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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resh] 현장스케치 - 명상, 채식 그리고 두메산골에서의 하룻밤

2010.09.02


강원도 홍천군 힐리언스 선마을은 서울에서 멀지 않았다. 회사에서 매달 실시하는 이 힐링프로그램(Healing Program)에 한번 가보라고 권할 때만 해도 교외로 다녀오는 기분으로 출발했다.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2시간여 달리자 한적한 국도변에 ‘힐리언스 선마을’이란 조그만 문패가 보였다.

입구로 들어서자 갑자기 시골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의도적으로 허름하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진입로였다. 마치 ‘여긴 도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거진 숲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주차장이 나왔고, 거기서 걸어서 또 100m쯤 가자 이번에는 산 속에 아담하게 자리잡은 몇 개의 건물이 보였다.




입소를 안내하는 직원이 “여기에선 핸드폰 통화가 안되고, TV, 냉장고, 에어컨도 없습니다”며 웃으며 말했다. 말하는 도중 핸드폰을 보니 실제로 ‘서비스불가지역’이라는 글자가 떴다. 쉽게 말해 밤이 되면 별을 봐야 되고, 해가 뜨면 일어나야 하는 곳이다.

‘의도된 불편함’이라는 이 콘셉트는 문명의 이기에 묶여있는 현대인의 삶을 조금은 낯설게 만들려는 의도다. TV, 신문, 휴대폰이 없으면 사실 눈을 둘 곳이 없다. 특히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자동적으로 핸드폰을 뒤지는 게 습관이다. 하지만 핸드폰 수신이 안 되는 곳에서는 스마트폰도 무용지물이다.

자연스럽게 남는 시간은 같이 온 아내와의 대화로 이어졌다. 특별한 유흥거리도, 읽을 거리도 없는 곳에서 눈은 앞에 있는 산을 향하게 되고, 입과 귀는 옆에 있는 아내와 연결 됐다. 그래도 남는 시간은 저절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회사 생각, 애들 생각, 친구 생각, 다음 주에 있는 약속 생각, 깜빡 하고 처리 못한 일 생각, 부모님 생각, 저녁 먹을 생각, 친구 결혼 생각….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핸드폰이 불통되고, TV가 없으니 이렇게 생각할 시간이 많아질 줄이야!

‘이거 생각 좀 해봅시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자 듣는 말이다. 하지만 막상 그런 시간을 가지긴 쉽지 않다. 쏟아지는 일거리, 밀려드는 결제 서류에 누구라도 생각할 시간이 부족함을 느낀다. 꼭 CEO나 임원이 아니라도 매일 처리해야 하는 일이 밀려드는 상황에서 한가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상상해보는 여유를 가지긴 쉽지 않다.




생각에 여유가 없으니 행동에도 여유가 없다. 집에 가도 업무를 생각하게 되고, 주말에도 다음주 일을 걱정하게 된다. 틈틈이 시간 나면 지친 육체와 정신 때문에 스르륵 잠이 들기도 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고사하고, 가족의 말에도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현대인은, 특히 조직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환자다. 멀쩡해 보여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혹사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는 치료(Healing)가 필요하다. 심해지면 약물치료나 전문의의 진찰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할 수 있는 치료는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힐링프로그램(Healing Program)이라 이름 지은 이유를 알 만했다.

치료는 실제로 다양했다. 현재 자신의 신체 나이를 다양한 스트레칭을 통해 체크한다. 물론 대부분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높게 나오게 된다. 선마을 주변에 만들어 놓은 8개의 트레킹 코스 중 하나를 골라 걸으면서 명상을 하는 ‘걷기 명상’은 명상이 가부좌 틀고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건강하게 움직이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 줬다. 물론 동시에 내 몸이 많이 허약하다는 것과 함께 말이다.




‘감사 명상’에선 주변에 감사할 거리에 대해 생각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감사할 사람을 나열하기 시작하니 끝도 없이 이어졌다. 참가자 중 일부는 서로에게 감사를 표했고, 한 부부는 자기 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감사하다고 말하다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렇게 단단한 도시인처럼 보였던 사람도 몇 번의 명상과 자기 고백을 통해서 이렇게 쉽게 마음이 열린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상처가 깊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녁을 먹고 나선 하루 종일 수고한 몸에게 휴식을 주는 ‘스파’를 즐길 수 있었다. 탄산 온천수를 이용한 스파는 하루의 피로도 풀고 느긋하게 휴식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힐링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역시 식사시간. 모든 것이 차단된 상태에서 유일한 낙은 역시 먹는 것 아닐까? 하지만 진수성찬을 기대한다면 어서 꿈을 접는 것이 좋다. 식사는 선마을답게 친환경적, 친자연적으로 나온다. 잡곡밥에 김치, 샐러드, 토마토가 기본으로 나오고 여기에 간을 거의 하지 않은 생선찜이나 해산물 샐러드 등이 추가된다.

양념은 거의 없고, 소금기도 최대한으로 줄인다. 언뜻 밍밍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강사님은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면 맛을 알 수 있다”고 웃는다. 게다가 먹는 과정도 철저히 느림을 지향한다. 식탁마다 30분짜리 모래시계가 놓여 있고, 식사를 시작하면서 뒤집어 놓으면 먹는 내내 모래시계가 흐른다. 한입에 10번 이상 씹어 먹으라는 권고대로 따라하면 식사 시간은 30분을 훌쩍 넘긴다. 점심시간 10분이면 끝나는 식사시간에 비해 반찬이나 밥의 양은 절반으로 줄고 시간은 3배로 늘어난 셈이다.

1박 2일의 힐링 프로그램은 365일 바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진통제 주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두메산골에서 하루 생활했다고 생활 습관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루라도 컴퓨터, TV, 핸드폰, 냉장고 없이 지내면서 옆에 있는 사람(아내)과 대화에 몰입해 보고, 잊고 지낸 주변의 것들을 하나하나 머리로 떠올리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부족하지만 1년에 한번이라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