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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Nights] Night5 - 얼음 심장의 사내가 부르는 고독한, 하지만 사려 깊은 노래들, 아우스게일(Asgeir)

2015.01.19


아이슬란드 음악 시장을 순식간에 장악해낸 뜨거운 신예 아우스게일(Asgeir)의 데뷔작이 국내에 라이센스될 무렵 음반 해설지를 썼기 때문에 비교적 발 빠르게 그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었다. 해설지를 작성하면서 찾아봤던 몇몇 스튜디오 라이브 혹은 레코딩 당시의 현장을 보는 내내 아우스게일의 노래들을 직접 들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거진 1년 만에 불현듯 그의 내한 소식이 전해졌다. 이 노래들이 펼쳐지는 광경을 드디어 눈앞에서 볼 수 있겠구나 하면서 하루하루 공연일자를 기다렸다.



서울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아이슬란드의 서늘한 공기


아이슬란드의 혹한을 떠올릴법한 날씨를 뚫고 공연장에 도착하자마자 공연 시작을 알리듯 장내는 암흑이 됐다. 아우스게일 자신이 멤버로 있는 밴드 유니모그(Uniimog)의 장중하면서도 민속적인 노래 <Vetrarhrið (Winter Storm)>가 흐르면서 멤버들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실제로 얼굴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에브리씽 벗 더 걸(Everything But The Girl)의 벤 와트(Ben Watt)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와 애니 레녹스(Annie Lennox)의 분위기를 섞어 놓은 듯한 성스러움을 지닌 <Head in the Snow>로 공연이 시작된다. 아이슬란드 어로 구성된 두 곡 또한 이어졌다. 어쿠스틱 기타와 목가적인 건반이 일품인 그의 데뷔작 타이틀 곡 <Dýrð Í Dauðaþögn (In The Silence)>, 그리고 심플한 <Hærra (Higher)>를 비롯한 거의 매 곡마다 랍비같은 풍성한 수염과 중절모를 눌러쓴 드러머의 두껍고 무거운 스네어 터치가 공간을 채워냈다. 이후 그가 역동적인 드러밍을 펼쳐낼 때 중절모는 벗겨져버린다. 아우스게일의 앨범을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 구오문드 크리스틴 욘슨(Guðmundur Kristinn Jónsson) 또한 이번 투어의 건반주자로 활약했고 그 역시 수염에 랍비같은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무대 위에 오른 투어 멤버들 중 오직 왼편에 위치한 기타연주자 만이 유일하게 면도를 마친 상태였다.


메트로놈 클릭음 같은 리듬에 서정적인 피아노 울림이 두드러지는 <Lupin Intrigue>에서는 스네어를 덥믹싱해내면서 묘한 현기증을 제공해내기도 했다. 아우스게일의 프로필 사진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작은 바디의 깁슨(Gibson) L-00 어쿠스틱 기타로 교체한 이후 뒤에서 건반을 치던 두 멤버 또한 베이스와 기타를 연주한 <Summer Guest>가 이어졌다. 아우스게일의 부드러운 음성이 두드러지는 한편 기타 연주자가 볼륨주법을 통해 페달 스틸 기타 같은 소리를 만들어냈던 것 또한 기억에 남는다. 피아노로 시작한 너바나(Nirvana)의 커버곡 <Heart-Shaped Box>의 첫 가사가 나오자 몇몇 팬들은 너바나의 노래임을 알아차리고 반응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우스게일의 버전은 너바나의 뜨거운 열기 보다는 오히려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류의 차가운 소리에 더 닿아있었다.



침착함을 유지하되, 조용한 열기를 더해가는 후반부 무대


조명이 적극적으로 사용된 <Going Home>의 경우 인터뷰에서 아우스게일이 라이브 시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언급하기도 했던 레퍼토리였다. 미니멀한 드럼의 림샷과 함께 아우스게일은 자신 앞에 놓여진 3대의 건반을 오가면서 전자적인 효과에 집중한다. 풍부한 보컬화음으로 시작하는 <Dreaming>은 맑은 텔레캐스터 아르페지오로 전개되는데 건반 두 대를 한 명이 연주하고 나머지 건반 멤버가 기타를 백킹해내면서 곡 막바지에는 비교적 높은 열량의 사운드를 들려줬다. 


또 다시 아이슬란드 어로 구성된 두 곡을 이어냈다. 느리고 감성적인 아이슬란드 산 R&B 트랙 <Nú Hann Blæs (Here It Comes)>는 전자 비트와 실제 드럼을 동시에 활용해냈는데 라디오헤드(Radiohead) 풍의 멜로디 또한 은연중에 감지되곤 했다. 관객들이 리듬에 맞춰 박수를 쳤던 <Samhljómur (In Harmony)>의 경우 아우스게일이 직접 막판의 기타 솔로 또한 완수해내기도 한다. 마지막 곡임을 공지하면서 히트곡 <King And Cross>가 이어진다. 리듬을 타기 애매한 박자일 수도 있었지만 하이햇을 셔플로 연주하는 드럼을 바탕으로 원곡보다 더욱 리듬을 강조해내며 분위기를 고조시켜나갔다. 




앵콜이 이어졌다. 아우스게일 혼자 낡은 스트라토캐스터를 매고 무대 위에 등장했다. 그는 낡은 스트랫으로 포크 풍의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며 깨질 것 같은 청명하고 고요한 목소리로 <On That Day>를 홀로 불러냈다. 다른 악기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는데 특히 목소리가 떨리는 부분에서는 안토니 해거티(Antony Hegarty)의 보컬 톤 또한 연상되곤 했다. 아우스게일의 곡 중 비교적 역동적인 축에 속하는 <Torrent>에서는 기존에 없었던 현란한 조명의 움직임이 펼쳐졌다. 정과 동을 오가는 곡 구성을 통해 관객들의 몸, 그리고 마음을 동시에 흔들어 놓은 채 공연이 종료된다.



침묵 다음으로 입이 무거운 사내, 아우스게일




예상은 했지만 유독 말이 없는 아우스게일이었다. 동향의 선배인 뷰욕(Björk)의 내한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곡 사이 사이 아우스게일은 그저 "Thank You"라는 한마디 정도를 다소곳하게 읊조릴 뿐이었다. 과묵한 그의 성격에 걸맞게 무대연출 역시 현란한 LED 배경화면이라던가 화려한 조명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관객과 대화할 생각이 별로 없다는 듯 스스로의 음악에 고립해내려는 제스처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점에 있어서 더욱 듣는 것에 집중케끔 만드는 공연이었다. 지나치게 화려한 볼거리, 그리고 피로감마저 드는 과도한 관객호응유도 같은 요소들이 거의 필수요건처럼 되어있는 작금의 시대에 이렇게 우직하게 이끌어나가는 내한공연은 정말로 오랜만인지라 더욱 각별했다. 


오직 노래 그 자체만으로 관객들을 흡수시켜냈다. 그 어떤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물 흐르듯 흘러갔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오래 남겨지게 될 것만 같다. 아우스게일은 아예 눈을 감아버리거나 혹은 반대로 강렬하게 관객을 응시하면서 공연 내내 스스로의 노래를 이어나갔다. 나 역시 종종 눈을 감았다.





Writer. 한상철
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