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글 보기

[스노우 화이트] 스노우 화이트, 말러 교향곡을 새롭게 발견하다

2014.11.04


말러의 교향곡엔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다. 본래 ‘교향곡’이란 극적인 음악장르가 아님에도 말러의 교향곡은 마치 오페라와 같이 느껴진다. 아마도 말러 자신이 뛰어난 오페라 지휘자였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과 음악을 밀접하게 관련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말러는 일찍이 “내가 작곡한 교향곡은 내 삶 전체의 과정이기에 만일 누군가 그것을 읽어낼 수 있다면 내 삶 전체가 빤히 드러나 보일 것”이라 말했는데, 실제로 그의 교향곡은 말러의 ‘자서전’이나 다름없다. 운명의 타격을 암시하는 망치 소리, 사랑하는 아내를 상징하는 선율 등, 말러 교향곡은 개인적인 암호로 가득하다. 


그러나 말러 교향곡 속의 ‘개인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만한 여러 감정으로 드러나고 있기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말러의 교향곡이 컬처프로젝트 16 Snow White(스노우화이트)의 이야기와 매우 잘 어울리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말러 교향곡에 담긴 죽음의 위협, 왜곡된 삶, 애틋한 사랑은 스노우화이트의 이야기 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되기 때문이다.



 


 

교향곡 제5번의 아다지에토와 사랑의 2인무

 

말러 교향곡 악장 가운데서도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교향곡 제5번의 서정적인 ‘아다지에토’는 발레 ‘스노우화이트’에서도 핵심적인 장면에 사용된다. 영화음악으로도 손색이 없어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사용됐던 이 곡은 백설공주와 왕자의 2인무와 매우 잘 어울린다.


실제로도 이 곡은 말러 자신의 사랑과 관련된 곡이다. 말러는 교향곡 제5번을 작곡할 당시 19세 연하의 알마 신틀러를 만나 결혼했다. 빼어난 미모와 싱싱한 젊음, 무엇보다 알마의 박학다식함에 반한 말러는 1901년 11월에 알마와  첫날밤을 보낸 후 “이런 느낌을 이제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소”라 시작하는 열렬한 러브레터를 보내며 그녀와 급격히 가까워졌고 비밀리에 약혼한 두 사람은 1902년 3월 9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 시기에 작곡된 교향곡 제5번의 중 가장 낭만적인 4악장 아다지에토는 “알마에 대한 사랑의 고백”, 혹은 “알마에게 보내는 러브레토”로 불린다. 그러나 이 곡에는 매우 쓸쓸한 가곡의 주제도 인용돼 있어 묘한 이중성을 뿜어낸다. 이 악장 마지막 부분 베이스 파트에 잠시 암시된 선율은 말러가 뤼케르트 시에 붙인 가곡 중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에서 온 것이다. 이 곡은 말러가 “이 곡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던 가곡이긴 하지만 사랑을 노래한 음악에 왜 이런 쓸쓸한 노래를 인용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는다.





스노우화이트의 독무를 쓸쓸하게 채색하는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

 

백설공주가 홀로 춤추는 장면에도 말러 교향곡 중 아름다운 느린 악장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교향곡 제10번 1악장 아다지오가 사용된다. 이 곡 역시 알마와 관련된 곡이지만 교향곡 제5번의 ‘아다지에토’와는 달리 매우 쓸쓸한 분위기가 풍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말러는 결혼생활의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1910년 여름, 그의 아내 알마는 요양 차 머물렀던 온천 휴양지에서 연하의 미남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사랑에 빠졌다. 실수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것인지 알마에게 보내는 그로피우스의 연애편지는 말러에게 배달되었고 이로써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말러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때 말러는 알마에게 자신과 그로피우스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말했고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던 알마는 결국 남편 곁에 남기로 했지만 말러는 이 사건을 통해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다. 점점 늙고 쇠약해져 가는 그에게 아내의 불륜은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고통과 혼란 속에서 번민하던 말러는 급기야 심리학자 프로이트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는데, 그때 프로이트는 말러에게 ‘마리 콤플렉스’라는 진단을 내렸다. 즉 말러에게는 모든 여성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마리’는 말러의 어머니의 이름이자, 그의 부인 알마의 중간 이름이기도 하다.) 프로이트의 분석은 말러에게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말러는 프로이트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 정신적 안정 상태를 회복했고 아내 알마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프로이트가 옳아. 나에게 있어 당신은 항상 빛이며 중심이었소!”


말러가 이런 혼란의 와중에서 작곡했던 교향곡이 바로 제10번이다. 당시 말러가 느꼈을 법한 고통과 번민을 나타내듯, 제10번의 스케치에는 이상한 메모들로 가득하다. “오 주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등, 성경에 나오는 몇 구절이 인용되는가 하면, “너만은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아! 아!” “안녕! 나의 음악이여! 안녕! 안녕!”과 같은 수수께끼 같은 글귀도 눈에 띈다. 또 피날레의 마지막 부분에는 “너를 위해 살고 너를 위해 죽는다! 알므시!(알마의 애칭)”이라는 글귀로 아내 알마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말러는 이 작품의 미스터리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결국 이 작품을 미완으로 남기고 이듬해인 1911년에 세상을 떠났다.





교향곡 제10번의 전 악장 1악장 ‘아다지오’는 여러 가지 점에서 매우 독특한 곡으로, 주선율을 연주하는 일이 드문 비올라가 이 악장 전체를 통해 주인공 역할을 하는 것이 특히 눈에 띈다. 도입부를 장식하는 비올라의 모놀로그는 인생의 황혼을 맞이한 말러 자신의 독백을 나타내듯 초연하면서도 쓸쓸하고, 높이 비상하는 주제는 호흡이 길고 장엄한 느낌을 준다.


이 곡 후반에는 갑자기 매우 큰 소리로 끔찍한 불협화음이 나타나 충격을 주는데 이는 말러 자신의 고통의 절규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 불협화음을 뚫고 들려오는 트럼펫의 끈질긴 A의 지속음은 갈등의 절정을 만들어낸다. 어떤 이는 이 A음을 가리켜 말러의 아내 ‘알마’(Alma)의 첫 글자를 뜻한다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말러가 교향곡 제10번을 작곡했던 1910년 당시 알마의 불륜 사실을 알고 고통스러워했던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거울 장면의 마법을 채색하는 비극적인 교향곡


스노우 화이트의 거울 장면에 ‘비극적’(tragic)이란 부제가 붙은 교향곡 제6번의 거대한 피날레 악장이 사용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특히 피날레의 서주 부분은 신비롭고 비현실적인 음향으로 가득해 거울 속에 비친 비현실적인 환영의 느낌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말러의 교향곡 제6번은 말러가 자신에게 닥쳐올 비극적인 사건을 예견한 작품이기도 해서 말러의 교향곡 중에서도 매우 특별하다. 말러의 부인 알마는 그녀의 회상록에서 말러의 교향곡 제6번에 대해 이렇게 썼다. “교향곡 제6번은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며 예언적인 작품이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와 제6번에서 그는 그의 인생을 "음악적으로 예견했다." 그는 또한 운명으로부터의 세 번의 타격을 받았고 세 번째 타격은 그를 쓰러뜨렸다.”





알마가 언급한 말러의 세 가지 비극은 장녀 마리아의 죽음과 심각한 심장병, 그리고 말러가 비엔나 오페라극장을 사임하게 된 일로. 이 세 가지 비극적인 사건은 말러가 47세가 되던 1907년에 말러에게 크나큰 타격을 주었다. 말러를 쓰러뜨린 세 가지 사건은 교향곡 제6번 4악장에서 거대한 나무망치 소리로 들려온다. 일반적으로 악기로 생각되지 않는 거대한 나무망치가 절정 부분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누구라도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곡된 민요 선율로 표현된 광산 장면


스노우 화이트에서 난쟁이들의 일터인 광산 장면엔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말러의 음악이 사용돼 인상적이다. 때때로 말러는 잘 알려진 옛 성가의 선율이나 민요를 인용해 음악에 의미를 부여하곤 했는데, 광상 장면에 사용된 교향곡 제1번 3악장은 잘 알려진 민요 ‘마르틴 형제’(Bruder Martin)의 선율이 사용되었다. 우리에겐 ‘자끄 형제’(Frère Jacques)로 더 잘 알려진 이 소박한 민요는 본래 단순한 장조의 선율이지만 말러는 이를 우울한 단조의 선율로 바꾸어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그 리듬은 마치 장송행진곡처럼 표현돼 있어 난쟁이들이 광산을 행진하는 기괴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에 마치 장례행렬이 움직이듯 팀파니의 연주가 시작되면 더블베이스 주자의 외로운 솔로가 시작된다. 더블베이스 주자는 돌림노래로 유명한 민요 ‘마르틴 형제’의 선율을 장조가 아닌 단조로 연주하면서 우울함과 기괴함을 동시에 표현한다. 이 기묘한 더블 베이스의 멜로디는 점차 전 오케스트라로 확대되고 갑자기 싸구려 밴드음악 풍의 떠들썩한 소리가 끼어들기도 한다. 교향곡 제1번의 초연 당시 이 음악은 사람들에게 큰 불쾌감을 안겨주었던 모양이다. 당시 말러의 절친한 친구 프리드리히 뢰어는 그날의 연주회 분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대부분의 청중은 이 작품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 작품의 형식은 새롭고 낯선 것이었다. 특히 비극적 감정을 표현한 강렬한 음향은 진부한 표현에만 익숙한 그들에게 불쾌한 충격을 주었던 모양이다. 마지막 악장의 도입부는 너무나 쇼킹해서, 내 옆에 앉아있던 한 우아한 부인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들을 모두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초연의 실패로 실의에 빠진 말러는 이 곡의 자필 악보를 서랍 깊숙이 넣어 두고 몇 년간 꺼내보지도 않았으나 후에 말러는 이 교향곡을 여러 차례 손질해 개정판을 내놓았고, 이 곡은 오늘날 가장 자주 연주되는 말러의 교향곡이 되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낸 컬처프로젝트 16 Snow White(스노우 화이트)는 잘 알려진 민요를 비틀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 말러의 시도와 매우 비슷하다. 발레 ‘스노우화이트’와 말러의 음악이 그토록 잘 어울릴 수 있는 것도 ‘풍자와 패러디’라는 비슷한 코드를 공유하고 있는 까닭이리라. 이번 ‘스노우화이트’ 공연은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백설공주 이야기의 새로운 의미와 말러 음악의 독특한 매력을 발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Writer. 최은규
서울대 기악과 졸업 후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부수석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여러 매체를 통해 음악평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