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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 힙합의 융성기, 1990년대 힙합 음악

2012.06.05


예상을 뛰어넘는 감동과 놀라움. 현대카드만의 초대형 공연 프로젝트,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그 17번째 주인공은 에미넴입니다. 살아있는 미국의 힙합 역사이자 힙합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한 에미넴. 에미넴의 등장 이래 힙합계의 역사가 재편되었다는 평가처럼 1990년대 정통 힙합계는 끊임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발전과 전성기를 이끌어내었습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발전한 힙합계의 주요 포인트와 그 발전상을 짚어봅니다. 그 첫번째로 본격적인 힙합의 전성기를 연 1990년대 힙합 음악들에 대해 대중음악평론가 한동윤님의 글로 논해봅니다.


커티스 블로(Kurtis Blow)의 메이저 레이블 계약, ‘Rapper's Delight’의 싱글 차트 40위권 진입, 런 디엠시(Run–D.M.C.)의 멀티 플래티넘 기록 등으로 힙합은 대중음악의 새로운 인기 장르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상업적 성공 기반을 다지는 것 외에도 1980년대의 힙합은 여러 종류의 파격과 발전을 도모하며 예술성과 작품성을 구현했고, 세를 확장하면서 장르의 지형도를 구축했다. 랩이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음반 산업의 변방이었던 남부 지역에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투 라이브 크루(2 Live Crew), 흑인 사회 밖으로 힙합의 향유층을 넓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 갱스터 랩의 견인차 역할을 한 엔더블유에이(N.W.A) 등이 그러한 과정의 중앙에 섰다. 힙합은 나날이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져 갔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변화와 확산은 한층 속도를 높였다. 이제 힙합은 확실히 주류 시장으로 진입했으며, 일부에서는 힙합을 다른 장르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는 움직임도 보였다. 또한, 동부와 서부, 남부 등 각 지역은 그곳을 대표할 만한 특징적인 음악을 선보여 음악팬들에게 부가적인 흥미를 제공했다. 90년대를 ‘힙합의 융성기’라 부르는 것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하드코어 힙합의 격렬한 발화
 
동부는 80년대 말 서부에서 만개한 갱스터 랩의 인기에 밀려 대중의 관심을 덜 받았지만 1993년 출시된 우 탱 클랜(Wu-Tang Clan)의 기념비적인 앨범 Enter The Wu-Tang (36 Chambers)를 기점으로 헤게모니를 탈환하게 된다. 드럼을 강조한 팍팍한 리듬과 단조의 피아노 선율을 덧대 음울함을 극대화한 반주, 으르렁거리듯 공격적으로 터뜨리는 래핑의 묘한 조화가 청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이다. 이후, 나스(Nas)의 데뷔작 Illmatic에 수록된 ‘N.Y. State Of Mind’, 몹 딥(Mobb Deep)의 존재감을 높여 준 두 번째 앨범 The Infamous의 ‘Shook Ones (Part II)’처럼 어둡고 탁한 느낌을 특징으로 하는 곡들이 연달아 등장했다. 여기에 더블 엑스 파시(Double X Posse), 조인트 벤처스(Joint Ventures), 다스 이펙스(Das EFX), 킹 저스트(King Just) 같은 래퍼들의 합세로 둔중한 드럼과 과격한 노랫말을 앞세운 하드코어 힙합이 동부에서 광범위한 조류를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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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양식은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얻었을 뿐, 차트에서의 힘은 대체로 미미했기에 힙합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정황 탓에 퍼프 대디(Puff Daddy)의 출현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띤다.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하드코어 힙합이 시들해질 무렵, 과거에 큰 인기를 얻었던 노래를 차용하고 코러스를 대대적으로 대입하는 대중성을 우선에 둔 특유의 편곡으로 힙합의 인기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노토리어스 비아지(The Notorious B.I.G.)의 처녀작 Ready To Die 중 두 곡 ‘Big Poppa’, ‘One More Chance’이 싱글 차트 10위권 안에 올랐으며, 1997년에는 자신의 데뷔 앨범 No Way Out 을 크게 히트시켰다. ‘I'll Be Missing You’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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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동부를 빛낸 수많은 명작 가운데, 지역의 음악적 특색을 설명하며 작품성을 만족하는 것으로 라킴(Rakim)의 솔로 데뷔 음반 The 18th Letter를 꼽을 수 있다. 힙합 마니아들이 동부 힙합의 매력 중 하나로 언급하는 붐 뱁(boom bap, 드럼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로 비트와 리듬을 강조한 힙합 음악) 스타일의 비트를 시종 내보이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피트 록(Pete Rock),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 디제이 클라크 켄트(DJ Clark Kent)가 빚어내는 찰기 그득하고 탄력적인 리듬은 힙합 악곡 구성의 모범이라고 할 만큼 멋스럽다. 라킴의 화려한 라임 연출이 두 번째 이유. 그는 각운뿐만 아니라 문장 중간의 허리운까지 정교하게 맞춤으로써 랩을 더욱 부드럽게 가공하고, 듣는 재미까지 충족했다. 재치 넘치는 언어 구사, 빠르면서도 깔끔한 플로우로 찬사를 받은 랩 슈퍼스타 에미넴(Eminem)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로 라킴을 거론하곤 했다. 



나른함 속의 중독성, 서부를 달군 지 펑크 시대

동부와 마찬가지로 서부 역시 가사에서 과격한 기조를 나타냈으나 음악은 나긋나긋했다. N.W.A시절에 단초를 제공한 닥터 드레(Dr. Dre)의 신종 장르 지 펑크(g-funk)9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출현하면서 서부의 힙합을 대변했다. 펑크(funk) 음악에서 가져온 무게감 있는 드럼 루프, 얼핏 신경질적으로 들리지만 몽환적인 느낌이 나는 고음의 신시사이저 연주가 특징인 이 음악은 1992년에 나온 닥터 드레의 첫 솔로 앨범 The Chronic과 이듬해 출시된 스눕 도그(Snoop Dogg)의 Doggystyle의 흥행에 힘입어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트윈즈(Twinz), 디제이 퀵(DJ Quik), 코케인(Kokane) 등이 지 펑크의 흐름에 동참했다. 닥터 드레의 이복 동생인 워렌 지(Warren G) 역시 지 펑크를 선보였으나 기존의 틀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부드러움을 강조한 음악을 들려줬다.

9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랩 솔로 퍼포먼스’를 수상한 닥터 드레의 ‘Let Me Ride’, 다음해 같은 부문 후보에 오른 워렌 지의 ‘This D.J.’, 스눕 도그의 ‘Gin And Juice’는 세월이 흘러도 힙합 애호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지 펑크의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다. 서부 힙합이 인기를 얻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닥터 드레는 이후 거물 신인 에미넴의 음반을 제작하고 주류에 입성시킴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비트 마에스트로와 거칠 것 없는 영민한 MC의 만남은 힙합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축포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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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힙합을 이야기할 때 꼭 거론되는 뮤지션이 하나 더 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더한 실력자 투팍(2Pac). 시원하게 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유려한 래핑, 갱스터 래퍼임에도 ‘Dear Mama’처럼 가슴을 절절하게 만드는 가사도 쓸 줄 아는 능력, 라임을 정교하게 배열하는 재능은 그의 비범함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1995년에 출시한 Me Against The World는 성폭행 혐의로 복역 중이었음에도 앨범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안타깝게도 동부 힙합의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와의 살벌한 다툼은 두 인재를 모두 앗아가는 비극으로 끝나 힙합 역사의 어두운 일면으로 남았다.


 


경쾌한 댄스음악과 독창성으로 돋보인 남부 힙합
 
반면 남부는 빠른 음악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일렉트로 펑크(electro funk)에서 착안한 오밀조밀하고도 날렵한 비트와 파티를 찬양하는 흥겨운 노랫말의 마이애미 베이스(Miami bass)는 90년대 초중반 남부 힙합의 중심 양식으로 등극했다. 우리나라 나이트클럽에서도 줄기차게 나왔던 태그 팀(Tag Team)의 ‘Whoomp! (There It Is)’와 식스티나인 보이즈(69 Boyz)의 ‘Tootsee Roll’, 쿼드 시티 디제이스(Quad City DJ's)의 ‘C'mon N' Ride It (The Train)’은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남부가 더는 음반 시장의 변두리가 아님을 역설했다.

오직 마이애미 베이스만이 남부의 힙합 신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흑인음악 전반을 아우르는 넓은 스펙트럼과 독창적인 스타일로 평단이 주시하던 아웃캐스트(OutKast), ‘Jump’로 유소년 힙합 뮤지션으로서는 최대의 흥행을 달성한 크리스 크로스(Kris Kross)도 이 지역의 한 축이었다. 더운 기후 탓에 80년대부터 남부 힙합 뮤지션들은 유희를 즐기는 내용을 노랫말로 많이 다뤄 왔다. 하지만 어레스티드 디벨로프먼트(Arrested Development)는 1993년 그래미 시상식 ‘최우수 랩 퍼포먼스 듀오/그룹’ 부문을 수상한 ‘Tennessee’와 ‘Mr. Wendal’ 등으로 불평등과 가난으로 소외받는 흑인들의 삶을 기술하며 메시지에 중점을 둔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경쾌한 반주와 놀이를 갈구하는 노랫말, 때로는 정형화된 틀을 탈피하려는 움직임 등 남부 힙합의 특징들을 포괄하는 작품이 아웃캐스트의 1998년 앨범 Aquemini 일 것이다. 이 듀오는 즐거운 에너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하면서도 리듬 앤 블루스와 컨트리, 록과 전자음악의 요소를 결합하면서 아주 이채로운 모양의 힙합을 완성해 냈다. 음악적인 다채로움 외에도 사회에 깔린 이런저런 문제들을 건드리는 주제의 다양한 접근은 미국 전역으로 하여금 아웃캐스트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실험성을 우선에 둔 음악과 백인 래퍼들의 등장

이전에 들을 수 없었던 색다른 음악의 등장도 90년대를 수놓았다. 디바인 스타일러(Divine Styler)는 1992년 출시된 2집 Spiral Walls Containing Autumns Of Light 에서 규칙성을 파괴한 구성으로 퓨전의 난해한 상(像)을 제시했고, 디제이 섀도(DJ Shadow)와 믹스 마스터 마이크(Mix Master Mike)는 디제이가 주인공이자 감독이 되는 비트와 소리 중심의 턴테이블리즘(turntablism) 개척에 앞장섰다. 컴패니 플로(Company Flow)와 라티릭스(Latyrx)도 힙합의 보편적인 틀을 깨는 작품으로 신선미를 선사했으며, 1999년 프린스 폴(Prince Paul)은 자신의 두 번째 앨범 A Prince Among Thieves를 통해 극의 형식미를 청각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랩 오페라를 완성했다.

 



백인 래퍼들의 진출 또한 확대됐다. 비스티 보이즈가 데뷔 초기에는 흑인들의 문화를 가로챈다며 흑인 사회의 원성을 샀지만 그들은 분명히 백인 힙합 뮤지션이 출현하는 데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가벼운 댄스음악을 앞세워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한 바닐라 아이스(Vanilla Ice)를 비롯해 근육질의 몸매를 드러내며 힙합계의 섹시 아이콘으로 등극했던 마키 마크(Marky Mark), ‘Jump Around’로 전 세계 클럽을 강타한 아일랜드계 미국인 그룹 하우스 오브 페인(House Of Pain), 이름과는 달리 흑인 멤버가 하나도 없었던 영 블랙 틴에이저스(Young Black Teenagers), ‘Informer’로 7주 동안 빌보드 차트 정상을 지킨 캐나다의 문제아 스노(Snow) 등이 90년대 힙합 신의 지분을 배정받았다.


새천년을 맞이할 즈음 에미넴이 이들의 배턴을 이어 받게 된다. 그는 1999년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이자 첫 메이저 데뷔작인 The Slim Shady LP를 통해서 매체와 대중의 시선, 상업적인 성공을 한꺼번에 획득했다. 맹렬한 태도를 내보이면서 듣는 이를 단숨에 끌어당기는 매끈한 래핑을 구사해 그 어떤 백인 래퍼보다 돋보였다. 에미넴은 닥터 드레가 발굴한 진귀한 원석이었으며, 새천년 힙합 신을 빛낼 값진 보석이었다.



한동윤 (http://soulounge.egloos.com)
대중음악 평론가. CBS [한동준의 FM Pops] 작가. [힙합 열전: 음반으로 보는 英美 힙합의 역사] 저자.
공식적으로는 춤을 접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힙합 댄서.