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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resh] 아내와 회사를 화해하게 만든 남도의 멋과 맛 - 남도문화기행

2010.09.02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모든 것을 팽개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특권은 학생들의 전유물일 뿐 직장인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일 뿐이고, 특히 자우림의 노래 가사처럼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떠난다는 건 노래 제목 그대로 ‘일탈’의 영역이요, 돌아온 후에 책상이 치워져 있을지도 모르는 엄청난 모험을 감내해야 하니 그야말로 꿈일 뿐이다.

한데 좀처럼 시간 내기 힘든 직장인들이 합법적으로(?) 시간을 내서 여행을 갈 수 있다면? 게다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부부 동반으로 갈 수 있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남도문화기행이라는 이름의 일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비록 합법적인 일탈이지만 일탈에는 걸림돌이 많았다. 한참 바쁜 시기에 자리를 비우기도 눈치가 보였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녀석을 맡길 곳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 아내와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다.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은 ‘회사의 공식적인 행사참여’라는 명분으로 모르는 척 하기로 했고, 아내는 귀여운 외손주를 나흘간 돌볼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장모님께 선물하기로 했다.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전라도의 3가지 매력




개인적으로 전라도 여행이라고는 지점 방문차 광주를 두세 번 갔다 온 경험밖에 없어 전라도는 내게 낯선 땅이었는데 나를 사로잡은 남도의 첫 번째 매력은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진도대교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다도해의 장관이나 보길도의 아름다운 풍경, 순천만의 갈대와 보성 녹차밭의 끝없는 푸르름은 5월의 햇살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나를 사로잡은 전라도의 두 번째 매력은 전라도의 먹거리였다. 흔히 전라도 사람들이 전라도에서는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상다리 휘어지게 음식이 나오고 음식들이 깔끔하고 맛있다고 고향자랑을 하곤 하는데, 이는 단순한 허풍이 아니었다. 첫 날 새벽 광주에 도착해 집합시간에 쫓기면서 급하게 먹었던 순대국부터 마지막 날 벌교에서 먹었던 꼬막까지, 3박4일 동안 매끼마다 전라도만의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어느 식당에서나 나왔던 묵은지 김치는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일행 모두를 묵은지 마니아로 만들어 놓았다.

전라도의 마지막 매력은 전라도의 문화유산과 유적들이었는데, 귀양길에 들렀던 보길도의 풍경에 매료되어 보길도에서 생을 보낸 윤선도의 유적이나 정약용이 십여 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다산초당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전라도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었다.

이번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 것은 이번 여행이 단순한 관광이 아닌 문화체험으로 이뤄졌다는 점이었다. 회사게시판에 올라온 남도문화기행 시행문에는 '남도문화기행'은 '역사기행'과 문화체험'으로 구성된 테마여행이며, 절대로 호화스런관광여행이아님을인식하시고 참석하여 주시기 바란다는 무시무시한(?) 경고 문구가 포함되어 있는데 실제로 이번 여행은 단순히 경치를 즐기면서 먹고 마시다 오는 여행이 아니라 전문 해설자가 전체 일정에 동행하여 남도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고, 진도의 소리를 들어보고 직접 옹기 빚기와 염색을 직접 체험해보는 체험 위주의 시간이어서 더욱 뜻깊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또 한가지 덤이 있다면 아내와 회사가 화해했다는 점이다. 늘 늦게 끝나고, 따로 만날 시간이 없어서 어떤 때는 지점에서 문서정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데이트를 해야 했고, 신혼여행 가던 날은 지점에서 본사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업무 인수인계를 하느라 휴가를 이틀이나 반납하는 등 남편을 회사에 뺏겨, 회사에 내심 서운한 점이 많았었던 아내였기에, 이번 여행을 계기로 쉽사리 부부여행을 떠날 수 없었던 아내가 회사와 화해하기로 했다는 점이 이번 여행의 보너스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