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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Nights Ⅱ] 노래의 힘을 믿는 DJ, 제드(Zedd)

2015.12.07


그의 음악은 뜯어볼 구석이 많다. 춤추기 좋은 소리와 리듬을 잔뜩 풀어내는 것으로 공연장을 찾아온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보컬리스트와 나누는 협업을 즐기고, 화려한 디제잉 묘기 대신 인상적인 멜로디를 남기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다. 그런 그는 애초부터 EDM 같은 고정된 영역에만 머무를 마음이 없었다. 그의 꿈은 더 컸다. 성공한 DJ를 넘어 좋은 음악을 소개하는 뮤지션으로 인식되고 싶어 했다. 그의 꿈은 어느 정도 실현된 것 같다. 노래가 살아 있는 앨범이 두 장 나왔다. 나아가 노래의 힘을 아는 동료 뮤지션들이 그와 함께 작업하기를 원했다.



 



그가 만난 ‘정의’


본명 안톤 자슬라브스키(Anton Zaslavski), 1989년 러시아 태생으로 어린 날 가족과 함께 독일로 넘어와 남서부 지방의 카이져라우텐에서 성장했다. 학교 선생님이자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 덕분에 접할 수 있는 음악의 폭이 넓었다. 악기도 일찍 접했다. 그는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연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십대 시절 밴드 활동을 시작해 메탈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2009년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저스티스(Justice)’를 발견하면서 그는 변했다. 제드에 따르면 저스티스는 단순한 DJ가 아니었다. 전자음악의 전형에서 벗어나 비트와 함께 훌륭한 멜로디를 남긴 진짜 뮤지션, 나아가 그간 그가 알고 있었던 장르의 개념을 뒤엎은 아티스트였다. 막 20대가 된 그는 자신을 사로잡은 음악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었다.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답답한 고민과 연구가 시작됐다. 일렉트로니카를 파기 시작한 것이다.


PC로 음악을 만드는 방법을 어느 정도 익힌 그는 점점 취향의 범위를 넓혀갔다. 하드록, 재즈, 펑크 등 닥치는 대로 대중음악의 교본들을 흡수하던 중에 그는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One More Time’을 접한다. 사실 그렇게 좋은 노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노래가 실린 앨범을 쭉 들어봤더니 다프트 펑크 또한 저스티스와 비슷한 충격이 왔다. 그들 음악에는 명쾌한 멜로디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세상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있었다. 제드에게 다프트 펑크란 단순히 전자음악의 상징적인 이름이 아니라 위대한 음악을 만든 아티스트였다.



인터넷으로 만난 스크릴렉스


저스티스와 다프트 펑크에 미쳐 있었지만, 그는 그들과 똑같은 음악을 만들겠다는 열망은 없었다고 말한다. 이를 참고해 자신의 개성을 담아 비트와 멜로디가 함께 살아 있는 강력한 음악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음악은 아직 세상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곧 그런 확신이 와르르 무너진다. 여러 DJ가 드나드는 리믹스 전문 웹사이트에서 스크릴렉스(Skrillex)를 발견하면서다. 제드가 추구하고 구상했던 음악이 거기에 있었다. 심지어 이미 자신이 만든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스크릴렉스로부터 DJ의 전형이 아닌 완벽한 뮤지션을 본 그는 존경의 마음을 담아 쪽지를 보냈다. 설마했으나 마침 온라인 상태였던 스크릴렉스로부터 2분만에 답이 왔다는데, 반응에 탄력을 받은 제드는 부끄러움을 억누르고 자신이 만든 미완의 노래를 그에게 보냈다. 독일과 미국을 오가는 온라인 쪽지로 시작된 인연은 결국 공식적인 데뷔로 이어졌다. 제드는 2011년 스크릴렉스가 설립한 레이블 오슬라(OWSLA)가 소개한 첫 번째 뮤지션이다. 마침내 앨범을 발표했을 때, 그는 스크릴렉스와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존경한 선배의 기계적이고 과감한 스타일과 비교해 그의 음악은 한결 따뜻했다. 하지만 나풀거리지 않았다. 온기, 그리고 힘이 함께 느껴지는 인간적인 사운드였다.





그가 만난 넓은 세상


앨범 데뷔 이전까지 그는 온라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DJ 전문 사이트 비트포트에 꾸준하게 작업물을 등록했고, 웹사이트 내에서 이루어진 리믹스 콘테스트에서 2위를 기록했다. 경험과 기록이 쌓이기 시작하자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이 그를 원했다. 앨범과 공연을 준비해야 했다. 당시 그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영어로 유창하게 말할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그때 그를 도운 인물도 스크릴렉스다. 공연에 매번 초대할 테니 와서 자신이 관중과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보라 했다.


한때 영어 울렁증에 떨던 인간적인 온라인 DJ는 결국 앨범 두 장을 발표했고, 동시대의 팝 아이콘과 공동작업을 논하는 국제 뮤지션이 됐다. 그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대표곡 ‘Break Free’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비롯해 믹싱에 참여한 피처 아티스트다. 그리고 레이디 가가의 투어에 DJ로 시작해 그녀의 다섯 번째 앨범 [Artpop]에 투입돼 세 곡을 마감한 프로듀서다. 일본 아티스트 아무로 나미에도 그를 원했다. 그와 작업한 아티스트들은 그간 발표했던 노래들과 차별화된 결과를 그에게 의뢰했다. 그의 가능성과 비전을 믿었고, 그는 화끈한 노래로 그 믿음에 응답했다.



비틀스를 통해 배운 것


그는 각종 DJ들이 노래가 시작되기 전까지 1분 이상 전주를 깔아놓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렇게 불필요하게 곡을 늘이면서 폼을 잡는 일에 관심이 없다. 대신 비틀스의 방식, 혹은 퀸의 방식에 이끌렸다. 발표한 두 장의 앨범 [Clarity](2012)와 [True Colors](2015) 모두 위대한 아티스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물론 제드의 음악과 비틀스의 음악은 다르다. 다만 제드는 비틀스로부터 대중음악의 본질, 즉 훌륭한 노래의 구성법을 배웠다. 디제잉 기반의 폭풍 같은 기계적인 사운드는 그가 들려주는 음악의 중요한 특징이다. DJ가 펼칠 수 있는 전자음악의 세계는 무한대에 가까운 데다 다양한 동료 아티스트를 만나면서 그의 사운드도 조금씩 변했다. 하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도 멜로디를 놓지 않는다.



Spectrum


데뷔 앨범 [Clarity]의 대표곡이다. 처음 코드를 풀어놨을 때만 해도 이게 과연 괜찮은 클럽튠이 될 수 있을지, 그게 아니라면 다른 아티스트에게 줄 만한 곡인지 그는 뚜렷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매력적인 보컬리스트 매튜 코마를 만났고, 그는 제드가 대단히 만족할 만한 멜로디를 얹었다. 그렇게 완성된 ‘Spectrum’은 제드에 따르면 앨범의 내용을 명확하게 요약하는 노래다. 보컬의 표현범위도 넓고, 자신의 사운드 메이킹도 살아 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한국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2013 가요대전을 통해 SM 출신의 가수들이 준비한 댄스 퍼포먼스에 제드의 ‘Spectrum’이 흘러나왔다.



출처: Youtube



Clarity


빌보드 8위를 기록한 제드의 대표적인 히트곡으로, 보컬로 참여한 폭시스의 싱그러운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제드의 성향이 그렇듯 누구나 쉽게 기억할 만한 선명한 멜로디, 그리고 DJ의 역량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처음엔 레이블에서 의심했던 노래다. 재생시간이 4분 30초가 넘기 때문이고, 그러면 라디오가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엔 진짜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클럽을 통해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결국엔 라디오가 기꺼이 선택하는 노래가 됐으며, 더 시간이 흘러서는 2014년 그래미로 갔다. 댄스분야 올해의 노래를 수상한 노래다. 



출처: Youtube





Writer. 이민희

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