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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BREAK 2014] 헤비메탈의 제왕 오지 오스본이 온다

2014.06.02


검은 안식일. 이름부터 불경스러운 뜻을 갖고 있는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는 시작부터 논란의 연속이었다.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데뷔 앨범인 [Black Sabaath](1970)는 의도적으로 13일의 금요일에 맞춰 발표하였다. 악마주의를 표방한 이들에 대해 많은 논란이 일었고, 음악적으로도 많은 비평가들에게 이미지만 내세울 뿐이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음산한 교회 종소리로 시작하는 [Black Sabbath]는 말 그대로 역사가 됐다. 블랙 사바스는 음악과 이미지를 기막히게 결합시키며 헤비메탈의 효시가 됐고, 그 뒤에 나오는 블랙 메탈이나 둠 메탈 등 다양한 서브 장르의 조상처럼 추앙받게 됐다.


헤비메탈의 대부 그러나 평범한 가장, 오지 오스본


그 중심에 오지 오스본(OzzyOsbourne)이 있었다. 블랙 사바스의 음악적 핵심은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Tony Iommi)였지만, 외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표현하는 것은 오지 오스본의 몫이었다. 특유의 음산하고 음울한 목소리와 함께 십자가 같은 소품, 화장 등을 통해 외모로도 악마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이 악마적 이미지는 솔로 활동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비둘기와 박쥐의 머리를 물어뜯는 기행으로 대표되는 그의 이미지는 한동안 그를 악마주의의 상징처럼 보이게 했고, 오지 오스본 밴드의 초대 기타리스트였던 랜디로즈(Randy Rhodes)와는 악마와 천사의 대비되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쇼'에 불과했다. 프로레슬링으로 비유를 하자면 '기믹(gimmick)'에 가까웠다. 언더테이커가 실제 장의사가 아니고 워리어가 실제 전사가 아니듯이, 오지 오스본은 무대 위에서 악마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음악가이자 연기자였다. 실제로 그는 착실히 교회를 다니는 개신교인이었고, 젊은 시절 늘 술과 약에 취해 살던 생활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며 가족과 아웅다웅 살아가고 집에서 쉬는 날은 수많은 강아지와 고양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평범한 아버지였다.


2000년대 중반 방영된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스본 패밀리'와 2011년 나온 다큐멘터리 '갓 블레스 오지 오스본(God Bless OzzyOsbourne)'은 오지 오스본의 그런 일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자주 아들·딸과 갈등을 겪지만 삶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번뜩이는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여전히 아이 같은 천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블랙 사바스에서 쫓겨날 정도로 심각했던 술과 약을 완전히 끊고 건강을 염려하기 시작했으며 운전면허를 따 직접 운전도 할 수 있게 됐다. 'Suicide Solution'란 곡을 만들어 자살을 조장했다는 오해를 사고 학부모들과 많은 갈등을 겪었던 오지 오스본은 이제 자신이 사고뭉치 자녀들 때문에 속을 썩는 부모가 된 것이다. '오스본 패밀리'가 인기를 끌게 된 데는 이처럼 무대 위에서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주던 오지 오스본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출처 : s_bukley / Shutterstock.com



기타리스트를 발굴하는 안목을 갖은 거장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이 주책바가지 아버지는 하지만 무대 위에선 여전히 카리스마 넘치는 로커다. 무대 밖에서의 여느 부모와 다를 것 없는 아버지의 모습은 무대 위에서만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과거의 흑마술적인 분위기는 아니지만 헤비메탈의 전설이라는 존재감만으로도 관객들을 압도한다. 블랙 사바스를 재결성해 [13](2013)이라는 걸작을 다시금 만들어냈으며, 솔로로서도 여전히 훌륭한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무대 위에 서고 있다. 그는 사실 가창력이 그리 뛰어난 보컬도, 성량이 풍부한 보컬도 아니다. 하지만 뛰어난 기타리스트를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계속해서 훌륭한 앨범들을 만들어왔다. 이는 오지 오스본의 음악적 재능과 역량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토니 아이오미뿐 아니라 그의 솔로 경력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랜디로즈, 브래드 길리스(Brad Gillis), 제이크 E. 리(Jake E. Lee), 잭 와일드(ZakkWylde), 거스 지(Gus. G) 등 많은 기타리스트들과 함께했다. 이들은 대부분 오지에게 발탁되기 전까지 결코 유명했던 기타리스트들이 아니었다. 오지 오스본은 매의 눈으로 이들을 발탁하고 명성을 안겨주었다. 오지 오스본 밴드를 통해 명성을 쌓은 이 기타리스트들은 배드랜즈(Badlands), 블랙 레이블 소사이어티(Black Label Society), 파이어윈드(Firewind) 등의 밴드 활동으로 또 다른 헤비메탈의 기운을 전달했고, 지금도 전달하고 있다. 오지 오스본이라는 숲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출처 : flickr.com



오지는 가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이렇게 살아남아 음악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얘기한다. 오지 오스본은 여전히 건재하다. 스스로 운이 좋다고 할 만큼,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살아남아 무대 위에 선다. 젊고 새로운 기타리스트들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그들과 함께 앨범 제작을 하고 투어를 돈다. 힘이 닿는 한 계속해서 공연을 하겠다며 박제화된 전설이기보다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전설의 길을 택했다. 난립하는 수많은 보급형 전설들이 아닌, '진짜' 전설이 8월의 서울에 왕림할 것이다.




Writer.
김학선
인터넷 음악방송국 '쌈넷' 기자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웹진 '가슴' 편집인, 한겨레신문 대중음악 담당 객원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웹진 '보다' 편집장, 웹진 '백비트' 편집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