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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resh] Open Class – 진화하는 현대미술과 큐레이터의 역할

2015.07.23

 

동시대의 미술과 대중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큐레이터. 예술계에서 이 큐레이터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오픈클래스는 아시아인 최초로 영국 테이트 미술관의 책임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이숙경 큐레이터와 함께 현대미술과 큐레이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현대미술은 무경계 예술이다

 

“역사가 깊고 예술 애호가가 많은 나라일수록 동시대 미술에 대해 편견이 많죠.” 현대미술의 성지로 떠오른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이 개관되기 전까지 영국에서도 동시대 미술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했습니다. 이 시대의 예술이 갖는 특성은 인적 구성의 다변화와 글로벌 네트워킹이며, 이는 인종과 국가 간의 경계가 무의미해졌음을 의미합니다. 미술관 큐레이터의 외부 활동 또한 미술관의 데이터를 세계로 확장시킨다는 측면에서 권장되고 있죠.

 

“비엔날레 또한 전 세계의 예술을 한자리에서 논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해요.”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다른 비엔날레와는 달리 유일하게 국가관(National Pavil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술의 국가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작가들 또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국가관의 존재는 아이러니하지만, ‘미술계의 올림픽’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탄생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던 시기, 당시 유일한 분단국가였던 우리나라에 비엔날레의 파빌리온이 주어집니다. 1986년 첫 비엔날레 참가 이후 전시관이 없어 이탈리아관의 작은 공간을 사용하다가 1995년 26번째로 독립된 국가관인 한국관이 탄생한 것이죠. 비록 일본관과 독일관 사이 화장실로 쓰이던 공간이지만 입지적인 조건으로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둥그런 통유리 건물로 지어진 한국관 자체가 전시감독들에게는 매번 큰 숙제에요.” 다소 실험적인 모습의 한국관은 전시관의 기본 역할인 ‘벽에 작품 걸기’조차 쉽지 않은 곡선형 건물입니다. 회화작품을 걸고 영상작업을 설치할 때 가벽이나 빛을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기에 한국관 전시는 한국관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제시하는데 초점을 둔다고 합니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축지법과 비행술>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게 된 그녀 또한 작품을 기획하고 세팅하는 전 과정에서 모든 ‘한계’를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마인드부터 가져야 했습니다. 어두워야 상영할 수 있는 영상을 둥그런 통유리 건물에 구현하고자 볼록한 LED 화면을 어렵게 주문 제작했고, 결국 한국관 전체가 작품의 일부로 숨 쉬는 광경을 연출할 수 있었죠.

 

 

축지법과 비행술

 

“작가를 선발하고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를 결정하는 것 모두가 커미셔너, 즉 비엔날레 전시감독의 몫입니다.” 뉴미디어와 영상 분야에서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는 아티스트 문경원과 전준호의 공동작업으로 ‘축지법과 비행술(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이라는 타이틀의 영상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서양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축지법’이라는 개념 때문에 타이틀 번역에도 애를 먹었다는 후문입니다.

 

 

<축지법과 비행술>의 한 장면

 

 

‘축지법과 비행술’은 작가가 직접 촬영하는 비디오 아트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실제 영화제작팀과 함께 프로젝트 형식으로 작업했고, 배우 이정재씨와 임수정씨가 노 개런티로 작업에 참여했죠. 대사도 없이 내러티브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연기력이 훌륭한 배우가 필요했는데요. 유명 배우의 출연이 작품에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우려할 수 있겠지만 비엔날레에서는 그저 작품 속 낯선 등장인물일 뿐입니다.

 

7개 채널로 상영된 이 작품은 인류의 종말 이후 세상이 물속에 잠겼지만 부표처럼 떠도는 ‘한국관’이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미래의 신인류를 묘사했습니다. 촬영은 한국관을 실제 크기로 재현한 남양주 영화 세트장에서 진행됐죠.

 

 

큐레이터, 현대미술과 대중을 잇다

 

<축지법과 비행술>의 (좌) 포스터, (우) 홍보 가방

 

 

큐레이터의 역할은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는 것! 포스터, 도록, 홍보 가방 등 모두가 ‘축지법과 비행술’ 전시의 중요한 일부분이었기에 통일감이 느껴지도록 제작하는데 주력했다고 합니다. 비엔날레에서는 ‘어느 관의 홍보 가방이 예쁘더라’는 소문이 나곤 하는데 정구호 디자이너가 제작한 한국관의 가방이 대히트를 쳤다는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현대미술을 쉽게 이해하는 팁을 전수해달라.”는 질문에 그녀는 예상외로 “해설을 잘 읽으면 된다.”고 답합니다. 고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쓰여진 작품 벽면의 해설을 꼭 읽어보고 더 관심이 간다면 대학원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인 도록을 살펴볼 것을 권했습니다. 이숙경 큐레이터는 끝으로 현대미술은 테크닉이 아닌 개념미술이기에, 사회적인 맥락과 작가의 주관까지 파악하려면 작품 설명이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미적 경험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 그리고 미술 외적인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이 바로 현대미술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