을 수상했고, 미국 뉴욕의 링컨 센터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무대에서 공연됐다.



상상불가! 놀랍도록 강렬한 무대
 

 

 

 

스노우 화이트가 태어나고 자란 왕궁의 모습부터가 파격적이다. 흔히 떠올릴 수 있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궁전은 온데간데 없다. 막이 오르면 불길한 느낌의 안개가 피어 오르고 만삭의 왕비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세상사가 그러하듯, 만인이 우러러보는 부와 권력의 상징인 호화로운 궁전이지만 깊고 깊은 내부로 들어가 보면 분명 어둡고 비밀스런 공간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노우 화이트의 엄마인 왕비가 스노우 화이트를 낳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동화를 통해 잘 알려진 일이지만 그 고통으로 서두를 열었다는 점에서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죽은 왕비의 품에 있던 스노우 화이트를 받아 든 왕. 왕의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고전 발레는 정해진 동작과 약속된 포즈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고 과장된 표정으로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프렐조카쥬의 발레 작품들은 인물들의 표정과 춤이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희극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왕비 없이 아이를 키우는 왕의 모습은 불과 3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묘사되는데, 아이를 어르는 장면에서 궁전 기둥 모양의 패널을 통과하면 작은 여자아이로 바뀌고 아버지와 딸이 즐겁게 춤을 추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사랑스러운 딸 아이를 바라보는 왕의 행복한 표정은 다시 패널을 통과하면서 어엿한 숙녀로 바뀐 백설공주를 바라보는 흐뭇한 표정으로 바뀐다.
 


매우 '고티에'스러운 파격 무대 의상


의상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했다. 발레 의상을 위한 장 폴 고티에 에디션이라니… 공연 내내 무대 의상으로 재현된 특유의 위트 넘치는 하이 패션을 감상하며 새로운 스노우 화이트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전에도 영화 '제5원소' '나쁜 영화' 등의 의상 감독으로 참여한 적이 있는 고티에는 등장인물들의 의상에 섹슈얼리티를 강조해왔다.


시스루는 물론, 리본 테이프를 연상시키는 분할법,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누드 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드라진 것은 기저귀를 연상시킬 정도로 두 다리를 드러나게 만든 하이 레그 디자인의 스노우 화이트 의상이다. 현대무용에서는 전라의 공연도 일반적이라지만 이렇게 보일 듯 말듯한 위태로운 디자인은 특히 마지막까지 긴장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 왕비의 의상. 고티에의 시그너처 향수 병 디자인을 보는 듯한 의상의 왕비는 등장부터 위압적이고 강렬하다. 토슈즈를 신지 않은 무용수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하이힐의 부츠를 신고 드레스의 후면은 길게 살리고, 앞 부분은 가터벨트를 연상시키는 비키니 팬티로 되어 있다.

 




왕비의 곁에는 항상 두 마리의 검은 고양이가 함께 하는데 왕비의 동작이 절도 있고 강렬한 반면, 고양이들의 동작은 치명적인 유혹이 느껴진다. 결말 부분 왕비의 음모가 만천하에 드러나 왕비의 자리에서 쫓겨나면서 왕비의 의상이 군인들에 의해 벗겨지는 장면에서는 수영복을 연상시키는 섹시한 검은 속옷이 드러나는데 놓칠 수 없는 마무리다.



관객의 감동 수위까지 조절하는 절묘한 음악

스노우 화이트의 음악은 체코 출신의 낭만파 음악 작곡가인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활용했다. 일부분을 발췌하거나 다양한 작품의 다른 악장들을 엮어서 익숙한 듯 전혀 색다른 음악으로 현대발레의 특징을 잘 살려냈다. 스노우 화이트가 궁전에서 쫓겨나 난쟁이들이 사는 광산마을에서 잠들었을 때 광산에서 일하고 돌아온 난쟁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 난쟁이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무용수들이 모두 특전사 출신인가 놀랄 정도로 엄청난 레펠 실력을 자랑하는데 역 레펠, 측방 점프 등의 어려운 동작뿐만 아니라 난쟁이의 자세로 마치 줄이 없는 것처럼 광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안무가 연출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장면의 배경 음악은 말러의 교향곡 1번 <타이탄>이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정말 감동이 최고조로 증폭된 순간이었다. 거인족 중에서 가장 우수하고 현명하며 질서 정연한 태도로 항상 냉정하게 대처하는 종족이 바로 타이탄이다. <스노우 화이트>라는 동화 속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위대한 역할의 일곱 난쟁이들에 안성맞춤인 곡이 아닌가!

스노우 화이트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깨어날 때의 사용된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는 단연 최고다. 동화에서는 스노우 화이트를 잠에서 깨운 왕자가 지나가던 이웃나라 왕자였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왕자가 작품의 초반에서, 스노우 화이트가 성인이 되는 생일파티에서, 사랑에 눈 뜨는 장면에서 총 세 번 등장한다. 이 때문에 후반에 마녀에 의해 이별의 아픔을 겪고, 결국 스노우 화이트가 죽음에 이른 것을 알고 절규하는 장면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된다.




 

왕자가 죽은 스노우 화이트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추는 파드되(Pas de deux)는 명불허전. 놓칠 수 없는 명장면 중의 명장면이다. 죽은 시체를 끌어안고 격렬한 춤을 추는 바람에 목에서 걸렸던 사과 조각이 튀어나와 서서히 잠에서 깨는 스노우 화이트와 이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놀란 왕자. (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설정인가! 키스만으로 잠이 깨는 연출보다 훨씬 신선하고 의학적이기까지 하다.) 스노우 화이트는 놀란 왕자를 달래듯 부드럽게 춤을 리드한다. 독 사과를 뱉어내기 전까지의 비장함과 연인을 다시 만나 행복해지는 달콤함의 극명한 대비가 절묘한 음악과 어우러져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쥐락펴락한다.



익숙한 듯 낯선 구성, 이보다 더 극적일 순 없다

발레에서 기본적으로 보이는 춤 동작은 이 작품에선 기대하기 어렵다. 각국의 민속 댄스, 스윙, 브레이크 댄스뿐만 아니라 올챙이 동요가 연상되는 일명 ‘꼬물이 춤’이나 엉덩이 댄스 등 유쾌하고 파격적인 안무가 요소요소 등장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것이 발레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발레인 듯 발레 아닌 발레 같은 것이 바로 스노우 화이트의 매력이 아닐까?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분명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동화임에도 낯설고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 그래서인지 ‘프렐조카쥬는 왜 이런 장면을 연출했을까’하고 자꾸만 의도를 탐구하게 된다. 특히 스노우 화이트의 엄마가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시작과,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죽은 스노우 화이트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죽은 엄마의 등장, 그리고 '그들은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닌 잔혹하게 느껴지는 마녀의 최후는 관람 후에도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 부분이다.



마법 같은 공연

 



마법의 거울은 정말 말 그대로 마법 그 자체였다. 이 장면을 과연 어떻게 표현한 것인지 난쟁이들이 등장하는 장면과 더불어 가장 호기심이 생겼던 부분이다. 당장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나를 마법의 거울에 비춰보고 싶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무엇일까? 있는 그대로의 내가 보일지, 아님 나의 일그러진 욕망이 보일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당신은 이미 마법처럼 짧은 가을의 끝자락, 11월에 펼쳐지는 마법 같은 공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6 Snow Whtie에 이미 초대되었다.

 





Writer. 소행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