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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라이브러리] 하얀 방 안에서 펼쳐지는 조용한 서커스

2014.08.29




영감의 공간+몰입의 시간, 가회동의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서는 색다른 의자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Chairs’ Circus>라는 이름의 의자 전시가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의자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것이 아닌, 색다르고 낯선 의자들입니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의자가 곡예를 하고 묘기를 부리는 듯, 참으로 기묘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정지된 의자의 동작들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입구 마당의 푸릇푸릇한 풀 위로 어렴풋이 의자 몇 개가 보입니다. 입구 데스크를 지나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하얀 전시실에 놓인 알록달록한 의자들 사이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나무 의자(<Genie> by Nigel Coates)가 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무대 위에 올라 팽그르르 도는 무용수처럼 하염없이 돌고 또 돕니다. 뒤에 있는 길쭉한 검은 의자(<Floris>, by Gunter Beltzig)는 이제 막 흰색 링을 뛰어 넘은 참입니다. 몸에 딱 달라붙는 가죽 수트를 입은 날렵한 여자 곡예사를 떠오르게 합니다.


한편 선인장 모양의 옷걸이에는(<Giant Cactus> by Guido Drocco, Franco Mello) 모자가 씌워져 있습니다. 세 개나 되는 팔을 뻗어 마술을 시연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는 화려한 수술 달린 옷을 입은 인디언 의자(<Prince Imperial> by Elizabeth Garouste, Mattia Bonetti)가 금방이라도 허리를 흔들며 춤을 출 기세를 하고 있습니다. 공중 곡예사를 위한 그물 의자(<Knotted Rouge>, Marcel Wanders)도 있습니다. 아찔한 묘기를 부리다 낙하하는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곡예사를 안전하게 받아 냅니다. 이곳에 모인 의자들은 모두 서커스를 하고 있습니다. 불현듯 그들이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해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모든 것이 멈춘 모습입니다. 하얀 방 안의 의자들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앉고 구경하는 서커스




죽 둘러봤으니 이제 의자 하나하나를 관찰해보겠습니다. 바닥에는 현대카드 서체로 쓰여진 캡션이 있습니다. 각 의자들에 대한 작품명과 착석 여부가 적혀 있는데요. 의자의 본분을 위해 착석 가능한 몇몇 의자에 앉아보았습니다. 먼저 빨간색 주름의 홈 드레스를 입은 의자(<Mitak> by Christian Astuguevieille). 등받이가 높고 의외로 편안합니다. 다음은 둥글 넙적하게 생긴 커다란 검은 의자(<Puffo> by Giorgio Ceretti, Pietro Derossi, Riccardo Rosso). 딱딱한 돌처럼 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탄성이 있습니다. 마치 튀어 오르는 큰 공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우아하고 매끄러운 형태가 돋보이는 나무 의자(<Hat Trick> by Frank O. Gehry)엔 두터운 양탄자가 깔려있습니다. 귀여운 곰인형이 함께 디스플레이 되어 있습니다. 재단처럼 신성하고 묵직해 보이는 나무 의자(<Curial> by Rick Owens)에 앉으면 전시실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이 두 가지 의자에 앉으니 마치 로얄석에서 서커스를 관람하는 듯한 기분입니다. 그런데 반쯤 몸을 누일 수 있는 의자(<Felt> by Marc Newson)가 하나 있습니다. 마치 삐에로를 연상시키는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서커스를 지휘하는 단장 같은 의자(<Bull Kitchen> by Tom Dixon)도 있습니다. 오래되고 녹이 슨 듯 하지만 당당한 기품이 느껴집니다.



의자와 책의 연결고리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의 <Chairs’ Circus>에 전시된 11점의 의자들은 모두 다른 디자이너의 작품들입니다. 건축, 패션, 가구, 산업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를 대표하는 크리에이터들입니다. 대체 이들은 왜 하필 의자를 만든 것일까요? 의자는 세상 어디에나 있습니다. 집 안에도 식당에도 공원에도, 또 이 디자인 라이브러리 안에도. 의자는 사람이 앉는 물건이지만 비어 있는 그 자체로 빛을 발하기도 합니다. 누군가 앉길 기다리는 의자는 인내심이 있습니다. 또 누가 앉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간직하게 됩니다 이처럼 의자에는 자유로운 상상과 예측불허 한 변화의 가능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아마 11인의 크리에이터들은 이러한 의자의 속성에 매료되었을지 모릅니다.


독특한 개성과 창조성을 지닌 크리에이터들의 의자는 각기 그들의 주인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패션 디자이너 릭 오웬스의 의자는 과감하고 실험적인 그의 의상들과 맥을 같이 하며, 산업 디자이너인 톰 딕슨의 의자는 금속과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는 그의 작품들과 닮아있습니다. 여기 놓인 작품들의 재질에 대해 덧붙이자면, 60~70년대에 제작된 의자에는 실험적 재료가, 80년대에 만들어진 의자에는 고전적인 재료가 쓰인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의자만 보아도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형태와 디자인의 구별이 뚜렷하지만 각 디자이너의 작품 세계와 히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전시실 한 켠의 북 컬렉션을 넘겨 보면 됩니다. 디자이너 3인의 화보집과 의자에 대한 책 세 권이 놓여 있습니다. 각 책들이 펼쳐진 페이지는 <Chairs’ Circus>와 관련된 면으로 옆에 서 있는 도슨트에게 문의하면 친절하게 전시된 책과 의자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도 합니다.



이 곳, 가회동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서는 조용하지만 강렬한 서커스가 열리고 있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