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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McCARTNEY]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팝 아티스트, 폴 매카트니

2015.02.05


비틀즈가 활동했을 때와 해체 후인 1970년대에 비틀즈하면 바로 연상되는 인물은 폴 매카트니였다. 먼저 그는 대중적 인기 측면에서 사상 최고의 아티스트 비틀즈 중에서 최고였고, 다른 어떤 동시대 가수보다도 한참 위였다. 1970년대에 ‘윙스(Wings)’라는 이름의 밴드를 이끌던 시절,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의 다른 멤버들인 존 레논,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차트 1위곡을 거두었다. 그의 빌보드 차트 넘버원 송은 무려 32곡으로 역사상 최다 기록이다. 많은 음악관계자들은 이 기록은 결코 깨지지 않을 ‘콘크리트’ 기록이라고 말한다.



 



실력과 재능으로도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그에게 가장 자주 붙는 수식은 ‘가장 성공한(the most successful)’이란 표현이다. 그는 비틀즈 때도 대단했지만 해산 이후 윙스를 포함한 솔로 시절에도 엄청났다. 빌보드 1위곡만 아홉 곡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틀어 그의 인기 철옹성에 높이를 맞춘 인물은 엘튼 존과 마이클 잭슨 밖에 없었다.
 
‘가장 성공한’이란 타이틀이 전부가 아니다. ‘가장 위대한(the greatest)’이란 수식도 그의 것이다. 그는 실력과 재능 측면에서도 언제나 톱이었다. 멜로디뿐 아니라 화성과 리듬에도 능통했기에 음악종사자들은 폴 매카트니를 천재로 명명한다. 서구 팝 음악계에서 천재로 불린 인물은 그 외에 브라이언 윌슨, 프랭크 자파, 데이비드 보위 등에 불과하다.


솔직히 파퓰러의 명곡 중 명곡으로 통하는 <Yesterday>, <Hey Jude>, <Let it be>를 써낸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위대하다. 솔로 활동을 통해서도 그는 <Live and let die>, <Silly love songs>, <Band on the run> 그리고 스티비 원더와 호흡을 맞춘 <Ebony and ivory> 등 불후 불멸의 곡을 발표했다. 그가 보여준 경이로운 음악성은 실로 딴 음악가나 대중들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우리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윙스가 1977년에 발표한 곡 <Mull of kintyre>는 영국 차트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곡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는 ‘가장 성공한 그리고 가장 위대한’ 작곡가 겸 가수다. 그는 자신의 고국인 영국을 적어도 음악에서만큼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고, 영국 왕실과 정부는 1997년 그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그를 ‘Sir Paul McCartney’ 즉 폴 매카트니 경(卿)으로 불러야 한다. 따라서 팝 역사에서 비틀즈도, 폴 매카트니도 위대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비틀즈로도 또 개인으로도 역사상 넘버원인 셈이다.



영국의 자랑 - 폴 매카트니 경

비틀즈가 해체한 후 그는 멤버들 가운데 유일하게 밴드 윙스를 결성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관객들에게 밴드 비틀즈에 대한 추억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1970년에 해산한 순간부터 ‘역사’가 되어 있던 비틀즈를 그리워했다. 재결합설이 끈질기게 돌아다녔다. 폴 매카트니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밴드 윙스를 꾸려 스스로 비틀즈를 대신하려고 했다. 그래서 비틀즈 이후 폴의 노래는 멤버들 중 누구보다도 로큰롤 성향이 강했다. ‘나라도 비틀즈에 대한 향수를 전하련다!’는 마음이었다고 할까. 밴드로 달린다는 뜻의 ‘Band on the run’이 증명해준다. 그가 윙스 시절 열심히 순회공연을 다니던 1975-1976년은 발표하는 곡마다 당연지사처럼 빌보드차트 상위권을 점령하고 가는 곳마다 관객을 인산인해로 몰고 다닐 때였다. 과거 비틀즈에 못지않은 뜨거운 공연 열기였다. 당시 시사주간지 ‘타임’은 ‘비틀의 컴백’이라는 제목으로 폴 매카트니를 커버스토리를 다뤘다. 폴이 곧 비틀즈라는 내용으로, 폴에게 비틀즈의 대표성을 부여한 것이다.



인류애로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다 

그는 또한 인류애의 소유자였다. 전성기 때 흑인 최고 아티스트인 스티비 원더와 마이클 잭슨과 만나 각각 <Ebony and ivory>(1982년)과 <Say say say>(1983년)를 발표했다. 전자는 갈등으로 얼룩진 흑백의 화합을 갈망한 그의 인류애를 말해주는 곡이다. 위 두 곡은 모두 빌보드 차트 정상을 밟았다. 영국차트 1위에 오른 곡 <Pipes of peace>가 그렇듯 폴 매카트니도 파트너 존 레논처럼 언제나 음악으로 사랑과 평화를 지향했다. 그는 젊었던 시절부터 줄곧 매력적인 사람(Charm)으로 통했다. 언론이 매력이란 어휘를 동원한 것은 그가 예쁜 외모는 물론 따뜻하고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 폴의 라이브 콘서트는 뜨거운 로큰롤 호흡과 열정의 도가니다. 


전성기 시절이나 지금이나 공연장은 열기로 가득하고 흥분한 관객들은 자연스레 그의 나이를 잊어버린다. 그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무대에 한 가수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역사’가 움직이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PAUL McCARTNEY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에서 살아 움직이는 '역사'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가올 5월 2일은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 중 최고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특유의 미성과 조금은 탁한 로큰롤 보이스를 혼용하는 음색의 변화를 통해 무대에 다채로움을 구현하는 폴 매카트니. 그의 공연 레퍼토리는 솔로 시절의 곡들이 위주지만 살짝살짝 비틀즈 레퍼토리를 끼워 넣는다. 어떤 곡이든 관객들은 향수와 감동에 젖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참으로 대중적이고 관객서비스에 충실한 인물. 대중과 교감하는 아티스트의 진정성이 폴 매카트니에게 있다. 그는 대중을 사랑하고 대중은 그를 사랑한다.  

 



 

Writer. 임진모
음악평론가 

가수를 말하다』, 팝 경제를 노래하다』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