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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왜 기업문화가 중요한가

2010.09.02


근본적인 혁신의 원천, 기업문화


기업의 역사에서 경영자가 ‘문화’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때문인지 아직도 기업문화가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제대로 이해하는 경영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단적인 예로 해마다 가을이면 논의하는 내년도 사업계획에서 기업문화와 관련된 이슈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항상 연구개발, 설비투자, 신제품 등의 주제가 우선순위의 앞부분을 차지한다. 다만 이런저런 방법들을 동원해도 당면한 문제들을 마땅히 해결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늘 기업문화가 문제라는 식으로 푸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기업에 작용하는 문화의 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내려진 의사결정은 예기치 못한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M&A다. 지난 2000년 미국 최대 온라인 통신업체인 AOL(아메리카온라인)은 역시 세계 최대 미디어업체였던 타임워너와 합병했다. 무려 1240억 달러가 오고 간 세기의 거래였다.

당시 언론들은 최강의 인터넷 회사와 최고의 미디어 회사 간의 결합으로 21세기를 선도하는 새로운 기업이 탄생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닷컴 버블이 붕괴되면서 AOL의 수익성은 급속히 하락했고, 부진을 거듭하던 양사는 결국 2009년 다시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이질적인 문화의 대립으로 기업문화 형성 실패


1998년 독일의 다임러벤츠는 미국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를 인수했다. 이들은 합병을 통해 공동생산 및 연구개발을 추진했으며, 이 합병도 꿈의 결합이라 불리며 세계 자동차시장을 재편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었다.

하지만 이 합병 역시 실패로 마무리됐다. 합병 당시 기대와 달리 다임러가 보유한 우수한 기술은 크라이슬러에 전수되지 않았고, M&A 당시 840억 달러였던 시가총액이 2004년에는 470억 달러로 고꾸라졌다. 마침내 2009년 다임러는 무려 400억 달러를 들여 인수했던 크라이슬러를 단 60억 달러에 매각하고 말았다.

이처럼 대형 사건이 아니더라도 M&A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인수합병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로 기업문화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평소 공기처럼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던 문화적인 요소들이 이질적인 두 조직이 결합하면서 비로소 가시적인 위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독일의 다임러와 미국 크라이슬러의 실패도 서열을 중시하는 독일식 기업 문화와 유연하고 성과 중심적인 미국식 기업 문화의 충돌로 인해, 기대했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탓이었다. 세계적인 명차 벤츠를 만드는 다임러 직원들은 크라이슬러와 플랫폼 공유를 꺼렸고,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크라이슬러 직원들은 독일 특유의 수직적 기업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문화적 충돌은 주요 경영진 사퇴, 우수 인력 이탈 등 종업원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졌고, 실적 악화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경영방식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합병으로 기업문화 형성 실패


AOL과 타임워너의 실패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AOL 경영진이 타임워너의 경영방식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타임워너의 조직을 장악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패요인이었다. 합병 후 AOL의 경영진이 타임워너의 주요 직책을 맡았지만, 이들이 타임워너의 운영에 미숙함을 드러내 두 조직을 융합하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합병 후 불과 1년 만에 AOL 측 임원들이 사임하고 타임워너측 인력들이 다시 복귀하면서 두 회사는 별개 회사처럼 돼버렸다. 이처럼 문화는 평소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M&A 사례에서 보듯이 조직 발전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경영자들이 기업문화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인식하는 것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기업문화를 단지 일을 처리하는 방법, 사내의 관습이나 풍토, 기본적인 가치 등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모두는 문화의 일부 요소에 불과하다. 기업문화 연구의 대가인 에드거 샤인(Edgar Schein) MIT대 교수에 의하면 문화는 조직 구조나 프로세스 같은 인위적인 요소 외에도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나 원칙, 무의식적으로 공유되는 암묵적 가정 등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M&A나 합작투자 등에서 기업 문화의 융합이 계속 이슈가 되는 것도 이러한 문화의 복잡성 때문이다.

특히 문화의 복잡한 구성요소 중에서도 눈에 잘 띄는 시스템이나 프로세스보다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공유가치나 신념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으로 잘 알려진 톰 피터스(Tom Peters)는 초우량 기업들의 성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영에서 전통적으로 중요시되었던 전략, 구조, 시스템보다는 공유가치나 스타일, 스킬과 같은 소프트(soft)한 요소들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현장중심 경영으로 빛을 발한 초우량 기업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초우량 기업들은 평범한 기업에 비해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에 있어 매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바로 그 단순한 차이가 결과적으로 큰 성과 차이를 가져온 셈이다. 이를 위해 초우량 기업들은 조직 전체의 몰입을 유도해 이미 알고 있는 바를 제대로 실행하려고 노력한다. 초우량 기업들은 제품, 서비스, 그리고 고객을 가식적인 태도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는 자세를 취한다. 특히 품질혁신, 고객 서비스, 그리고 현장에서의 개선 작업 등의 과제는 모든 구성원들이 몰입하지 않으면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난제들이다.

예컨대 탁월한 품질수준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먹고, 자고, 숨 쉬는 것처럼 모든 계층에 걸쳐 품질의식이 체질화되고, 품질에 대한 집요한 노력과 끈기가 동시에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조직 구성원들이 기업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공감하고 이를 자신들의 사고와 신념에 내재화시키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들이다.

또한 초우량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현장을 강조한다. 탁월함이 최종적으로 실현되는 곳이 현장이기 때문이다. 고객을 만나는 접점에 있는 판매원, 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엔지니어, 생산 현장에서 품질과 씨름하는 기능공들이 바로 탁월함을 실천하는 주체들이라 할 수 있다.

과거 많은 경영자들이 현장을 통제하기 위해 정교한 감시 시스템이나 복잡한 계층 구조를 만들어 보았지만, 결국 이들 대부분의 노력들이 실패로 끝났다. 각 지역에 산재한 수많은 현장 인원들을 비대한 감시조직과 복잡한 시스템을 통해 중앙에서 통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현장에 권한을 주고, 이들이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을 공감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

소매업체인 노드스트롬은 1978년 개점한 이래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이 회사의 광고예산은 같은 업종의 평균 수준보다 훨씬 적지만, 단위 매장당 매출액은 백화점 분야에서 최고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노드스트롬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객 서비스에 있다. 점원은 손님이 긴 통로를 걸어 계산대를 찾아 헤매지 않도록 제자리에서 계산을 하고 반품을 처리하며 포장을 한다. 반품이라면 무엇이나 받는다. 점원들은 경영자인 짐 노드스트롬(Jim Nordstrom)의 말을 자신 있게 인용한다.

“저는 고객이 우리가 판매하지 않은 타이어를 가지고 와서 200달러를 주고 산 것이라고 우겨도 개의치 않습니다. 당장에 200달러를 되돌려 드립니다.” 아무리 고객 서비스를 강조하는 기업일지라도 점원이 자신의 재량으로 자기들이 팔지도 않은 물건을 즉석에서 바꿔주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고객 서비스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기업문화가 조직 전체에 공고하지 않았다면 기대할 수 없는 탁월함이라 하겠다.


기업 성장 단계에 따른 기업문화의 진화 필요




비록 기업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경영자들은 문화를 매우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 내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인식하면서 형성된 공통의 가정이기 때문에 견고하고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문화의 보다 깊은 단계는 내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박혀 있어 인식조차 쉽지 않다.

특히 샤인 교수는 기업이 어느 성장 단계에 있느냐에 따라 문화 변화의 본질이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창업과 성장초기단계에서는 조직의 정체성과 명백한 능력을 정의하고 이를 강력하게 고수하게 된다. 창업자의 가치와 철학이 사업에 적극 반영되고, 이들 사업이 성공을 거두면서 문화가 정착되는 것이다.

반면에 성숙단계에서는 회사의 일상에 깊게 내재한 문화를 새로운 환경에 걸맞게 변화시켜야 하는데 이때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경영자들이 자신의 기업을 새롭게 변화시키고자 할 때 가장 고민해야 할 요소가 바로 기업문화가 되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애플은 기술과 엔지니어 일변도에서 탈피하기 위해 90년대 초반 펩시콜라의 ‘존 스컬리’라는 마케팅 전문가를 CEO로 전격 영입했다. 하지만 기존 문화의 저항에 직면해 결국 스컬리의 새로운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기업문화의 변혁은 경영 혁신의 첫걸음이자 마지막 완성


이처럼 경영혁신을 위해 새로 도입한 여러 제도들이 옛날부터 내려오고 있는 기존 문화와 궁합이 맞지 않으면 이 새로운 제도들은 항상 퇴화하게 된다. 사업부 단위의 혁신이건 혹은 회사 전체의 혁신이건 간에 모두 몇 년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혁신을 위한 새로운 제도들이 집단의 행동규범이나 가치관에 튼튼하게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를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가 기업 문화를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리더의 역할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문화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혁신적인 변화의 선결조건이다.

흔히 한 기업을 혁신하고자 할 때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그 기업이 갖고 있는 문화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하기 위한 첫 단계로 행동규범과 가치관을 바꾸는 일에 집착하기도 한다. 일단 기업문화만 바꾸면 경영혁신의 나머지 부분이 성공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실천에 옮기기도 쉬워진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한 기업의 문화를 바꾸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다. 기업문화는 조직 구성원들의 행동이 바뀌고 나서 일정기간 동안 이 바뀐 행동들로 인해 조직 전체가 이익을 본 후, 사람들이 이 새로운 행동과 개선된 성과 사이에 어떤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야 비로소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문화를 바꾸는 일은 경영혁신의 맨 처음 시작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마지막 완성의 작업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조직구조, 시스템, 관리 프로세스 등은 상대적으로 쉽게 보이고 바꿀 수 있는 관리의 영역에 가까운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공유가치나 신념 등과 같은 기업문화는 리더십의 영역에 더 가깝다. 강력한 리더의 끈기와 인내만이 조직의 근본적인 변화, 즉, 새로운 기업문화의 완성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Writer. 이동현
가톨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