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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화이트] 앙쥴렝 프렐조카쥬가 말하는 Snow White

2014.11.21


Snow White의 막이 올랐던 날, 공연에 앞서 앙쥴렝 프렐조카쥬의 특별 강연이 열렸습니다. 현대카드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응모한 신청자들을 발레 프렐조카쥬에서 직접 살펴보았고 그 중 25명이 강연에 초대되었습니다. 앙쥴렝 프렐조카쥬는 “여러분을 직접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이제 강연 후엔 공연을 보시게 될 텐데 아무쪼록 즐거운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라며 참석자들을 반겼습니다. 팬들과 함께 모인 아늑한 방 안에서 그는 Snow White의 비하인드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려 주었습니다.



 



“내가 거장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미 들어 아시겠지만 Snow White를 일컬어 세 명의 거장이 만난 작품이라 말합니다. 패션계의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 장 폴 고티에가 의상을 디자인했고,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이 배경음악으로 쓰였으며, 제가 안무를 맡았죠. 솔직히 저를 거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Snow White란 작품을 만들면서 <백설공주>의 원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안무를 짜려 노력했고,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어디까지인지 그 감정을 극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와 그림 형제는 비슷한 점이 있다”


여러분들이 보시게 될 Snow White는 그림 형제의 동화 <백설공주>를 원작으로 합니다. 그림 형제는 독일의 작가들로 로맨틱하면서도 모던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백설공주>는 세월에 따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조금씩 다른 스토리로 변주되기도 했죠. 구스타프 말러 또한 독일의 작곡가로 로맨티시즘이 끝나갈 무렵, 로맨티시즘과 모더니즘 사이의 다리에서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쳤습니다. 구스타프 말러와 그림 형제 모두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러의 교향곡 200여 개 버전을 전부 다 들어 봤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이 1번부터 10번까지 있고, 각 교향곡 별로 서로 다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버전이 20개쯤 있으니, 계산해 보면 약 200여 개에 달하는 곡을 모두 들어본 셈이군요. 같은 곡이라도 어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매우 달랐습니다.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다른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왕비가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먹이는 씬에서는 격정적이고도 잔인한, 마치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와 같은 느낌이 밀려드는 버전을 골랐습니다. 각 장면마다 제 안무와 의도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으로 하나하나 추려냈기 때문에 Snow White에 등장하는 배경음악들은 서로 다른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곡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말러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흥미로웠고 결과적으론 재미있는 과정이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아다지에토’다”


말러의 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어떤 풍경이 그려집니다. 숲도 있고, 호수도 있고, 크게 비상하는 새도 있습니다. 자신의 귀로 들리는 풍경과 눈으로 보이는 풍경을 비교해 보는 것은 Snow White의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가 될 겁니다. 개인적으로 말러의 곡 중에서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Adagietto)를 제일 좋아합니다. 독사과를 먹고 죽은 백설공주가 왕자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이 음악이 흘러 나오죠.



“죽은 백설공주가 왕자와 함께 추는 파드되 안무가 가장 힘들었다”


안무를 짜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 바로 이 파드되(Pas de deux, 발레에서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춤을 뜻함)입니다. 왕자가 죽은 백설공주의 몸을 껴안고 춤을 출 때, 공주는 죽어 있는 신체를 표현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움직임을 서포트 해주어야 합니다. 극 중에서 백설공주는 죽은 육신인 상태지만 무용수의 입장에선 넋 놓고 있으면 안 되는 거죠. 이 씬에서는 안무가로서 굉장한 상상력이 필요했습니다. 또 감정적으로도 오버하지 않는 슬픔을 담아내고 싶었고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 애착이 가는 장면입니다.  





“Snow White의 의상은 어느 시대에나 속하는 동시에 어느 시대에도 속하지 않는다”


처음 장 폴 고티에에게 무대의상을 의뢰했을 때 그는 무려 200개가 넘는 데셍을 보내왔습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백설공주의 의상입니다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옷들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눈 여겨 봐주셨으면 합니다. 대개 무대의상이라고 하면 르네상스, 바로크, 이런 식으로 특정한 시대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Snow White의 의상들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어느 시대에 갖다 놓아도 속하는 한편 어느 시대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시대를 규정할 수 없는 혁신적이고 아름다운 의상들입니다.



“우리는 ‘백설공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과 의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오래도록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됐습니다. 현대에는 60세 여성도 충분히 매혹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백설공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봅니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말이죠. 여자로 커가는 딸을 보며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어머니는 위기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들며 여성성이 사라져가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려는 심리. 점점 여자로 꽃 피어나는 딸과 나이를 먹고 시들어가는 어머니의 심리학적인 두 축, 그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 그러한 것들을 Snow White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춤은 나의 붓이고 안무를 통해 화폭 위에 그림을 그린다”


사실 안무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막연하게 예술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화가나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춤을 접하고 나서야 알았죠. 아, 나는 춤으로 시를 쓰겠구나 하고요. 지금도 화가의 꿈은 버리지 않았는지 평소 시간의 5% 정도는 할애해서 늘 그림을 그립니다. 만약 제가 춤을 그만두게 되는 날이 온다면 아마 그림을 그리지 않을까요? 하지만 지금은 춤만이 나의 붓이고, 안무를 통해 화폭 위에 그림을 그립니다.





강연이 끝난 후 참석자들에게는 당일 관람 티켓과 앙쥴렝 프렐조카쥬의 사인이 담긴 프로그램북이 선물로 증정되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만난 앙쥴렝 프렐조카쥬는 굉장히 낭만적이고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질문에 답한 후에도 덧붙일 말이 생각나면 다시 부연 설명을 하는 등 충실하고 열의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그는 “수많은 나라에서 공연했지만 한국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호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라며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다시 한 번 열광적인 환호를 보낼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