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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콘세르트허바우 & 정명훈]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5의 김선욱, 대한민국 피아노계의 헬레니즘 시대를 열다

2012.02.16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5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 정명훈
에서 베토벤 <피아노 콘세르토 3번>으로 1년 만에 국내 팬들을 만날 피아니스트 김선욱. 2006년 18세의 나이로 세계적인 권위의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국내파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이후 유럽 무대에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며 눈부신 행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힘과 기교, 열정을 두루 갖춘 천재 피아니스트로 평가 받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5 김선욱을 음악칼럼니스트 박제성의 글로 만나봅니다.




김선욱과 RCO의 베토벤 협연에 즈음하여

김선욱이라는 이름은 이제 우리 시대의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예술은 이제 그 자체의 경쟁력으로 세계 음악 시장에서 당당히 향유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연주력과 예술성의 근간이 바로 대한민국의 문화적 토대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미 많은 저널을 통해 부각되어왔던 사실이지만, 그는 어린 시절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학을 하지 않고 국내에서만 학업을 이어나가며 여러 콩쿨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바로 이 점이 대한민국 문화인들로 하여금 자긍심을 갖게 한 결정적인 요인일 것이다. 더 나아가 한반도에 거주해왔던 사람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문화적 감수성과 집요하리만큼 뜨거운 치열함으로 피아노 예술의 그 유구한 역사성을 포용하는 동시에 보편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민족적인 자존감과 자신감이야말로 대한민국 피아노 예술계의 역사를 B.C.와 A.C.로 구분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준이 된 것이다.

한국 고유의 창호에 새겨진 다양한 각도의 구조물들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조형력과 난을 그릴 때의 그 불규칙하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담아내는 선의 역동성, 그리고 금동사유상의 그 부드러운 옷자락을 연상케 하는 세련미, 먹과 화선지가 만들어내는 여백의 미와 닮아 있는 음표와 쉼표 사이의 환상적인 여백의 비례미를 담아내는 김선욱의 연주에서 느낄 수 있는 스타일적인 측면은 한국 사람들의 정서와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하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천재로서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랄까, 김선욱이 지향하고 있는 피아노 예술과 작곡가에 대한 관점은 너무도 초월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신중함이라는 미덕으로서 이를 자신만의 안위로 치부하지 않고 내면으로의 발산을 외면으로의 환기로 환원시켜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연주하는 슈만을 듣노라면 그 번뜩이는 광기와 격정적인 리듬, 부를레스케적인(익살스러운 혹은 풍자적인) 도약을 악마적인 군무나 서정적인 화폭으로 옮기는 대신, 작곡가와 다도를 즐기면서 자신의 논조를 정확하게 펼쳐내며 결국에는 설득시켜내는 진지함과 무게감에 압도당하기 마련이다.

혁명적인 낭만주의자인 당통의 죽음도, 자의식에 대한 거울로서의 페르소나적 사랑도, 광기와 우연으로 점철된 르네상스적인 신화의 세계도 김선욱에게는 그다지 극적인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그는 역전된 성질을 갖고 있는 안테우스(Anthaeus, 헤라클레스와 싸웠던 거인으로서 땅이 그 힘의 근원이다)와도 같아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그 형질과 감각의 대지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더 강한 힘을 얻게 된다. 아직 그는 그 시간의 좌표의 극한까지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현재 19세기를 탐험하고 있는 그는 상상 이상의 강렬한 힘과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며 뭇 상대들을 제압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도 고전-낭만주의 시대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을 법한 고전주의적인 에너지와 이를 계승한 낭만주의의 상상력을 완연한 자태로 발산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서구의 고전주의와 한국의 오리엔탈리즘을 결합하여 피아노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헬레니즘 시대를 개막한 선구자적인 피아니스트라고 국가적인 의미를 부여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젊은 나이에 이미 대한민국 피아노 계의 21세기적 위상을 드높인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본능적인 열망, 즉 진정한 음악가로 거듭나려는 열망을 품고 영국으로 지휘를 공부하러 떠난 것이다. 피아노의 음향과 열정이 귀결하고자 하는 그 고매한 정신을 확장시키기 위함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지휘라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자신의 미래를 새로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과 서울을 오가며 그에게 지대한 사랑을 쏟고 있는 정명훈을 비롯하여 바렌보임[각주:1] , 아쉬케나지[각주:2], 에셴바흐[각주:3] 등등의 세계의 많은 마에스트로들이 바로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 출신이기에 김선욱의 이 같은 행보는 예술가로서 김선욱의 미래에 대한 일종의 대중적인 믿음을 고취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학구열과 도전의식은 피아니스트로서 바이로이트에서 지휘경력을 쌓았던 알프레드 코르토의 그 뜨거운 열정에 진배 아닌 만큼, 초인적인 기교를 추구하는 중국의 랑랑이나 유자 왕과는 궤를 달리하는 김선욱의 음악 만들기는 사문철(史文哲)을 겸비한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영화로운 자질을 보여준다.

이제 그가 2012년 2월 22일 정명훈이 이끄는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다. 협주곡에 있어서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산의 이미지를 확립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 이 작품에서 그는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를 얼마나 진지한 모습으로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그 수수께끼와도 같은 신비주의를 연출해 낼 것인가? 아니면 바그너가 꿈꾸었던 이상향으로서의 고전주의 형식을 찾아낼 것인가? 아니면 동양의 관점으로 바라본 역전된 헬레니즘적 취향의 새로운 베토벤을 창조해낼 것인가? 다소 엉뚱한 질문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김선욱이 이번 공연에서 재창조해낼 베토벤의 새로운 모습은 자신과 대한민국 피아노 계의 문화적 정체성을 전세계로 알릴 수 있는 도화선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글: 박제성(음악칼럼니스트)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 역자,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 등에 리뷰와 평론을 써 온 음악 컬럼니스트. 현재 ‘KBS FM 음반가이드’에 출연 중이며 공연, 방송, 저널활동, 음반리뷰, 음악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5 김선욱은 네덜란드의 국보로 칭송 받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와 함께 오는 2월 22일(수) 예술의 전당에서 1년만의 고국 무대를 가질 예정입니다. 특히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5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 정명훈에서 연주할 <피아노 콘체르토 3번>은 그가 ‘평생의 동반자’로 여긴다는 베토벤의 작품이자, 평소 롤모델로 꼽아온 정명훈과의 무대로 더욱 기대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삶의 궤적을 되짚어볼 소중한 시간,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15에서 더 깊어진 김선욱의 베토벤을 만나 보세요.




  1. 1.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 1942.11.15~] 이스라엘의 피아니스트 •지휘자.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연주활동을 했으며 지휘자로서도 폭넓은 활동을 했다.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뛰어난 음악성으로 현대 음악계의 지도적 인물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본문으로]
  2. 2.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Vladimir Davidovich Ashkenazy] 아이슬란드의 세계적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본문으로]
  3. 3. 크리스토프 폰 에셴바흐 [Christoph von Eschenbach, 1940.2.20] 독일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지휘자. 볼프강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프레데리크 쇼팽, 벨라 버르토크 등의 음악에 정통한 동시에 현대음악의 열렬한 지지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