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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BREAK] 상식을 파괴하는 비운의 천재, 메탈리카 1대 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

2013.07.17

 

30여 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메탈 씬 최대의 아이콘 메탈리카는 그 지위에 안주하지 않은 채 헤비메탈과 얼터너티브의 가교로서 여전히 현장 최전선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빛을 발했던 초기 메탈리카 사운드의 핵심을 구축해냈던 공로자는 단연 클리프 버튼(Cliff Burton)이었다. 그의 베이스 연주와 작곡 감각은 밴드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역할 그 이상을 해냈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메탈 사운드에 클리프 버튼은 서정적인 뉘앙스라던가 프로그래시브의 구성미를 도입시켜냈다. 이런 배경에는 클래식 음악교육, 특히 바로크 음악에 대한 애착을 들 수 있었다. 라스 울리히는 그가 멜로디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았으며 3집 작업 시 따로 고전적인 작곡을 해왔다 회고하기도 한다. 공격적인 리프 사이로 서정성을 포괄해낸, 격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메탈의 이상형을 주조해내는 데에 클리프 버튼의 공적은 매우 컸다.

 

 

 

Cliff Burton ( / )

 

 

메탈리카의 멤버들은 클리프 버튼을 가입시키기 위해 기존 베이시스트 론 맥거브니를 거의 내치다시피 한다. 게다가 LA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밴드는 샌프란시스크로 와준다면 가입을 생각해보겠다는 클리프 버튼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활동 본거지를 옮기고 이후 현재까지 샌프란시스코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 클리프 버튼은 항상 데님 재킷과 나팔 청바지를 즐겨 입으면서 ‘청청패션’을 고수해갔다. 이미 메탈리카의 드러머 라스 울리히가 모터헤드의 팬클럽 회장이기도 했지만 클리프 버튼이 리켄베커 베이스를 연주한 것 역시 확실히 모터헤드의 레미의 영향이었다. 두 사람 모두 마치 기타를 연주하듯 베이스를 플레이해왔다. 특히나 클리프 버튼이 솔로 연주를 할 때의 태핑 하모닉스가 일품이었는데 두 손가락을 이용한 격렬한 핑거링은 피킹 그 이상의 어택감을 선사하곤 했다. 그는 속도가 빠른 곡을 피크가 아닌 투 핑거 주법으로 연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베이시스트였다. 클리프 버튼과 마찬가지로 나중에 밴드에 가입한-데이브 머스테인의 후임으로 들어온-커크 해밋 역시 자신도 클리프처럼 존경받고 싶었다 말하곤 했다.

 

 

하지만 1986년 9월 27일,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한다.

 

부동의 인기를 얻고 있던 메탈리카는 유럽 투어 중 스웨덴을 이동할 무렵 투어버스가 노면에 미끄러져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다. 당시 버스 창문에 내던져진 클리프 버튼은 버스에 깔려 즉사한다.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그리고 한창 밴드가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너무나 잔혹한 운명이 들이닥친다. 긍정적으로든, 혹은 부정적으로든 클리프 버튼이 죽은 이후 메탈리카의 음악은 변화했다. 클리프 버튼의 연주는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후임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결국 클리프 버튼과는 정반대 스타일을 지난 제이슨 뉴스테드를 새로운 베이시스트로 받아들인다. 제이슨 역시 훌륭한 베이시스트였지만 비교되는 대상이 너무 거대했다. 결국 제이슨 뉴스테드는 그 중압감 속에서 14년을 재적하고 밴드를 탈퇴한다. 클리프가 4년간 밴드에 있었으니 제이슨은 그의 3배 이상을 재적한 셈인데 그럼에도 몇몇 팬들은 여전히 그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제이슨 뉴스테드 탈퇴 이후 다시금 클리프 버튼처럼 핑거링 주법을 사용하는 로버트 트루질료를 멤버로 가입시켜낸다.

 

1집의 곡들은 클리프가 가입한 시점 이미 완성의 형태였던 지라 그가 작곡에 개입했던 2, 3집에서부터 곡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 효과적인 화음 같은 것들, 그리고 복잡한 코드들을 적극 도입해냈다. 그 정점에 이른 것이 세 번째 앨범이자 클리프 버튼의 마지막 참여 작이 된 ”Master Of Puppets”였다. 미국에서만 6백만 장 이상을 판매한 본 작을 통해 스래쉬 메탈이란 장르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특히나 클리프 버튼이 겨울밤하늘에 뜬 오리온자리에 영향을 받아쓴 8분여의 연주곡 ‘Orion’은 메탈리카의 곡들 중 가장 극적인 감동을 선사해냈다. 강렬하게 일그러진 베이스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밤하늘을 가르는 날카로운 기타 리프, 그리고 생생히 떠오르는 멜로디들이 뻗어나간다. 2006년 내한공연 당시 이 곡을 연주한 이후 '클리프 버튼에게 신의 은총을'이라고 언급했던 것 또한 기억에 남는다. 이후 메탈리카는 자신들이 주최한 페스티벌의 타이틀 역시 '오라이온 뮤직'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매우 인상적인 액센트를 포함하고 있는 트랙으로, 테크닉적인 활약 이전에 이런 곡을 만들 수 있다는 재능이야말로 클리프 버튼이 전설로 회자될 수밖에 없는 이유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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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리카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무렵 클리프 버튼도 포함한 형태의 수상이 진행되었다. 아버지 레이 바턴이 아들을 회고하는 연설을 했고 무대 아래에는 클리프 버튼의 어머니가 울고 있는 장면이 비치기도 했다. 이 노부부의 아들은 여전히 25세였다. 메탈리카의 팬이라면 한 번쯤 ‘만약 클리프 버튼이 살아있다면 지금의 메탈리카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을 거다. 요절했기 때문에 신격화된 부분을 부정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클리프 버튼의 연주는 그 누구와도 달랐다. 만일 그가 현재까지 살아남았다 하여도 여전히 '천재'라는 찬사를 들었을 것이다. 역으로 ‘천재’이기 때문에 요절한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