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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 한 시대를 상징하는 첨단 크리에이터 벡(Beck)의 기상천외한 시도들

2016.04.29


영국의 음악 전문지 Q 매거진은 '60년대에는 비틀즈(The Beatles), 70년대에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 그리고 80년대에는 프린스(Prince)와 스미스(The Smiths)가 있었다면 90년대에는 벡이 있다'라는 평가를 주저 없이 했다. 매회 특별한 음악을 발표한 벡은 데뷔 시절부터 자신의 음악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다양한 활약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음악적 시도는 물론, 몇몇 재미있는 에피소드 일부를 되짚어 보자.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3Beck 앨범 이미지



* 한국, 그리고 현대카드와의 인연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벡은 성장기 시절 한국인 이웃이 있는 코리아타운에서 2마일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제서야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의아할 정도로 과거 몇몇 그의 작품에서는 한국에 대한 인용을 찾아볼 수 있다. 주로 이런 요소들은 벡의 1999년도 앨범 [Midnite Vultures]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이후 소개하는 예시는 모두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다.


- 'Nicotine & Gravy'의 뮤직비디오에는 오랜 시간 동안 '굿'이라는 한글과 코리아타운에서 촬영한듯한 한글간판의 실루엣이 정신 없이 등장한다. 


 

출처: Youtube



- 'Hollywood Freaks'라는 곡의 현란한 랩 가사 중에는 "Pop lockin' beats from Korea" 라는 대목이 존재한다.


- 'Debra'의 가사 중에는 심지어 "아가씨, 내 현대(차) 안으로 들어오세요(Lady, step inside my Hyundai)" 라는 내용이 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벡의 'Deadweight' 뮤직비디오 막바지에 사람이 짊어지는 빨간 자동차가 현대 소나타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 실제로 벡이 현대 자동차를 타고 다녔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벡의 이런 가사와 비디오를 처음 접했을 당시에는 10여 년이 지난 후 직접 '현대카드'에서 벡을 데리고 올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마치 이 곡을 통해 벡 자신이 현대카드와의 인연을 예견한 것 같다.


 

출처: Youtube



* 악보로 발매한 앨범 [Song Reader]


2012년, 벡은 음반이 아닌 악보 형태로 이뤄진 새 앨범 [Song Reader]를 발표한다. 당연히 그 자체로는 음악을 들을 수 없었고 구매자가 스스로 그 악보를 연주할 수밖에는 없었다. 직접 연주하든, 타인에게 연주를 의뢰하든 간에 이를 감상하려면 기존의 수동적인 청취 태도와는 전혀 다른 것을 시도해야만 했다. 벡은 악보 서문에 ‘이 노래들을 스스로가 원하는 방식대로 편곡해도 좋고, 좋아하는 악기를 사용해 연주하라’는 등의 언급을 통해 연주자들에게 자유를 줬다. 즉,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음악을 개방하면서 현존하는 형태의 음악이 제공하는 것 이상의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시도해보려는 것이었다. 악보의 출판과 동시에 개설된 공식 웹사이트(http://www.songreader.net)에는 팬들이 실제로 해석/연주한 음원과 동영상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이 곳에서 같은 곡임에도 어떤 이는 차분하게, 또 어떤 이는 뒤죽박죽으로 제각기 이 악보를 해석해내는 광경을 엿볼 수 있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3Beck 악보 이미지

출처: beck.com / store.mcsweeneys thedailybeast / thethoughtfox



이후 유명 아티스트들이 이를 연주한 컴필레이션 앨범을 2014년도에 발매했고 실제로 공연도 열었다. 녹음된 앨범에는 벡 자신은 물론 노라 존스(Norah Jones)에서부터 펀(Fun.), 잭 화이트(Jack White)와 배우 잭 블랙(Jack Black), 심지어는 마크 리봇(Marc Ribot) 같은 장인들이 참여했다. 항상 참신하고 개성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벡이 악보에 그린 세계관을 수많은 사람들이 표현해낸 것을 듣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고, 확실히 이는 유튜브 세대에 걸맞는 형태의 예술이었다.



* 구매자가 직접 커버를 꾸밀 수 있는 앨범 [The Information]


자신의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이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할 수 있게끔 하는 시도는 사실 [Song Reader] 이전에도 있었다. 바로 2006년 작 [The Information]에서였는데, 이 앨범을 처음 구입하면 모눈종이에 있는 'BECK'이라는 글씨를 제외하고는 공란인 상태로 놓여있다. 하지만 음반 안에 삽입된 스티커를 사용해 이 공란을 직접 자유롭게 꾸밀 수 있게끔 해놓았다. 잘 꾸민 아트웍의 경우 전시가 되기도 했는데, 실제로 벡은 팬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시도는 점차 온라인화 되어가는 음반시장의 과도기에 직접 손으로 만지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벡은 [The Information] 앨범의 수록 곡 모든 트랙을 비디오로 제작해 음반에 DVD로 동봉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비욘세(Beyonce) 등 여러 가수들이 이런 식으로 발매하기도 하지만 2006년 당시에는 비교적 드문 새로운 시도였다. 게다가 요즘에는 뮤직비디오 대부분을 유튜브에 공개하는데, 벡은 10년 전 이미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음반을 프로모션했던 셈이다. 주로 낮은 예산과 즉흥적인 방식의 시리즈 필름을 의도했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친구나 가족에게까지 연기를 시키기도 했다. 영상들을 인터넷에 올렸을 때, 이를 음반과 함께 감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경험을 일으킬지 궁금했다며 당시 이런 시도에 대한 이유를 밝혔다. 특히 'Cellphone's Dead' 같은 비디오는 유명한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 감독이 디렉팅했다. 그는 과거에 영화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에 삽입된 벡의 'Deadweight'의 비디오를 감독한 적 있고, 벡 역시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의 주제곡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을 부른 바 있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3Beck 앨범 이미지

출처: udiscovermusic / bigactive / amazon



하나의 예시가 더 있다. 과거 발매한 'Where It's At'의 12인치 싱글 레코드의 경우, 원곡에 삽입된 샘플과 비트를 따로 분리해 ‘Bonus Beats’라는 트랙으로 수록해놓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DJ들은 벡의 곡에 수록된 샘플을 툴로써 직접 턴테이블로 스크래치할 수 있었고, 드럼 비트만 있는 트랙 위에는 직접 랩도 해볼 수 있었다. 여러모로 청취자들과 인터랙티브한 관계를 모색해나가는 벡이다.



*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유별난 재해석 프로젝트 '레코드 클럽(Record Club)'


벡은 음악 팬들은 물론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에도 적극적인 편이었다. 2009년 그를 주축으로 진행된 '레코드 클럽'이라는 프로젝트는 벡이 다양한 뮤지션들을 섭외해 과거에 발표된 유명한 앨범들을 재해석하는 형태를 취한다. 하지만 이는 아무런 사전계획 없이 단 하루 만에 모여 리허설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원곡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완성되곤 했다. 


 

출처: Youtube



벡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인엑세스(INXS), 스킵 스펜스(Skip Spence), 그리고 야니(Yanni)의 앨범들을 재해석해 자신의 공식 웹사이트에 업로드 했다. 벡과 함께 작업한 인물들은 소닉 유스(Sonic Youth)의 써스턴 무어(Thurston Moore), 토어터스(Tortoise),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윌코(Wilco), MGMT 등이다. 원곡의 이미지를 과감히 지워버리는, 몹시 새로운 해석이 이 과외활동 같은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돌출됐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23Beck 녹음 현장스케치 이미지

출처: booooooom / youtube / vimeo / pitchfork


* 벡의 게릴라 콘서트


2005년도 앨범 [Guero]를 발매하기 직전에는 비밀리에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3월에는 런던에서, 그리고 4월에는 뉴욕에서 진행됐는데, 라디오 방송과 메일링 리스트에 등록된 이들에게 라이브의 개최를 알리고 단 500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곧 발매될 새 앨범 수록곡들을 연주했다. 가장 열정적인 팬들에게 자신의 신곡을 제일 먼저 들려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참고로 [Guero] 앨범에 수록된 'Black Tambourine'의 경우 데이빗 린치(David Lynch)의 영화 [인랜드 엠파이어]라던가 [500일의 썸머], [굿 와이프] 같은 작품에 삽입되기도 했으며, 'Broken Drum'의 경우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작고한 뮤지션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에게 바치는 노래이기도 하다. [Guero] 앨범 전체를 리믹스한 리믹스 앨범 [Guerolito] 또한 화제를 모았다. 보즈 오브 캐나다(Boards of Canada)부터 엘-피(El-P), 그리고 현재 K-팝 씬에서도 각광받는 프로듀서 디플로(Diplo)까지 광범위한 아티스트들을 리믹서로 참여하게 하며 별개의 웰메이드 음반으로 구성했다.



* 벡의 웅장한 시도: 데이빗 보위의 'Sound and Vision' 리바이벌


2013년 무렵 벡은 데이빗 보위의 3분짜리 곡 'Sound and Vision'을 160명이나 되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9분여의 러닝타임으로 재구축했다. 이는 한 자동차 회사의 90주년을 기념하는 광고 캠페인이었는데 벡을 중심으로 오케스트라와 마칭 밴드, 가스펠 중창단, 그리고 유명 연주자들과 함께 완수해낸다.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는 벡의 패기가 엿보이는 무대였다. 벡의 데이빗 보위에 대한 애정은 이후에도 계속되는데, 올해 그래미 시상식의 식전행사에서는 너바나(Nirvana)의 생존멤버들과 함께 그 무렵 세상을 뜬 데이빗 보위를 기리는 의미로 'The Man Who Sold the World'를 커버하기도 했다.


 

출처: Youtube






Writer. 한상철

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