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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라이브러리] LIFE와 필립 할스만의 기분 좋은 만남

2015.04.14

<라이프> 매거진의 가치는 단순히 몇 줄 혹은 몇 단락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1883년 유머 잡지의 성격을 띠고 창간되었지만 <타임 Time>과 <포춘 Fortune>이라는 미국 굴지의 언론사를 소유한 헨리 루스(Henry Luce)가 인수한 1936년 이래 포토저널리즘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라는 획기적인 발명품의 등장으로 인해 종이 매체의 한계는 드러났고, 정지된 시간을 포착한 사진을 중심으로 한 잡지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기에 이른다. 결국 <라이프> 매거진은 1972년 주간지 발행 중단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그 후 잠시 휴식기를 거쳐, 1978년부터 2002년까지는 월간지로 발행되었다. 최근에는 온라인(http://time.com/LIFE)을 통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당대 최고 사진작가의 각축장 한 세기를 관통하며 포토저널리즘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라이프> 매거진이 사진 역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포토저널리즘의 거장 대다수가 <라이프> 매거진에 사진을 기고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고, 무명의 사진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라이프> 매거진에 실리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삼았다. 스페인내전 당시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병사의 모습을 촬영한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대표 사진 역시 <라이프> 매거진을 통해 공개되었고, 보도 사진만을 고집한 유진 스미스(William Eugene Smith)의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라이프> 매거진이었다. 세기의 사진작가들의 주 활동무대이자 총 190여 명에 이르는 전속사진작가들이 사진의 위대한 힘을 증명한 <라이프> 매거진에서 유독 입지를 확고히 했던 사진작가가 있다. 무려 101회에 걸쳐 <라이프>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한 필립 할스만이 바로 그 주인공. 그는 <라이프>가 사랑한 세기의 사진작가이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진작가 중 한 명이다.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인물사진작가, 필립 할스만 2014년 초 있었던 필립 할스만의 회고전 ‘Jumping with Love’전은 밝은 표정으로 점핑하고 있는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의 전시 포스터 하나만으로도 세상의 이목을 끈 사진전이었다. <라이프> 매거진을 대표하는 사진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필립 할스만은 대규모 사진전을 통해 단번에 국내에서도 사랑받는 인기 작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인물 사진을 통해 그 사람의 감춰진 내면을 포착한 심리적 초상의 대가로 알려진 그는 다재다능한 사진작가였다.
보도 사진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은 물론, 1948년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함께 완성한 ‘Dali Atomicus’ 같은 실험적인 작업, 세기의 인물들을 무장 해제시킨 점핑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의 폭이 무척이나 넓다. 1906년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필립 할스만은 1930년대 초 파리에서 사진작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1934년 포트레이트 사진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패션 매거진 <보그 Vogue>에서 활동하며 커머셜 사진작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 불어 닥친 비극은 그의 성공을 가만두지 않았다. 결국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러운 프랑스를 떠나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향했고, 당시 필립 할스만의 여동생과 두터운 친분을 갖고 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도움으로 어렵게 미국 비자 획득에 성공한다.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인물사진작가, 필립 할스만 필립 할스만과 <라이프> 매거진의 인연은 1942년 시작되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기이한 형상을 한 모자를 쓰고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델 사진이 10월호 표지로 채택된 것이다. 이 작업은 필립 할스만이 <라이프> 매거진과 한 첫 번째 작업이자 길고도 긴 인연의 시작이 된 셈이다. 필립 할스만은 커머셜 사진작가로서의 경력을 미국에서도 이어가고 있었다.

성조기 앞에 서 있는 모델을 촬영한 사진이 화장품 브랜드 엘리자베스 아덴의 립스틱 광고 캠페인으로 사용되었고, 그 사진을 본 <라이프> 매거진 관계자가 그에게 ‘Story on New Hat Design’이란 콘셉트의 화보 촬영을 의뢰한 것. 그의 재능은 낯선 미국 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촬영한 이미지는 곧바로 표지로 사용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라이프> 매거진과의 인연을 기분 좋게 시작한 필립 할스만은 그 후 승승장구한다.

점핑하는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를 비롯해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사진을 포함 여타 사진작가는 단 한 번도 채택되기 힘든 <라이프> 매거진의 표지를 101번이나 장식하는 사진작가로 기록되었으니 말이다.

<라이프> 매거진의 역사가 곧 사진의 역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진작가 필립 할스만이 있다. 인물의 표정을 세심하게 포착한 근접 사진, 프레임 속에 등장하는 사물이 모두 생생하게 보이는 선명한 포커스, 최고의 여배우와 근엄한 정치인에게 점핑을 요구하는 담대함,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초현실주의 사진을 직접 완성한 도전정신 등 필립 할스만이 갖고 있는 작가적 역량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필립 할스만과 세기의 인물이 함께 일구어 놓은 역사의 한 장면을 <라이프> 매거진의 표지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1936년부터 2000년까지의 <라이프> 전 컬렉션을 매월 주제에 따라 전시하고 있다. 생생한 시대정신을 느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니 나들이 삼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Writer. 김민정

월간사진 에디터



life collection 15 바로가기

<라이프> 매거진의 가치는 단순히 몇 줄 혹은 몇 단락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1883년 유머 잡지의 성격을 띠고 창간되었지만 <타임 Time>과 <포춘 Fortune>이라는 미국 굴지의 언론사를 소유한 헨리 루스(Henry Luce)가 인수한 1936년 이래 포토저널리즘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이라는 획기적인 발명품의 등장으로 인해 종이 매체의 한계는 드러났고, 정지된 시간을 포착한 사진을 중심으로 한 잡지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기에 이른다. 결국 <라이프> 매거진은 1972년 주간지 발행 중단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그 후 잠시 휴식기를 거쳐, 1978년부터 2002년까지는 월간지로 발행되었다. 최근에는 온라인(http://time.com/LIFE)을 통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당대 최고 사진작가의 각축장 출처: time공식 사이트
당대 최고 사진작가의 각축장 한 세기를 관통하며 포토저널리즘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라이프> 매거진이 사진 역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포토저널리즘의 거장 대다수가 <라이프> 매거진에 사진을 기고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고, 무명의 사진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라이프> 매거진에 실리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삼았다. 스페인내전 당시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병사의 모습을 촬영한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대표 사진 역시 <라이프> 매거진을 통해 공개되었고, 보도 사진만을 고집한 유진 스미스(William Eugene Smith)의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도 <라이프> 매거진이었다. 세기의 사진작가들의 주 활동무대이자 총 190여 명에 이르는 전속사진작가들이 사진의 위대한 힘을 증명한 <라이프> 매거진에서 유독 입지를 확고히 했던 사진작가가 있다. 무려 101회에 걸쳐 <라이프>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한 필립 할스만이 바로 그 주인공. 그는 <라이프>가 사랑한 세기의 사진작가이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진작가 중 한 명이다.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인물사진작가, 필립 할스만 2014년 초 있었던 필립 할스만의 회고전 ‘Jumping with Love’전은 밝은 표정으로 점핑하고 있는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의 전시 포스터 하나만으로도 세상의 이목을 끈 사진전이었다. <라이프> 매거진을 대표하는 사진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필립 할스만은 대규모 사진전을 통해 단번에 국내에서도 사랑받는 인기 작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인물 사진을 통해 그 사람의 감춰진 내면을 포착한 심리적 초상의 대가로 알려진 그는 다재다능한 사진작가였다. 보도 사진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은 물론, 1948년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함께 완성한 ‘Dali Atomicus’ 같은 실험적인 작업, 세기의 인물들을 무장 해제시킨 점핑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의 폭이 무척이나 넓다.
1906년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필립 할스만은 1930년대 초 파리에서 사진작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1934년 포트레이트 사진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패션 매거진 <보그 Vogue>에서 활동하며 커머셜 사진작가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 불어 닥친 비극은 그의 성공을 가만두지 않았다. 결국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러운 프랑스를 떠나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향했고, 당시 필립 할스만의 여동생과 두터운 친분을 갖고 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도움으로 어렵게 미국 비자 획득에 성공한다.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인물사진작가, 필립 할스만 필립 할스만과 <라이프> 매거진의 인연은 1942년 시작되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기이한 형상을 한 모자를 쓰고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델 사진이 10월호 표지로 채택된 것이다. 이 작업은 필립 할스만이 <라이프> 매거진과 한 첫 번째 작업이자 길고도 긴 인연의 시작이 된 셈이다. 필립 할스만은 커머셜 사진작가로서의 경력을 미국에서도 이어가고 있었다.

성조기 앞에 서 있는 모델을 촬영한 사진이 화장품 브랜드 엘리자베스 아덴의 립스틱 광고 캠페인으로 사용되었고, 그 사진을 본 <라이프> 매거진 관계자가 그에게 ‘Story on New Hat Design’이란 콘셉트의 화보 촬영을 의뢰한 것. 그의 재능은 낯선 미국 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촬영한 이미지는 곧바로 표지로 사용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라이프> 매거진과의 인연을 기분 좋게 시작한 필립 할스만은 그 후 승승장구한다.

하는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를 비롯해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사진을 포함 여타 사진작가는 단 한 번도 채택되기 힘든 <라이프> 매거진의 표지를 101번이나 장식하는 사진작가로 기록되었으니 말이다.

<라이프> 매거진의 역사가 곧 사진의 역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진작가 필립 할스만이 있다. 인물의 표정을 세심하게 포착한 근접 사진, 프레임 속에 등장하는 사물이 모두 생생하게 보이는 선명한 포커스, 최고의 여배우와 근엄한 정치인에게 점핑을 요구하는 담대함, 불가능해 보일 것 같은 초현실주의 사진을 직접 완성한 도전정신 등 필립 할스만이 갖고 있는 작가적 역량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필립 할스만과 세기의 인물이 함께 일구어 놓은 역사의 한 장면을 <라이프> 매거진의 표지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1936년부터 2000년까지의 <라이프> 전 컬렉션을 매월 주제에 따라 전시하고 있다. 생생한 시대정신을 느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니 나들이 삼아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Writer. 김민정

월간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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