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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Nights Ⅱ] Night5 - 당신 인생의 사운드트랙, The 1975

2016.02.02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0 5 Nights Ⅱ의 마지막 밤인 28일 저녁, 8시 정시에 맞춰 The 1975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스크린을 배경으로 무대에 선 멤버들의 실루엣이 근사한 미디어 아트처럼 떠올랐다. BGM으로 깔리던 곡은 EP에 수록된 ‘Intro/Set 3’의 한 부분이었는데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배경의 스크린과 어울려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서서히 끌어 올리고 있었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0 Nights Ⅱ Night 5. The 1975 현장스케치 이미지



첫 곡은 ‘Love me!’ 찰랑대는 기타가 인상적인 업비트 곡으로 마치 80년대 듀란듀란 (Duran Duran)의 히트곡 같은 분위기를 내뿜는다. 기타의 인트로와 동시에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고 몇몇 팬들은 머리를 흔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The 1975 스타일’ 그 자체의 밴드


The 1975는 2002년에 결성했지만 공식적으로는 10년 후인 2012년에 데뷔했다. 처음 밴드를 결성했을 때 멤버들의 나이는 14살. 10대를 통틀어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다가 20대에 메이저로 떠오른 밴드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물론 그들은 19살이 돼서야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그 몇 년 사이의 성과는 분명 10대 초반 첫 경험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의 음악은 20세기의 장르 대사전 같다. 펑크, 신스팝, 알앤비와 소울에 이르기까지 70년대부터 90년대를 호령하던 장르가 뒤섞인다.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땐 쉽게 ‘레트로’라고 불렀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냥 ‘The 1975 스타일’이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그렇지만 그것 자체가 자기 자신인 밴드. 단기간에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도 그걸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0 Nights Ⅱ Night 5. The 1975 현장스케치 이미지



작은 공동체가 된 놀라운 순간


The 1975의 단독 내한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생의 사운드트랙’을 만드는 기분으로 음악을 대한다는 이들답게 공연은 어떤 깜짝 놀랄만한 순간을 제시했다. 무대에 설치된 조명으로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공간감, 거기에 핑크, 그린, 퍼플로 설계된 색감과 사운드가 일종의 예술적인 구조물처럼 관객들을 단단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인상적인 건 매튜 힐리(Matthew Healy). 무대에서 계속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대화하고, 눈을 맞췄다. 팬들이 만들어간, 마친 The 1975의 상징 같은 사각형의 라이트를 꺼내 자랑하기도 하고, 객석으로 꽃다발을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또박또박 천천히 발음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비영어권의 팬들을 배려하는 모습이랄까. 영미권의 록/팝 음악이 다소 마이너한 취향이 되어버린 최근 한국의 상황에서 이번 공연은 The 1975를 알고 있고, 좋아하고, 지지하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밴드와 함께 작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해 준 것 같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0 Nights Ⅱ Night 5. The 1975 현장스케치 이미지



관객과 함께한 교감의 무대


개인적으로 The 1975의 음악을 들으면 오래 전 있었던 곳을 떠올리게 된다. 어딘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런 곳이 있었고, 거기서 필자는 꽤 편안하고 행복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걸 잊어버렸거나 멀리 떠나왔지만 그 기억만은 분명하게 남아 있다. The 1975가 지향하는 ‘인생의 사운드트랙’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런 분위기인지 모른다. 이 모든 걸 ‘레트로’란 단어 하나로 정의하는 건 너무 안일한 일이란 생각도 든다.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감각’이기 때문이다. 공연장에서 매튜는 휴대폰을 꺼낸 사람들에게 “폰 안돼. 너와 나, 우리에게 집중해.”라고 말했다. 그 말 그대로 중요한 건 ‘우리’라는 안락함이다. ’The city’나 ‘Robbers’, ‘Medicine’ 같은 곡이 무대에서 연주될 때에는 특히 관객들과 함께 부르는 순간이 많았다. 한국 팬들의 호응은 어디와 비교해도 우위에 있을 듯. 매튜 역시 엄지를 들어 올리며 호응했는데, 이런 교감의 순간은 팬들이 미리 준비한 [LOVE YOU] 팻말을 들었을 때였다. 이걸 본 매튜는 “Love you, too!!!!”라고 답해줬고 ‘우리’는 미소를 지으며 환호했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0 Nights Ⅱ Night 5. The 1975 현장스케치 이미지



인생의 사운드트랙을 경험하는 것


하나의 밴드를 좋아하는 일, 그 밴드의 공연을 보러 가는 일, 그리고 거기서 음악을 듣고 얘기를 나누고 그들과 교감하는 일, 이 모든 것이 우리 삶을 채우는 좋은 것들 중 하나다. 우리는 모두 한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고, 그때 아주 좋았던 것들을 대부분 잊어버리게 된다. 그게 인생이겠지만 문득, 아주 많이 나이가 들어도 그 감각을 잊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5년이 필자가 태어난 해라서 특히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이 젊은 영국 밴드의 메시지가 공감각적으로 너무 분명해서 그렇다. 눈과 귀가 모두 즐거웠지만 특히 좋았던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온 우주를 통틀어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 당신과 내가 함께 있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경험인가. 인생의 사운드트랙은 그런 경험을 통해 하나씩 채워진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0 Nights Ⅱ Night 5. The 1975 현장스케치 이미지





Writer. 차우진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