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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 봉사활동] 한국의 미를 감상할 수 있는 ‘최순우 옛집’

2012.10.18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 역에서 길상사 쪽으로 걷다 보면 좁은 골목 안쪽의 주택들 사이로 눈에 띄는 한옥이 한 채 있습니다. ‘최순우 옛집’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이 집은 한국 박물관사의 산 증인이었던 혜곡 최순우 선생이 살았던 곳입니다. 최순우 선생은 이 집에 머무는 동안 구석구석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잘 가꾸어 놓았습니다.




한국미술 보존에 앞장 선 혜곡 최순우 선생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난 혜곡 최순우 선생은 1946년 국립개성박물관 근무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전부터 이미 문학 동인지를 통해 한국 미술에 대한 많은 글을 발표할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2년 뒤, 서울국립박물관으로 근무지를 옮기고 미술과장, 학예연구실장 등을 거쳐 1974년에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하게 됩니다. 1981년 국립중앙박물관 이전을 위한 작업이 시작되자 그 중심에서 일했는데요. 공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격무와 병에 시달리다가 개관을 앞두고 1984년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1950년부터는 서울대, 고려대, 홍익대,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사를 강의했고, 1967년 이후에는 문화재위원회 위원, 한국미술평론가협회 대표, 한국미술사학회 대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최순우 선생은 한국미술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관련 일화도 다양합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폭격이 쏟아지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피난보따리를 쌀 때, 밤을 새워 박물관의 주요 서류와 국보를 포장해서 부산으로 피난시켰습니다.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규모의 전시를 수십 차례 주관하면서 한국 미술의 이해와 진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 전시도 활발하게 추진했는데, 특히 ‘한국 미술 5천년전’은 우리나라 박물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전시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개최한 순회 전시회에는 5개월 동안 6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습니다. 유럽에서도 전시회 요청을 받았으나, 우리나라 국보에 대한 보험금액을 통상적인 수준보다 낮게 책정했습니다. 이에 ‘보험금액을 올리지 않으면 전시하지 않겠다’ 면서 정당한 대접을 요구했죠. 이후 우리나라 국보는 세계 최고수준의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 박물관사의 산 증인

그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묵묵히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찾고 알리는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래서 관심을 갖지 않던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정의하고 연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학자였죠. 그 연구내용을 정리한 글이 문화재해설 280편, 미술에세이 205편, 논문 41편, 사료해제 86편 등 600여 편에 달한다고 합니다.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와 김기창, 불교미술의 권위자 강우방, 제6대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도자기 연구가 정양모 등은 그가 박물관과 학계에 정착시키고 길러낸 인재들입니다. 이외에도 그의 영향으로 박물관에 종사하거나 문화유산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고 합니다. 한국 현대문화사를 이끌었던 문화예술인의 중심에 최순우 선생이 있는 것이죠.

또한 전국을 돌아다니며 문화재 발굴과 보호에도 최선을 다했는데요.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등이 모두 최순우 선생이 발굴한 문화유산입니다. 그 유명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도 이분의 저서입니다.


시민문화유산 제1호 ‘최순우 옛집’


 



최순우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도시개발로 인해 허물어질 위기에 처한 그의 성북동 집을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구입, 보존하게 되었는데요. 그 집이 바로 ‘시민문화유산 제1호 최순우 옛집(혜곡 최순우 박물관)’입니다. 2006년 9월 19일 등록문화재 제268호로 지정되었으며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거주한 곳으로, 이곳에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포함한 저서들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현재 안채는 전시공간, 동편 행랑채는 사무공간, 서편 행랑채는 회의실과 방문객의 휴게 공간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적 미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




1930년대에 지어진 한옥으로 ‘ㄱ’자 모양의 바깥채와 ‘ㄴ’자 모양의 안채가 맞물린 ‘ㅁ’자 형태의 전형적인 경기도 지방의 한옥양식 주택입니다. 한국의 미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한국적 아름다움을 담으려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깥채에는 서고와 다용도실이 있고, 안채에는 사랑방, 안방, 건넌방이 있습니다. 서고의 소장품은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지금은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의 사무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랑방은 최순우 선생의 집필 공간이었으며, 현판에는 "杜門卽是深山 (두문즉시심산, 문을 걸어 잠그니 바로 이곳이 산중 깊은 곳)”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뒤뜰로 난 사랑방 문 위에는 “午睡堂 (오수당, 낮잠 자는 방)”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뒤뜰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풍나무, 밤나무, 감나무, 소나무 등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최순우 옛집은 4월부터 11월까지만 관람할 수 있고, 12월부터 3월까지는 정기휴관에 들어갑니다. 매주 화요일~토요일에 오전 10시~오후3시까지 관람 가능하다고 하니, 정기휴관에 들어가기 전에 최순우 옛집에서 한국의 소박한 멋을 감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참고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문화재청
이충렬,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김영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