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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BREAK] 절규의 포스트 하드코어 아이콘, 더 유즈드(The Used)

2013.07.17

 

2001년 미국 유타 주에서 결성된 포스트 하드코어 밴드 더 유즈드(The Used)는 격정적인 절규와 유리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공존 시켜낸 스타일을 바탕으로 하드코어 팬층을 넘어선 다양한 사랑을 받았다. 지금까지 체감할 수 없었던 슬픈 감정 같은 것을 리콜 시켜냈는데 그렇다고 이는 부정적인 감각이 아닌, 어둠 한가운데서 싸워 빛을 찾아내는 어떤 일련의 과정처럼 감지되곤 했다.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꾸준히 진화해나간 유즈드는 2천 년대 이모코어/스크리모 신을 견인하면서 폭발해갔지만 정작 자신들은 단순한 '록밴드'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즈드의 보컬 버트 맥클라켄의 외침은 여타 응원가 따위보다 훨씬 힘을 주곤 했다. 과도한 절규를 거듭하면서도 때로는 섬세하고 상냥한 노래들을 불러내면서 관객들을 조련해갔다. 이들의 음악은 꽤나 진중하게 다뤄질 법도 했지만 이따금씩 무대 위에 미키 마우스, 마릴린 먼로, 그리고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같은 사람 크기의 판넬을 설치해놓고 공연하기도 했다. 나름 진지함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일종의 유머 같은 제스처였다. 과거 서태지 역시 배철수의 라디오에 출연해 유즈드가 천재인 것 같다면서 이들의 곡을 소개했다고 한다. 실제로 유즈드는 과거 서태지 주최의 록 페스티벌에 출연해 직접 만나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2002년 셀프 타이틀 앨범으로 데뷔했다. 이 놀라운 데뷔작을 통해 1백만 장을 돌파하고 플래티넘 디스크를 기록한다. 그리고 2004년에 발매한 두 번째 정규 작 "In Love and Death"의 경우 빌보드 차트 5위에까지 올려내면서 골드디스크를 획득하게 된다. 2007년도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Lies for the Liars” 역시 차트 5위, 그리고 2009년 작 “Artwork”는 10위를 기록하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확고한 인기를 증명해 갔다. 다이나믹한 긴장감과 극상의 멜로디는 어느덧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그리고 결성 10주년이 되는 2011년도에는 자주 레이블을 설립해 2012년에 “Vulnerable”로 빌보드 첫 등장 8위에 랭크 시켜낸다. 인터뷰에 의하면 메이저에 소속되어 있을 당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노예처럼 뼈빠지게 일해 그들의 은행계좌를 뒷받침해 가는 것에 질려있었고 독립을 통해 자유와 마음의 안식을 얻게 됐다고 한다. 이 무렵부터 유즈드는 'Take Action Tour'를 통한 자선 활동을 진행시켜가는데 이 투어의 경우 매번 공연의 헤드 라이너가 모금할 자선 단체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획이었다.

 

밴드는 그럭저럭 성공의 길을 걸었지만 나름 아픔도 겪는다. 2004년 무렵 버트 맥클라켄의 애인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하며, 비슷한 시기에 기르던 개 역시 트럭에 치여 사망하게 된 것이다. 결국 버트 맥클라켄은 자신이 직면한 죽음과 비극을 토대로 앨범 “In Love and Death”를 완성시켜냈다. 특히 앨범의 수록 곡 ‘Hard to Say’의 경우 애인이 죽기 이전에 썼던 곡이었지만 죽은 애인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겹치는 것을 목격하고 그녀를 위해 앨범에 수록하기로 결심했다. 곡의 가사에는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너무 힘들어/ 그립다고 말하는 게 너무 힘들어/네가 떠난 이후 난 이전과 같지 않지'라는 구절이 있었고 이는 그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해내고 있는 듯 보였다. 아무튼 이런 슬픔을 딛고 버트 맥클라켄은 후에 오지 오스본의 딸인 켈리 오스본과 교제하기도 했으며, 오스본 가족이 등장하는 인기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기도 한다.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지만 인기는 여전했고 극으로 치닫는 과격한 스테이지 퍼포먼스 역시 변함이 없었다. 자신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남기면서도 섬세한 멜로디를 부각시켜내는 등 좋은 진화를 이뤄갔다. 물론 점차 초기의 충동은 줄어갔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고도로 송 라이팅 실력이 성숙해져 갔다. 절규와 멜로디 감을 토대로 지탱하고 있었던 이들은 꾸준히 고품질의 악곡, 그리고 열성적인 퍼포먼스를 이어나간다. 린킨파크와의 투어 도중에는 린킨파크가 ‘Faint’를 부를 무렵 등장해 스크리모 파트를 부르기도 했는데 체스터 베닝턴 보다 좀 더 심도 있는 절규를 무대 위에서 뿜어내기도 했다.

 

따라서 완전연소 직전까지 가는 유즈드의 라이브 퍼포먼스는 특히 유명했다. 버트 맥클라켄은 꽤나 과도할 정도로 소리를 내지르는 편이었고 때문에 공연 도중 구토를 하기도 했다. “Maybe Memories”의 DVD, 혹은 몇몇 동영상들을 찾아보면 무대 위에서 구토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도 있겠다. 가끔씩은 무대 위에서 덤블링도 하곤 했는데 이렇게 원초적으로 폭발해내는 광경을 곧 우리도 지켜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음악은 기술의 높이로 성패가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보컬, 그리고 연주가 특별하다거나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움직여내는 감정적인 음악, 그리고 퍼포먼스는 관객들로 하여금 유즈드의 공연장을 다시 찾게끔 만들곤 했다. 이들은 점차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했고 그로 인해 밴드의 사운드 역시 약간은 그늘진 방향으로 갔지만 그래도 유머를 잊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들을 보이곤 했다. 기본적으로 음악 자체에 묵직한 무언가가 있었고 이는 언어의 장벽과는 상관없이 듣는 이들의 심장 한가운데로 침투해냈다. 이것은 단순한 '격렬함'을 넘어선 '강력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