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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5] YAP 건축과정 - 잊혀진 지붕을 듣고 보고 만지다(1)

2015.07.16


바람이 분다. 갈대발이 서로 부딪치며 버스럭거린다. 중천에 오른 따가운 햇볕은 갈대발에 바스러진다. 성긴 갈대발 사이로 푸른 하늘이 어른거린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에 거대한 갈대발 구조가 들어섰다. 현대카드는 열여덟 번째 컬처프로젝트로 국립현대미술관과 뉴욕현대미술관과 함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oung Architects Program, 이하 YAP)을 진행하는데 올해는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 이치훈, 강예린)의 ‘지붕감각(Roof Sentiment)’이 당선됐다. 이 구조물은 그간 잃어버린 감각을 환기해주는 장치이자 구조물이다. 어떻게 ‘지붕감각’을 만들어지게 됐는지 그 고군분투의 과정을 기록한다.



 

 


1. 사고의 시작: 지붕을 기억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마당에 어떤 파빌리온을 만들까 고심하던 강예린은 “처음엔 YAP에 건축적 요소로서 ‘집’의 감각을 끌어오려 했다”고 말한다. 관람객이 구조물을 하나의 대상이나 물건이 아니라 감각으로 경험하고 더운 여름에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이치훈은 “한옥이 밀집한 북촌에 있는 미술관 마당에서 ‘지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 싶었다”고 덧붙인다. 목구조를 사용한 동양의 지붕은 원래 크고 무겁다. 비가 많은 기후 때문이기도 하고, 하늘에 대한 제의나 상징으로 일부러 크게 과장하기도 했다. 처마는 색색의 단청으로 아름답게 꾸민다. 커다란 지붕과 처마는 비바람을 막고, 높은 지붕 아래 만들어진 깊은 공간은 한국의 기후에 맞게 바람을 적당히 통과시키며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그러나 건축 기술과 재료가 발달하고 건물이 크고 높아지면서 반대로 지붕은 얇아졌다. 낯은 천장의 고층 아파트와 층층이 쌓인 건물 안의 사무실에선 지붕을 떠올리기 어렵다. 


건축가들은 미술관 앞마당에 주변의 경관을 담는 그릇이자, 바람을 흐르게 하는 차양, 흔들거리며 감각을 깨우는 장치로 ‘지붕감각’을 생각했다. 이것은 덮여 있는 지붕이 아니라 열린 지붕이고, 갈대발이 늘어지며 만든 주름은 아래 공간을 자연스럽게 구분하고, 이 아래에서 올려다봤을 때 각기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실제 멀리서 본 ‘지붕감각’은 마치 커다란 병풍 같기도 하고 거대한 김밥용 발을 뉘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아래서 보면 늘어진 갈대발 사이로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2. 재료의 선정: 갈대를 찾아라!


‘지붕감각’의 가장 독특한 점은 대형 갈대발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건축가들은 “바람에 민감하고, 여름과 물을 떠올리게 하는 재료로 갈대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갈대는 한국적인 재료이자 동시에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그늘을 만들고, 유연성이 좋은 재료다. 구조물의 가장 높은 부분은 10.7m, 가장자리는 7.8m로 가운데가 뾰족해 말 그대로 지붕 모양이다. 이 거대한 지붕은 6.2m 5m 등 다양한 길이의 갈대발 400개를 사용해 110×25m 크기로 다시 이어 붙인 뒤 둘레를 타원형으로 다듬고 중간중간 다양한 크기의 구멍을 송송 뚫었다. 사용한 갈대발을 하나로 이어 붙이면 길이가 2.5km에 이른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갈대를 사용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붕감각’을 만들 때 주재료인 갈대를 공수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강예린은 “갈대 구하는 이야기로만 1박 2일 동안 할 수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먼저 생각난 곳은 우포늪. 이곳은 낙동강의 지류인 토평천 유역에 있는 국내 최대의 자연 늪지로, 가로 2.5㎞, 세로 1.6㎞에 이른다. 최근 건축가들이 이곳에 자연도서관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포엔 갈대가 없었다. 차를 돌려 순천만으로 향했다. 순천만엔 갈대가 있었지만 원하는 크기로 제작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뿐만 아니라 일일이 손으로 작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기성 갈대발은 일반적인 창문 크기에 맞춰 고작해야 폭 1.5m 길이 1.2m가 가장 큰 것이었다. 이런 갈대발 천여 개를 이어서 원하는 크기와 모양대로 제작할 수 있는 업체도 없었고, 역설적이게도 모든 갈대발의 원산지는 중국이었다. 이들은 “갈대로 유명한 지역을 찾아다녔는데, 작년 기후가 별로 좋지 않아 올해 갈대 상태가 별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생산 단가 문제로 국내에서 갈대발을 생산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는 사실도 알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지인의 소개로 중국 허베이 성 런추시를 조사하게 됐다. 황하강이 서해로 흘러들어 가는 하류에 있는 이곳은 마을 전체가 지대가 낮고 거대한 늪지가 있어 수 대에 걸쳐 갈대발을 만들어온 갈대 장인들이 있었다. “아! 드디어 찾았다.” 이곳에 방문한 건축가들은 4m는 족히 넘는 갈대가 무성하게 우거진 장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게다가 총 길이 2.5㎞의 갈대발 400여 개를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답변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갈대와의 씨름은 끝이 아니었다. 처음에 설계했던 이미지와 유사한 갈대발을 만들기 위해 껍질을 일일이 손으로 벗기고 갈대를 엮는 면사 소재의 끈을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철사로 바꿔야 했다. 이렇게 작업한 갈대발 400여 개를 스테인리스 철사로 지탱해 10.7m 높이의 기둥 위에 올렸다. 짧은 글로 표현했지만, 하중과 바람의 영향을 계산해 규모와 형태를 결정하는 3월 4일 당선부터 5월 초까지 두 달이나 걸린 셈이다.





3. 구조의 지속: 바람을 견뎌라!


더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 원래 계획한 설계를 변경한 부분도 있다. 최초 계획에서는 금속의 레티스 구조를 하부에 깔고 그 위에 덮은 흙의 무게로 풍하중을 견디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거대한 갈대발이 바람에 저항을 많이 받기 때문에 처음부터 구조 해석을 다시 해야 했다. ‘지붕감각’은 3개월간 튼튼하게 서 있을 뿐 아니라 갑자기 올지 모르는 강풍이나 태풍에도 견뎌야 했다. 이렇게 거대한 구조물을 풍동실험을 통해 구현하기는 물리적으로 힘들다. 이치훈은 “기초 형식을 다시 잡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주어진 2개월간 실시 설계를 하고 1.5개월 만에 시공을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완공된 ‘지붕감각’은 초속 20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는 구조다. 게다가 태풍경보가 예보되면 지붕구조에 설치된 철사를 기초에 용접했던 앵커(닻)에 연결해 구조를 안전하게 지지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초속 30m의 강한 태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 보통 풍속이 초속 15m면 건물 간판이 떨어지고, 초속 25m일 때는 지붕이나 기왓장이 뜯겨 날아갈 정도다. 3개월만 설치되는 임시적인 구조물이지만 최악의 경우를 예상해서 구조물을 설치했다. 그는 “과정 내내 무언가를 배우고 실험하는 느낌이었다. 바람과 갈대가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갈대의 처짐을 견고하게 잡아 모양을 유지하면서 바람이 일으키는 갈대의 움직임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였다”고 설명한다.





Writer. 심영규

월간 <SPACE(공간)> 편집차장. 건축·문화·예술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