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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 라이브러리] 북 리뷰 - World Tour : 가스통 루이 비통의 세계여행

2014.08.01


아주 특별한 나만의 컬렉션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 루이 비통의 손자, 가스통 루이 비통의 세계여행

World Tour: Vintage Hotel Labels from the Collection of Gaston-Louis Vuitton 

by Francisca Matteoli



나의 자연스러운 습관이 남들의 눈에는 ‘괴짜의 못 말리는 습관’처럼 보일 때가 있다. 10년 전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나는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뉴욕과 LA등지를 여행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나의 트렁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너무 많은 책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열 권이 넘는 책을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호텔 유리창에 가지런히 꽂아놓고 흐뭇하게 미소 짓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혀를 끌끌 찼다. “그걸 정말 다 읽으려고?” “여행하러 왔지, 공부하러 왔니?” 나는 겸연쩍어져서 머리를 긁적였지만, ‘그래도 책이 있어야 집에 있는 것처럼 마음에 안정이 된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바지런히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지만, 밤이 되면 집에 온 듯 편안한 기분으로 책을 읽으며 잠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여행에 중독되어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멀리 해외로 떠나게 되니 책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함께 다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서너 번 ‘책으로 된 봇짐’을 고집하다가 결국엔 포기해버렸다. 딱 좋아하는 책 한 권만 가지고 가고 나머지는 전자책으로 소장하여 휴대폰과 컴퓨터에 저장하여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나다움을 포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책 때문에 트렁크가 너무 무거워지기 때문이었다. 도시간 이동이 잦은 유럽여행의 특성상 걸핏하면 무거운 트렁크를 짊어지고 기차로 비행기로 버스로 옮아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책 때문에 적지 않은 추가운임을 지불하는 일까지 발생하자 나는 깨끗이 ‘여행자의 서가’를 포기했다. 




Louis Vuittons Bookcase Trunk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보며 다시 ‘여행자의 서재’를 향한 욕망이 불끈 샘솟기 시작했다. <월드북, World Tour>을 보며 나는 가스통 루이 비통여행용 트렁크가 부러워졌다. 그 가방이 명품이라서가 아니라 그만의 ‘독서대’와 ‘서재’가 고스란히 담긴 여행자용 트렁크가 부러워서다. 독서광이었던 가스통 루이 비통은 여행을 떠나서도 언제 어디서든 편안하게 자신이 원하는 책을 꺼내볼 수 있도록 손수 맞춤 제작한 라이브러리 트렁크(library trunk)를 들고 다녔다고 한다. 게다가 언제 어디서나 그 트렁크 하나만 있으면 책을 편안한 자세로 읽을 수 있도록 트렁크를 살짝 열면 간이책상이 나오기도 하는 구조였다.


가방의 명가 루이 비통의 친손자이자 본인 스스로가 여행용 트렁크 디자인의 달인이었던 가스통 루이 비통. 그는 재기발랄한 발명가이자 열정적인 사진가였고, 훌륭한 독서가이자 지칠 줄 모르는 여행자이기도 했다. 그는 유럽의 각국은 물론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가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여행지마다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모은 ‘공짜 물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호텔의 스티커였다. 가스통 루이 비통이 전세계를 여행하던 192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에는 호텔마다 자사 브랜드를 홍보하는 스티커나 라벨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는 그 알록달록한 호텔 스티커를 자신의 여행용 트렁크에 자랑스럽게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스티커를 조심스럽게 떼어내어 보관하거나, 훼손되었을 경우 호텔에 다시 연락을 하여 부쳐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가스통 루이 비통의 열정적인 호텔 라벨 수집 취미를 이해해준 몇 명의 친구들은 해외여행을 떠날 때마다 일부러 호텔 라벨이나 스티커를 모아 가스통 루이 비통에게 선물해주기도 했다. 이 책은 가스통 루이 비통이 직접 모은 무려 3,000여 개에 달하는 전세계 호텔 라벨들에 얽힌 이야기들 중에서 900여 개를 엄선하여 20세기 초반 세계 여행의 꿈에 도전하던 사람들의 꿈과 열정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루이 비통이 글로벌 브랜드로 급부상하기 이전, 철저한 수공업과 장인 정신으로 일관하던 루이 비통 가문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그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는 다음 에피소드다. 


호텔 미라보에 투숙하던 한 이집트의 큰 부자가 반드시 세탁은 카이로에서만 하는 버릇이 있었다. 매주 그의 하인이 거대한 여행용 트렁크에 빨랫감을 가득 싣고 미라보 호텔과 카이로를 왔다 갔다 해야만 했다. 이 이집트 부자는 이런 기상천외한 세탁 심부름을 시키는 전담 하인을 두 명이나 두고 있었다. 그는 루이 비통의 아들이자 가스통 루이 비통의 아버지 조르주에게 자신의 세탁용 트렁크로 무려 1.75미터 길이나 되는 거대한 트렁크를 주문했다. 여행용 트렁크 주문 제작의 달인이었던 조르주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 이집트 부자에게 말했다. 


“그런데 고객님, 혹시 이 가방이 얼마나 큰지 정확히 알고 주문하고 계신지요? 그런 상품은 쉽게 상상하지 못할 물건인데요.”

“비통 씨, 나는 내가 뭘 주문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소. 나는 물건을 주문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오.”

“좋습니다, 고객님. 그렇다면 우선 나무로 이 거대한 여행 트렁크의 견본품을 만들어서 이 제품이 실제로 제작되었을 때의 크기를 짐작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럴 필요 없는데.”


이집트인은 견본품을 미리 보는 일조차 귀찮아했지만, 가스통 루이 비통의 아버지 조르주는 그를 차분하게 설득했다. 

“안됩니다. 고객님이 어떤 제품을 주문하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시지 않으면 저는 트렁크를 만들어 드릴 수 없습니다.”

“알았소, 그럼 내일 오겠소.”


이튿날, 이 이집트인은 조르주가 만든 거대한 견본품을 보더니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여기서 10센티미터를 더 늘려주시오.”

조르주 비통은 어쩔 수 없이 그 거대한 트렁크를 실제로 제작해야 했다. 그러나 주문한 그 물건이 미라보 호텔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방 안으로 트렁크를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진퇴양난에 빠지자 이 이집트 부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트렁크를 잘라주시오.”


조르주 비통의 신중하고도 세심한 성격, 이집트 거부의 아무도 못 말리는 허영심이 잘 드러나는 에피소드다. 가스통 루이 비통은 아버지의 성격을 물려받아 가방을 디자인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물건을 수집할 때도 섬세하고 신중했다고 한다.


"당신의 가방을 보여주시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문장이 1920년대 루이 비통의 슬로건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여행이 진정 새로움으로 가득한 모험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와 교양을 갖춘 소수의 여행자들은 퀸스메리호 같은 거대한 페리를 타고 대양을 건너 장기 해외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용감하고 호기심 넘치는 사람들은 최초의 여객기를 타고 해외 여행길에 오르기도 했다. 저 유명한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고 밤새 철길을 달리는 여행자들도 있었고,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장소를 향해 모험을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가스통 루이 비통은 192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낭만과 위험과 열정이 가득 한 여행을 일삼았던 사람들의 추억이 서린 세계 각국의 호텔 라벨은 물론 화가들의 섬세한 붓 터치가 생생하게 남아있는 엽서들도 함께 모아 그때 그 시절의 여행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해 놓았다. 훌륭한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가스통 루이 비통의 여행사진들도 이 책의 볼거리 중 하나다. 세계 각국 여행지들의 경이로운 풍광이 알록달록하게 그려져 있는 옛날 엽서들이 책갈피 곳곳에 실물과 똑같은 크기로 정성스럽게 제작되어 있어, 엽서 몇 장을 과감하게 책 속에서 오려내어 그리운 사람에게 부치고픈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이 엽서는 지금 당장 부칠 수 없고, 언젠가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그 나라 그 지방의 스탬프가 반드시 찍히도록 그곳에서 직접 부쳐야만 할 것 같다. 흔한 명품 쇼핑이 아니라 ‘나만의 스토리텔링’이 담긴 소박한 물품 수집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며 가슴 설레는 세계 여행의 꿈을 꾸어도 좋을 것 같다.




 

Writer. 정여울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 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