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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글로벌 기업의 글로벌 기업문화

2010.09.02


내부고객 기 살려라


2008년 5월 5일 뉴욕시 맨해튼. 평범해 보이는 첼시의 한 건물을 찾았다. 미 대선 선거방송에 쓰이면서 유명세를 떨친 멀티터치디스플레이인 '매직월'을 만든 퍼셉티브 픽셀(Perceptive Pixel)의 설립자인 재미교포 제프 한(Jeff Han)을 만나기 위해서다. 제프 한은 기자와 만나기 3일 전, 2008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아직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그를 이 회사 로비에서 만났다.

제프 한은 반갑게 악수를 건네더니 곧장 회사 소개부터 한다. 좁은 로비의 문을 나서자 기자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퍼셉티브 픽셀은 일반 회사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뉴욕대 공과대학 연구원이기도 한 제프 한은 기자 일행을 커다란 거실로 안내했다. 자사 제품인 매직월 한 대가 놓여있는 이 거실에는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푹신한 소파가 있었고 테이블에는 갖가지 게임기, 잡지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가 매직월 시연에 나섰다. 매직월은 한마디로 거대한 아이패드라 할 수 있다. 광섬유를 얇게 펴서 50인치 이상의 스크린을 만들어 놓은 게 매직월이다. 광섬유는 스크린을 그대로 입력장치로 만들어 준다. 피아노 화면을 띄워 놓으면 스크린을 키보드 삼아 음악을 연주할 수도 있다. 이 장치는 그의 동생이 SF 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할리우드의 한 스튜디오에서 해군특수사대를 소재로 한 신작 드라마에도 소개됐다.

유명인사인 제프 한은 매직월의 소개를 간단하게 끝낸 후 기자 일행을 식당으로 데려갔다. 자신이 회사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곳이었다. 거실을 지나 짧은 복도를 지나면 식당이 나온다. 다른 곳과는 달리 식당은 온통 하얀색으로 된 최고급 레스토랑과 같았다. 기다란 식탁에는 특급호텔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은식기와 촛대가 늘어져 있었고, 벽에는 고풍스러운 그림이 걸려 있었다.

제프 한은 “나를 포함해 10명 정도 되는 연구원들은 너무 바빠 밖에 나갈 수 없다”며 “그래서 연구소를 푹 쉴 수 있고, 언제든 품위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편안한 집처럼 꾸몄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연구직인 직원들이 출퇴근하는 대신 회사에서 먹고 자는 일이 많자, 연구실을 아예 호텔 스위트룸으로 개조했다.


기업문화가 경쟁력이다


점차 기업문화에 관심을 쏟는 CEO가 늘고 있다. 여전히 영업이익이나 매출, 시장점유율 같은 숫자가 CEO의 최대 관심사이긴 하지만 숫자 너머에 있는 진실을 보는 경영자가 늘어나는 건 사실이다. 사실 경영은 오래 전부터 기술과 사람 그리고 이익을 효율적으로 구성하는 일이었다.

오늘의 GE를 있게 한 잭 웰치 전 GE 회장은 저서 '잭웰치 끝없는 도전과 용기'에서 "나는 GE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되기를 바란다"며 "국경 없는 기업문화를 통해 세계 최고의 인재 양성소와 학습조직을 만들어냈다고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GE라는 세계적 기업의 성장 뒤에 탁월한 기업문화와 학습조직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모든 기업은 인재 양성과 특유의 기업문화를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단기 실적 혹은 얼마나 더 많은 일을 시키는지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의 기업문화는 더욱 발전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 즉 단순한 보상 시스템으로는 조직원이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경영자들이 깨닫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 경제적인 보상 외의 것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복리후생도 그 중 하나다. 유급휴가나 연금과 같은 단순한 복리후생 얘기가 아니다. 전문 복리후생 컨설팅 업체가 나타나면서 총액을 정해놓고 직원들이 그 안에서 자신에게 주어질 복지를 선택하는 데까지 발전해 왔다. 경제적 보상, 복리후생을 넘어 이제는 회사가 단지 일만 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는 고민도 늘고 있다. 기업의 문화 자체가 직원을 추켜세워 제대로 일을 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이미 능력 있는 인재들 사이에서 브랜드 가치가 높은 애플, JP모건, MS와 같은 대기업은 일하는 환경, 일하는 방식 등 기업문화가 인재들이 직장을 선택할 때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외 혁신기업들의 독특한 기업문화


<구글플렉스 카페테리아>



구글은 직원들에게 좋은 근무환경, 생활환경을 제공해 주는 회사로 유명하다. 구글 플렉스라는 본사 건물에서 전담 요리사가 양질의 음식을 공급한다. 전체 직원 중에 절반은 해외 이민자기 때문에 아시아 음식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다. 구글은 한 해 약 60억 원 이상을 구내식당 예산으로 쓰고 있다. 회사 전담 요리사만 100명이 넘는다. 실내 체육관과 탁아소 등 모든 편의시설은 24시간 운영되고 애완동물을 데려오는 것도 허용된다. 가장 특이한 점은 전 직원이 자신의 업무시간 중 20%를 본인만을 위한 혁신적인 개발작업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가 있는 시애틀은 MS의 도시와 같다. 수많은 건물이 연결돼 있어 언뜻 보면 대학을 연상시킨다. 본사 가장 높은 곳에는 회장실이 아닌 MS카페가 있다. 직원들은 아무때고 이 카페에 들러 시애틀 시내를 내려다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 각 건물에는 온스테이지라는 오락실이 있어서 MS의 X박스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각종 식당과 편의시설은 물론이고 축구장과 우체국도 들어서 있다.


<픽사스튜디오 사무실 내부, 칸막이가 아닌 작은 오두막으로 구분되어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픽사는 한 술 더 뜬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애머리빌에 있는 픽사 스튜디오의 건물 15채는 각기 다른 모양으로 지어졌다. 외벽을 장식한 붉은 벽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색이 조금씩 다르다. 같은 붉은색이지만 일곱 가지나 되는 수제품 벽돌로 6,000평이 넘는 건물을 지었다.

픽사 스튜디오는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1986년 스타워즈 시리즈로 유명한 루커스 필름의 컴퓨터 그래픽 부서를 천만 달러에 인수해 설립한 곳이다. 이 회사는 스튜디오 모습도 유별나지만 그 내부는 더 심하다. 처음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픽사 스튜디오에서 시트콤이 촬영 중인 것으로 오해할 만 하다. 카메라만 없다 뿐이지 방송국 스튜디오처럼 각기 다른 모양의 방들이 꼭 세트처럼 나열돼 있기 때문이다. 이 유별난 모양의 방들은 이 회사 애니메이터들의 사무실로 중세 유럽의 성을 닮은 사무실이 있는가 하면, 숲속 오두막집, 애니메이션 속에서나 볼 법한 우주선 모습까지 다양하다.

픽사는 이들에게 약 2평의 공간을 일률적으로 분양하지만 이를 꾸미는 것은 직원들의 몫이다. 직원들은 직접 망치를 들고 자신들의 사무실을 짓는다. 새로운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으면 언제든 다시 짓는다. 회사가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 픽사 직원들에게 일은 놀이고, 놀이는 곧 일이다.


<픽사스튜디오 로비를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중앙홀>



근무시간도 기본적인 회의 등을 제외하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다. 사무실에서 운동하기도 하고 게임이나 심지어 조깅을 하기도 한다. 다 평일 근무시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공간에서 직원들은 토이스토리, 인크레더블과 같은 기발한 작품을 내놓는다.

글로벌 기업만 이런 대열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규모가 작고 창의적인 기업일수록 인재를 잡기 위해 근무환경과 기업문화에 더욱 신경을 쓴다. 기자가 올해 5월 방문한 뉴욕시 맨해튼의 워크스마트랩이라는 작은 벤처기업도 뛰어난 인재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회사는 흔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할렘의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침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테이블에서 점심 식사가 한창이었다. 햄버거를 한 손에 든 배고픈 프로그래머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맨해튼 최고급 레스토랑인 카페 그레이 출신인 요리사 제인 사공이 정성껏 만든 이탈리아식 요리가 테이블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세주 사장은 구글의 수석 개발자 출신 아텀 페타코브와 함께 4년 전 회사를 창업했다. 개발자 6명 모두 미국과 독일의 최고 대학을 졸업한 수재다. 수석 개발자인 마크 사이먼과 케틸 구나슨은 베를린자유대학 컴퓨터공학과 석사 시절에 미 국방부가 개최하는 로봇 축구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 2회, 준우승 5회를 차지했다.

정세주 사장은 개발자, 요리사 모두 업계 최고 대우를 해주고 채용했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느 IT기업에도 갈 수 있었지만 워크스마트랩이라는 창업 5년차의 작은 회사를 택한 것. 아텀 페타코브 공동창업자는 "좋아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매달릴 수 있도록 회사가 모든 것을 대신해 준다"며 "구글이나 오라클 등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뛰어난 인재가 우리를 택하게 하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즐거운 직장이 창의성과 생산성을 보장한다


캘리포니아주립 롱비치대학의 윌리엄 머서 교수는 “직장에서 즐겁게 일하면 창의성과 생산성이 향상되고 건강악화로 일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적다”고 밝혔다. 직원을 기쁘게 하면 회사가 기쁘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구글, 애플 등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이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자유로운 회사들이 포진한 미국에서조차 연구 결과에서처럼 실행하기 힘든 일이다.

일은 즐거울 수 없다는 인식이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즐거움은 열심히 일한 후에 누릴 수 있는 보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뛰어난 인재가 들어올 수 있게 또 들어온 인재가 다른 곳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려는 세계적 기업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뉴욕시의 열악하거나 우아한 직장생활이 그대로 드러난다. 실제로 사무실들이 몰려 있는 맨해튼 미드타운을 평일 점심시간 때 방문해 보면, 영화처럼 스타벅스 커피 열 몇 잔을 트레이라는 운반용 종이에 가득 담아 옮기는 1~2년차 신입사원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이 일하는 직장은 광고회사, 모델 에이전시, 언론사 등 대단한 곳들이다.

그만큼 인기 있는 직장에는 지원자도 많다. 자신의 능력을 검증 받을 때까지는 커피 심부름, 야근을 하며 서울의 샐러리맨과 같은 생활을 이겨내야 한다. 살인적인 물가의 뉴욕에서 NGO의 자원봉사자가 받는 활동비 수준의 월급도 견뎌내야 한다. 이를 견뎌내고 조직에서 중간간부급 이상이 되거나, 수준급 전문가가 되면 우아한 직장생활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해묵은 논란과도 같다. 제대로 대우해 주고 일할 만한 환경을 먼저 만들어줘야 하는지, 혹독한 직장생활 끝에 보상으로서 복지가 주어져야 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점차 일하기 좋은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주고 실적을 기대하는 것이 나쁜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을 벗어난 지역에서도 이런 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8년 포춘지는 세계의 베스트 디자인 오피스 부문에서 다국적 광고회사 오길비&매더의 광저우 사무실을 뽑았다. 이 사무실을 디자인한 모저의 웬디 롱은 수상 소감을 말하며 ‘커피스족’이란 말을 했다.

일이 잘 안 풀리고 사무실이 답답해서 차라리 카페에서 기분 전환을 하면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을 뜻하는 ‘커피스족’의 수가 크게 느는 것을 보면서 사무실을 카페처럼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것. 회사에서 놀게 하고 사무실을 카페처럼 만드는 이 모든 작업은 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하여 생산성을 늘리려는 시도다.

중국 광저우에 문을 연 오길비는 이러한 시도를 ‘보상’이 아닌 ‘전제조건’으로 활용했고 그 결과에 만족했다. 광저우 사무실의 한 실장은 공간마다 놀이동산처럼 다른 테마로 꾸며져 있어 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재미있어 야근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포춘은 그 결과 업무성과 또한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경영학자 에드워즈 데밍은 미국의 경영자들이 수치를 분석하는 일에 자신의 시간 중 97%를 쓴다고 지적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단 3%의 시간만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무형자산을 관리하는 일에 쓴다는 것이다. 무형자산은 지적재산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현재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인재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이들의 창의성을 조직이라는 걸림돌로 막지 않으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CEO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개 기업은 좋은 실적, 훌륭한 문화적 기여 등을 이룩하면 홍보전문가를 통해 외부에 알리기 시작한다. 외부에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알리면 고객도 늘고 훌륭한 인재도 찾아오리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런 좋은 일일수록 내부고객 즉 직원들에게 먼저 알려야 한다. 내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면 외부에서 스카우트했거나 오랜 시간을 투자해 길러낸 내부 인재들은 자신이 몸담은 회사에 자부심을 갖게 된다. 직원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성취를 신문을 통해서 알게 된다면, 그 기분이 어떨지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Writer. 한정연
이코노미스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