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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BREAK] 멋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은 시티브레이커들

2013.08.21

 

해마다 더위와 습기에 시달려 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 다짐하다가도 다음 해 여름이 오면 단기기억상실에나 걸린 양 돌아가지 못해 안달복달이 나는 록 팬들이 가장 많이 기대한 행사가 바로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9 CITYBREAK였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등줄기가 흥건해지는 태양 아래, 굳이 거금을 내고 들어와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가며 낯 간지럽게도 음악으로 하나되는 그 순간만을 두 손 모아 기다리는 이 신묘한 제례. 무대 앞 펜스를 잡고 좀 놀아봤다 하는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낙원 혹은 극한 체험을 여기, 시티브레이크에서 모두 경험했다.

 

 

 

 

 

비록 도시에서의 일상과 물리적으로 철저히 분리된 낙원은 아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잠실 운동장을 찾은 관객들은 더욱 자유로워 보였다. 한여름 커다란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곳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내 저 곳에 뼈를 묻고 오리라’는 각오로 가득 찬 얼굴과 뒷모습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 대신, 사람들의 얼굴엔 최대한 심플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을 손수 찾아온 자신감이 띄워져 있었다. 해를 더할수록 악랄해져만 가는 무더위, 게다가 일 년 중 그 악랄함이 정점을 찍는다는 8월 중순. 행사 당일 많은 이들이 옷차림에서 멋보다 실속을 먼저 챙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티브레이크 관객들 속에서 화려한 꽃 장식이나 다양한 프린트의 롱 스커트, 원피스를 찾아보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재빨리 차지한 건 다양한 디자인의 모자와 선글라스였다. 연일 33도를 웃돌았던 높은 기온과 잠깐씩 구름으로 얼굴을 가릴 때를 제외하고는 등등한 기세를 꺾을 생각이 없어 보이던 태양을 생각하면, 이것은 패션 아이템이라기 보다는 살아 남기 위해 준비한 서바이벌 아이템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 생존의 몸부림 속에서도 관객들의 개성은 빛났다. 단순히 태양을 피하기 위한 용도만이 아닌 그날 의상의 컨셉에 따라 고른 각양각색의 모자와 선글라스들은 그 자체로 종합운동장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했다.

 

 

 

 

완벽 UV 차단기능을 장착한 베이직한 검정에서 8비트 도트게임을 형상화한 듯 한, 오로지 패션의 기능에만 주목한 형광까지 서울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선글라스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자도 마찬가지였다. 집 앞 슈퍼에 간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의 편안한 복장에 당장 밭을 메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밀집모자를 매치한 ‘실속 제일 주의파’에서 전신을 블랙으로 무장하고 역시 같은 컬러의 챙 넓은 모자를 매치해 햇살 따위에 굴하지 않는 패션 피플로서의 긍지를 보여준 ‘올블랙 폼생폼사파’까지. 특별한 아이템은 아니었지만 멋과 실속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시티 브레이크 관객들의 똑똑한 필요충분 조건이었음에는 분명했다.

 

 

 

 

다음으로 눈에 띈 건 바로 밴드 티셔츠였다. ‘편안함’이 주 키워드였던 시티브레이크 관객들의 패션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가운에 유독 눈에 띈 건 라인업 발표 당시부터 양일 원 투 펀치를 대표하는 대형 헤드라이너로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뮤즈(Muse)와 메탈리카(Metalica)의 이름이 새겨진 각양각색의 티셔츠들이었다. 이외에도 화이트 라이즈(White Lies), 림프 비즈킷(Limp Bizkit) 등의 티셔츠가 자주 눈에 띄었고, 라인업과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의 티셔츠를 소신껏 입고 온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욱 재미있었던 건 하루 종일 전혀 줄어들 생각이 없어 보이던 밴드 머천다이즈 판매소의 줄. 꽤 이른 시간부터 판매소 앞을 뱅뱅 돌아 있던 긴 줄은, 저녁 무렵이 되어서도 좀처럼 짧아질 줄을 몰랐다. 보통 공연을 즐기거나 먹고 마시느라 해당 밴드 공연 직후가 아니고서는 붐비는 일이 흔치 않은 머천다이즈 판매소인 만큼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느 공연 보다 자주 눈에 띄었던 밴드 티셔츠와 연관시켜 봤을 때, 유독 머천다이즈에 집착하는 관객들이 많았던걸까 엉뚱한 상상이 들 지경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축제하면 빼놓을 수 없는 ‘커플룩’을 빼놓으면 서운하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밴드의 티셔츠를 사이 좋게 나눠 입고 온 열혈 여성 록 팬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레 서로의 모습과 취향을 닮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친구룩’들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 친구룩의 경우, 여성들은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편안하지만 조금 과감한 코디가 주였다면 남성들은 프레피룩 같이 단정히 차려 입은 사이들이 많았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한국 공연계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여성관객들의 이제는 익숙해진 프로다운 모습과 막 먹고사니즘을 넘어 문화계로 눈을 돌리고 있는 남성관객들의 페스티벌 친숙도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게 한 귀여운 차이점이었다.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긴 했지만, 이번 시티브레이크에서 차려 입었든 아니든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 일일까 싶다. 하도 입어 목이 다 늘어난 밴드 티셔츠를 입었건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최신 유행 스트리트 브랜드의 S/S 라인으로 전신을 뽑았건, 그곳에 모인 모두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은 순간은 모두 같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뮤즈가 애국가를 연주하고 메탈리카가 관객들에게 1분의 무반주 떼창 시간을 선사하던 바로 그 때, 그 곳에 모인 모두를 갈라놓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Writer. 김윤하


음악칼럼니스트 김윤하. 듣고, 보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