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글 보기

[스노우 화이트] 동화 속 이야기를 따라 마음대로 상상하는 거예요 - 현대무용수, 안무가 김설진

2014.10.31

 

무용을 모르고 예술을 몰라도 그의 춤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갓(god) 설진’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댄싱9>의 전설이 된 김설진. 현대무용가이자 안무가인 그를 컬처프로젝트 16 <SNOW WHITE>의 무대가 될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만났습니다.



 



질문

<댄싱9>으로 큰 인기를 얻었어요. 요즘 많이 바쁘죠?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댄싱9>을 찍을 때는 휴대폰도 없고 외부와 차단된 채로 숙소생활을 해서 사람들의 반응을 실감 못했거든요. 매회 미션이 철인경기 같았어요. 정작 방송 나간 건 3회인가 4회까지 밖에 못 봤네요(웃음).


질문

사람들은 ‘김설진’을 어떤 춤이든 다 출 수 있는 댄서라고 생각해요. 스트리트 댄스를 하다 현대무용으로 전향했죠?

네, 근데 워낙 예전이라 지금은 스트리트 댄스를 한다고 말하긴 창피해요. 처음 시작은 스트리트 댄스였고 그 다음엔 방송 무용단 생활도 했고 가수들과 함께 공연하는 백댄서도 했고. 그때 같이 추던 형들이 지금 제 나이 정도됐었는데 춤 말고 다른 길을 준비하더라고요. 수명이 짧다고 느껴져서 더 오래 출 순 없을까 생각했죠. 그러다 학교에 들어갔어요. 일단 학교에서 춤을 가르쳐준다는 거 자체가 좋았어요. 그리고 영화 <백야>를 봤는데 거기서 남자 주인공이 추는 게 현대무용이라는 거예요. 왠지 재미있을 거 같았어요.




질문

장르는 다르지만 지금껏 계속 춤을 놓지 않았어요. 유투브를 보면 집에서 혼자 춤을 추는 셀프 영상들이 올라와 있던데 한시도 춤을 추지 않으면 못 견디나 봐요?

저한테는 춤추는 행위 자체가 배출이에요. 내 안에 있는 온갖 감정들을 다 쏟아 내는. 춤을 못 추면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파요. 춤 추는 거에 중독이 돼서...


질문

세계적인 무용단인 벨기에 피핑톰에서 안무가 겸 무용수로 활동했죠. <반덴브란덴가 32번지>의 한 장면을 봤는데 방금 말한 것처럼 인간의 감정을 온몸으로 끄집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안면근육을 일그러뜨리고 땅으로 꺼져 들어가듯 몸을 움직이던데.

아, 그거. 누가 보면 아마 기인열전이라고 할 거예요. 얼굴을 일그러뜨린 건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한 거였어요. 그 장면은 역할이 죽기 전 상황인데 죽기 직전에 자신을 관찰했을 때 나오는 갖가지 감정들, 그걸 표현하면서 아주 천천히 슬로우 모션으로 홀로그램처럼 움직이자 그랬어요. 화가들의 자화상을 많이 봤어요. 뭉크나 샤갈, 클림트, 에곤 쉴레. 다 자신을 잘생기게 그리진 않았잖아요. 일그러지고 분열된 얼굴들이죠.


질문

벨기에에서 활동할 당시 앙쥴렝 프렐조카쥬의 작품을 본 적 있어요?

그럼요. 한국에서도 봤고 프랑스에서도 봤고. 예전에 여기서 공연했던 <봄의 제전>을 봤었는데 작품 속에 전라의 누드가 등장해서 화제가 됐었죠. 그런 쪽에만 호기심을 갖고 오신 분들도 있었는데 솔직히 좀 속상했어요. 앙쥴렝 프렐조카쥬는 움직임이나 테크닉적인 부분에서는 아카데믹하지만 작품을 풀어내고 다른 걸 차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굉장히 열려있는 것 같아요.




질문

작품을 구상할 때 그림 같은 다른 분야에서도 영감을 받으시나요?

딸아이와 같이 무대에 올랐던 솔로작 <아빠>에서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모티브를 얻었고 안데르센의 동화를 각색한 <미운 오리 새끼>라는 작품을 만든 적도 있어요. 가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혼자 쓰기도 해요. 누구한테 보여줄 만큼 거창한 건 아니고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리는 거죠. 흔히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원작을 잘 보면 여러 가지 코드가 숨어 있어요. 안데르센만 해도 발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 같아요. <분홍신>을 보면 주인공이 구두를 신고 계속 춤을 추는 저주에 걸리잖아요. 어떻게 보면 참 무서운 이야기죠.


질문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6 <SNOW WHITE>도 원작에 충실한 이야기를 보여주죠. 이를테면 마지막에 왕비는 뜨겁게 달군 쇠로 만든 신발을 신고 죽을 때까지 춤을 춰야만 하는 벌을 받아요.

맞아요. 그런 잔혹한 면들이 있어요. 잘 생각해 보세요. 동화에선 꼭 한 명씩 죽어요. <SNOW WHITE>에서도 백설공주를 낳으면서 어머니인 왕비가 죽잖아요. 그게 계모 왕비가 등장하는 불행의 씨앗이 되고... 원작 속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어떤 식으로 풀어낼 지 기대하고 있어요.


질문

<SNOW WHITE>에서 역할을 맡아야 한다면 어떤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사람이 아닌 거 말해도 돼요?(웃음) 사람은 아닌데 되게 중요한 역할. 저는 사과요. 사과의 시점에서 보면 이야기의 해설자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평범한 사과인 나한테 왜 독을 집어 넣었어” 백설공주가 배어 물 땐 “먹지마, 먹지마” 그래 가면서요. 철저히 사과의 시점에서 보는 거죠. 그러다가 윌리엄 텔이 쏜 화살에 맞고 뉴턴의 손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하하.




질문

백설공주의 사과가 거기까지 갔네요. 평소에 상상 같은 거 많이 하죠?

아, 백설공주를 다시 보면 또 재미있는 캐릭터가 거울이에요. 거울이 왕비와 백설공주를 이간질한 건 아닐까 생각해요. 뭐 평소에는 상상도 많이 하지만 이것저것 많이 보죠. 픽사 애니메이션이나 팀 버튼 영화도 좋아하고 데이빗 린치 감독도 좋아해요. 중구난방이에요. 만화 <원피스>, <괴짜가족>도 즐겨 봐요. 세상엔 심오한 철학책도 가벼운 만화책도 다 존재해야 한다고 믿어요. 근데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 억지로 감정 잡는 건 싫어요. 가식적이고 부자연스럽게 과장된 것들은 못 참겠어요. 명품 로고 크게 박힌 옷을 입는 느낌이에요.


질문

그럼 안무가로서 작품을 구성할 때는 어떤 부분에 신경 써요?

옛날에는 사람들을 저랑 똑같이 만들려고 했어요. 순서 가르치고 완벽하게 트레이닝 하고, 나도 힘들고 그들도 힘들고. 잘해봐야 내 머리 속에 있는 만큼만 나왔어요. 근데 개개인을 관찰하고 그들의 괜찮은 점들을 끌어내려고 하니까 내 머리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사람들의 퍼스낼리티를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에요.




질문

<댄싱9>을 통해 인식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까지 관객들은 현대무용을 쉽게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문제가 제일 크지 않을까요? 예술가인 척, 철학적인 척, 어려운 이야기인 척 하다 보면 관객은 당연히 거리감을 느끼겠죠. 어려운 얘기를 어렵게 푸는 건 쉽고 유혹도 많아요. 그렇다고 관객에 맞게 수준을 낮춰야겠다, 이건 되게 오만한 생각이거든요. 수준 높은 좋은 작품을 내 놓아야 하는 건 맞는 거예요. 그 접점을 찾는 게 숙제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무용 같은 예술 공연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교육이나 시스템적인 부분도 뒷받침 돼 주어야 하고요.


질문

<SNOW WHITE>에서 중점적으로 보고 싶은 포인트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에요?

전체적인 스토리를 어떻게 이어나갈 지가 제일 궁금해요. 원작을 차용하는 경우엔 스토리에 따른 장면 장면이 있어요... 좋은 작품들은 각 씬의 연결을 굉장히 매끄럽게 표현해내거든요. 또 하나는 직업병인데, 관객들의 반응을 많이 살필 것 같아요. 혹시 조는 사람은 없는지 중간중간 둘러 볼 거예요(웃음).


질문

관객들과는 언제 만날 건가요. 준비 중인 작품 있어요?

안 그래도 12월 30일, 31일에 공연이 잡혔어요. 아이고, 연말에 누가 무용 공연을 보러 오실지 모르겠네요. 제목이 <안녕>인데 “안녕”이라는 말이 참 묘한 구석이 있잖아요. 만날 때인지 헤어질 때인지 모를 인사의 뜻도 있고. 이건 역마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전셋집을 이동해 다니는 도시형 유목민이랄까요? 물론 이 모든 걸 섞어서 재미있게 풀어낼 거예요. 심각한 건 재미없잖아요. 궁금하신 분들은 보러 오세요, <안녕>.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용가 김설진의 머리 속 이야기들처럼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6 <SNOW WHITE>는 여러분의 상상력을 자극할 겁니다. 원작에 가깝게 재현된 백설공주의 잔혹하고도 매혹적인 스토리.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들을 그와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