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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 라이브러리] 북 리뷰 - A Soldier’s Sketchbook

2014.07.18


여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흔히 치유, 휴식, 놀이 같은 화사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강제적으로 기나긴 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절절한 이야기가 때늦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네덜란드인 하멜은 무려 13년 동안이나 제주도에 억류되었으나 동인도회사를 통해 13년 동안 밀린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하멜표류기>를 썼다. 그의 기록은 사실 ‘여행의 기쁨’이 아니라 ‘밀린 임금을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창조된 셈이다. 제주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13년 동안 결코 놀기만 한 것이 아니랍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하멜표류기>를 썼고, 그것은 저자의 의도를 뛰어넘어 기념비적인 제주 여행기가 되었다. 나주 출신의 선비 최부 또한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배를 타고 나섰다가 풍랑을 만나 중국 땅에 표류하게 되고, 왜구로 오해받아 갖은 곤란을 치른 후 천신만고 끝에 조선에 돌아오기까지 무려 6개월의 뜻하지 않은 여행을 <표해록>에 담았다. 유배지에 가는 동안의 온갖 고생과 설움을 오히려 감동적인 여행 스토리로 풀어낸 선비 이옥의 <남정십편>도 있다. 
 


이렇듯 ‘여행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강제로 이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의 여행기는 역사 책에는 나오지 않는 당시 사람들의 미세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더욱 뜨거운 감동을 준다. <한 병사의 스케치북, A Soldier’s Sketchbook> 또한 예기치 않은 떠남으로 인해 뜻밖의 모험을 하게 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조셉 파리스(Joseph Farris)는 겨우 열여덟 살 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미국에서 프랑스로 떠나야 했던 일개 병사였다. 징집영장을 받았을 때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소년에 불과했던 그는 1944년에서 1946년까지 연합군에 복무하는 동안 무려 800여 통의 편지를 집으로 보낸다.

 

이 책은 바로 그 800여 통의 편지들, 사진들, 그리고 그가 직접 그린 그림과 만화들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갈무리한 기념비적인 책이다. 역사가나 기자의 시선이 아닌 평범한 병사의 눈으로 그려낸 전쟁의 참상은 더욱 꿈틀거리는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이보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이 열여덟 살 병사가 ‘전쟁’이라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그 끔찍한 체험을 일종의 모험 가득한 여행처럼 생각하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에 있다.

 

 


출처: NATIONAL GEOGRAPHIC


 
그는 전쟁이 끝난 후 60년 동안 부모님이 고이 보관해둔 그 800여 통의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돌아보기 힘든 끔찍한 나날들이었으니, 그는 어떻게든 전쟁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2004년경 그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을 때 가족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사를 들려주기 위해 먼지 쌓인 그 기록들을 다시 펼쳐보게 된다. 가족들은 그에게 출판을 권했고, 이 뜻밖의 여행의 기록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는 참전 중 연합군의 이동 경로를 따라 유럽의 곳곳을 누비게 되었고 그 불가피한 모험의 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는 때로는 배고픔과 추위와 죽음의 공포 속에 벌벌 떨며 행군을 해야 했고, 때로는 잠시 꿈결 같은 휴가를 얻어 군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거나 유럽의 문화유산에 깃든 풍부한 지혜와 영감을 듬뿍 흡수하기도 했다. 이것이 전시상황이라는 것만 빼면 하루하루가 새로운 모험으로 가득 찬 빼어난 여행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 이 책은 모험담을 넘어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담은 인류사의 다큐멘터리로 읽힌다.

 

 


출처: NATIONAL GEOGRAPHIC



나는 첫 번째 저격수가 되어 엄청나게 무거운 삼각대를 들고 행군해야 했다. 모두가 완전무장을 한 상태였기에, 누구도 불평을 터드리거나 짐을 바꾸어 들지 못했다. (...) 첫 번째 부상자가 발생했다. 부상병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 팔꿈치 아래가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옆에 있던 병사는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져,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망쳐버렸고, 위생병이 그를 뒤쫓아 갔다. (…) 남은 병사들은 모두 폭발물과 총탄이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대혼란의 한가운데로 진군했다. 갑자기 내 오른쪽 몸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고, 나는 총알의 파편 하나가 내게 꽂혀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속력이 거의 줄어든 상태의 파편이라 내 몸을 뚫고 들어오진 않았다. 나는 파편을 재빨리 꺼내 땅바닥에 내버렸다. 파편은 여전히 뜨거운 상태였다!


-<A Soldier’s Sketchbook> 중에서 

 
오늘날 현대인에게 여행은 놀이의 일종이지만,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과거에서는 여행이 사신의 행렬처럼 특수한 임무를 띤 것이거나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경우가 많았다. <한 병사의 스케치북, A Soldier’s Sketchbook>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한 책이다. 그는 자발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가장 떠나기 싫은 여행, 전쟁터의 군인으로 징집 당한 것이다. 그는 본의 아니게 유럽을 일주했다. 그는 전쟁을 하러 떠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뜻하지 않은 고난의 여정 위에서 그는 삶을 배우고 사람을 배우고 역사를 배우고 예술을 배운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그에게 평생 마음에 품어야만 했던 신념의 씨앗을 심어준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 애국심으로도 그 어떤 화려한 대의로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는 없음을.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와 이후 훌륭한 카투니스트(Cartoonist)가 되었으며, 전쟁에 반대하는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고, 그때 그 시절 배운 사랑과 평화와 우정의 기예를 삶 속에서 실천해왔다. 그는 여행을 꿈꾼 것이 아니었지만 결국 인생의 황혼기에는 이토록 아름다운 여행기를 쓸 수 있었다. 그는 단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랐지만, 멋진 여행을 꿈꾼 것도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극적인 여행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신출귀몰한 솜씨로 피아노를 쳐내며 주변의 촉망을 한 몸에 받았던 소년, 마음이 햇살처럼 따뜻했던 그의 친구는 죽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무려 6,00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패리스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의 기적들을 본다. 예배 도중에 군대에 남은 유일한 살아있는 악기, 자신의 목소리로 천상의 화음을 만들어 열과 성의를 다해 ‘신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동료 군인들을 보았다. 군인들에게 커피와 도너츠를 나눠주며 위험을 무릅쓰고 아무런 대가 없이 자원봉사를 하는 적십자 자원봉사자 소녀들을 만나 가슴 설레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고향에 있을 때도 얻기 쉽지 않은 무료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그토록 공부하고 싶던 미술을 배우기도 한다. 그는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전쟁에 참여한 것이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전쟁의 여정은 곧 열여덟 살 소년 병사의 지울 수 없는 삶의 여정이자 성장의 여정이 되었다.


 

 

 
그가 그토록 참혹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무려 800여 통의 편지를 거의 매일 썼다는 것이 놀랍다. 그 800여 통의 편지와 사진과 그림들이 무사히 그 전장의 포화를 뚫고 프랑스나 독일로부터 미국의 코네티컷까지 빠짐없이 도착했다는 것은 더욱 놀랍다. 스무 살도 안 된 아들을 머나먼 전쟁터에 보내놓은 채 하루하루 마음 졸이며 살아가던 가족들은 재롱둥이 아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부치는 편지 덕분에 아들의 무사함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가 그토록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도, 조금도 타락하거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최고의 아티스트가 되었다는 것,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 세상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Writer. 정여울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